“I Don’t Know”라는 말의 무게

감정과 결과 사이에서

by 뉴욕 산재변호사

히스패닉계 클라이언트들과 상담하다 보면 유독 자주 마주치는 문장이 있다. “I don’t know.”


그 말은 질문의 끝에서 방어막처럼 튀어나오기도 하고, 억울함을 토로하는 긴 문장의 서막이 되기도 한다. 흥미로운 점은 그들이 “모른다”고 말하는 순간에도 실제로는 수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짧은 음절 안에는 상황에 대한 분노, 미래에 대한 불안, 그리고 어떻게든 책임을 피하고 싶은 절박함이 뒤섞여 있다. 그들에게 “I don’t know”는 지식의 부재가 아니라,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의 언어다.


1. 언어의 장벽 너머, 문화의 심리학

처음에는 이 표현이 당혹스러웠다. 법률의 세계에서 모르는 것은 물어서 알아내야 하고, 아는 것은 결정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 변호사에게 “모른다”는 답변은 더 세밀한 취조와 확인을 요구하는 비효율의 신호일 뿐이었다. 대화를 진전시키는 게 아니라 멈추게 만들고, 선택을 유보하며, 판단의 짐을 고스란히 변호사에게 전가하는 무책임한 말로 들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깨달았다. 이것은 단순히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와 심리의 복합체라는 것을. 스페인어권 문화에서 “No sé(I don’t know)”는 종종 이런 속뜻을 품는다. “상황이 내 통제를 벗어났다”, “나는 권위자 앞에서 틀린 말을 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 “전문가인 당신이 나 대신 안전한 길을 골라달라.” 그들에게 이 말은 자신을 보호하는 가장 서툴고도 간절한 방어 기제였던 셈이다.


2. 고립된 투쟁: 협업이 무너지는 순간

진짜 문제는 이 수동적인 태도가 반복될 때 발생한다. 클라이언트는 불만을 쏟아내면서도 정작 필요한 결정 앞에서는 발을 뺀다. 조언을 건네도 “I don’t know”라는 벽에 부딪혀 튕겨 나갈 때, 변호사의 마음에는 미세한 균열이 생긴다.


나는 오랫동안 이 불편함의 정체를 고민했다. 처음에는 나의 인내심 부족이라 자책했지만, 본질은 달랐다. 그것은 짜증이 아니라 ‘고립감’이었다. 변호사는 전지전능한 해결사가 아니다. 사실을 공유하고, 위험을 분담하며, 함께 파도를 넘을 파트너가 필요한 존재다. 상대가 결정을 미루고 같은 자리를 맴돌 때, 변호사는 거대한 사건의 무게를 혼자 짊어지고 있다는 형언할 수 없는 피로를 느낀다.


법률 조언은 ‘결과의 언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이런 결과가 온다”는 명확한 경고조차 “I don’t know”라는 안개에 먹혀버릴 때, ‘나의 언어가 더 이상 상대에게 닿지 않는다’는 절망감이 변호사를 잠식한다.


3. 불편함의 재해석: 나의 진심에 대한 증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불편함을 긍정하기로 했다. 이 감정은 나의 결함이 아니라, 내가 이 일을 치열하게 대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나는 클라이언트를 대신해 판사의 날 선 질문을 상상하고, 최악의 시나리오를 계산하며, 서류에 남을 문장 하나에 밤을 지샌다. 나에게 이 사건은 ‘생존’의 문제이지만, 어떤 클라이언트에게는 그저 ‘답답한 일상’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그 간극이 클수록 “I don’t know”라는 말은 무겁게 다가온다.


이제 나는 그 말을 문자 그대로 믿지 않는다. 대신 그 행간을 읽으려 노력한다.

- 이 사람은 지금 결정을 두려워하는가?

- 단순히 이해받고 싶은 것인가?

- 아니면 정말로 길을 잃었는가?


그렇게 해석의 관점을 바꾸는 순간, 장벽이었던 그 말은 비로소 구조 신호(SOS)가 된다.


결론: 결정의 언어를 지키는 일

물론 공감만으로 재판을 이길 수는 없다. 변호사는 어느 시점에 반드시 냉정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 감정은 포용하되, 법적 절차의 책임까지 대신 살아줄 수는 없음을 분명히 고지해야 한다. 그것이 클라이언트를 진정으로 돕는 길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I don’t know”라는 말은 수없이 반복될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그 말이 나를 흔들지는 못한다. 그것은 도움을 요청하는 가장 서툰 방식임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느끼는 이 피로감은, 누군가의 인생을 대충 다루지 않겠다는 나의 직업적 결벽이 보내는 훈장과도 같다.


변호사라는 직업의 본질은 어쩌면, 모두가 “모른다”며 고개를 저을 때 끝까지 ‘결정의 언어’를 붙잡고 길을 만드는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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