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위로도 괜찮다면야
나에게 좌절을 묻는다면 내가 해줄 수 있는 것. 숱하게 반복해왔던 무너짐은 일어서기 위한 과정이었겠거니와 좌절을 경험한다는 것 또한 잘 살고 있다는 증거이니 무너져내리는 스스로를 사랑하라 말한다. 추락한 줄 알았던 과거의 우린 언제 그랬냐는 듯 딛고 일어서 눈이 부실만큼의 찬란한 춤을 추고, 빠져나올 수 없을 거라 믿었던 좌절의 늪은 내게 또 다른 땅을 만들어주었다. 원래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이고, 보여야만 아는 법. 남들이 모르는 나만의 세상은 무너져내리는 그 순간에 새로이 만들어진다.
좌절감이 내 전부를 채운 힘든 나날이 있었다. 때로는 불안하고 두려웠다. 내가 하는 것들에 대한 욕심은 점점 예측할 수 없이 커져만 가고, 무언가가 내 발목을 잡고 놔주지 않는 그런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날들을 대체 어떻게 버텼을까.
아마 불안감에 잠식돼 주저앉아버린 내가 버틸 수 있던 이유는 그냥 내 존재 자체가 아니었을까. 누군가는 내가 주저앉아버린 그 길이 평탄한 아스팔트 도로 옆에 있는 구부정한 흙길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린 흙길을 맨발로 걸어가고, 그렇게 걸어가는 과정에서 함께한 흙과 벌레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도 한다. 때로는 원하지 않는 것들에서 얻는 배움이 있고, 뜻하지 않았던 깨달음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나만이 아는 노력을 하는 것과 나만이 아는 길을 걷는 것 또한 마찬가지겠지. 어떤 이가 예측하지 못했던, 섣불리 단정 지었던 그 길은 나에게 또 다른 방향을 제시하곤 했다.
지금 내가 걷는 이 길이 맞는 길일까? 하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세상에 정답이란 없으니. 그런 물음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땐 걸음을 멈춰 숨을 크게 쉬자. 눈을 크게 감았다가 떠보고, 손바닥으로 뺨을 문지르기도 하자. 붉은색에서 짙은 청색으로 변하는 하늘을 바라보며 잠시 쉬었다 가자. 걱정과 의심을 거두고 그냥 단지 쉬었다가 다시 걸어가면 된다. 지금 네가 걷고 있는 길에 드넓은 대지와 하늘, 사람들의 환호 따위가 없더라도 오직 너만이 그곳에 있다. 그것만으로도 네가 걷고 있는 길에 대한 이유와 확신은 충분한 거다.
(인스타그램에 업로드된 글입니다. @phxxran.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