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의 상처
살충제가
하얀 안개처럼 들판 위에 내려앉는다
꽃의 깊이를 재던 더듬이가
공기의 낯선 성분에
방향을 틀려고 날개를 퍼덕여도
이미 방향은 사라졌다
벌의 날개에는 칼자국이 없다
다만 돌아보지 못한 방향들이 있다
한 번 더 날 수 있었던 봄과 여름은 지워지고
보이지 않은 죽음만 공기 속에 남아 있다
노동의 의미를 요구하지 않고
날개가 닳도록 일했지만
사라진 자리마다
미래를 만들던 벌은 미래가 없다
상처는 몸이 아니라 시간이 새겨지며
편리함을 위해 뿌린 살충제로
생명은 조금씩 지워진다
우리가 먹는 달콤함
계절의 리듬
열매가 맺힌 하나하나에
벌의 생이 겹쳐 있는 것을
없어지고 나서야 알았다
오월의 초록이 들판을 들어 올릴 때
수정되지 않는 꽃들이
몸을 뒤척이지만
바람만이 느린 호흡으로 지나가고
가을은 열매를 삭제한 지 오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