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재대학교 일기 1
새로운 시작이다. 그 시작이 이제는 시간이 흘러 어느덧 한 달이 되었다.
가끔은 때론 내가 대학생이란 게 믿기지 않을 때도 있지만 내 집이 아닌 이 작은 방에 앉아 있는 걸 보니 내가 대학생이란 것이 실감나기도 한다. 그래, 이제는 태재대학교의 학생이 되었다. 학생이란 단어는 내게는 좀 어색한 단어이기도 하다. 첫 학생증을 만들어보기도 하고 첫 입학식을 치뤄보기도 하며 내게는 '처음'의 의미가 가득한 시간이 하나 둘 더 생겼다.
오늘은 기숙사 생활에 대해 적어보고 싶다. 태재대학교에 가면 나의 생활을 자세히 적어보고 싶었는데 나도 이렇게 바쁜 생활을 해야 하는 줄은 상상도 못했다. 점점 시간이 지나가면, 그래서 좀 더 익숙해지면 여유 시간이 생기겠거니 하고 바라고는 있다. 정말 이뤄질 수 있는 바람일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또 살아가봐야지. 어쩌겠는가.
혼자 방은 처음 써본다. 사실 홍대라는 곳은 나랑 잘 맞는 곳은 아닌 것 같다. 창문은 환기를 하려고 연 것인데 이상한 냄새가 가끔 흘러들어오고, 밤에는 조금 소음이 있고, 밖에 나가면 그냥 담배 소굴이다. 정말 안국에 기숙사가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 산책도 나갈 수 있을 텐데. 이곳은 밖에 나가지도 못하겠다. 산책할 곳도 없을 뿐더러 나가봤자 내 건강과 시력과 신변에 그리 도움이 될 거 같지 않다. 그래서 방에서, 이 건물에서 잘 나가지 않는다.
방에 혼자 있으면서 적적함이 참 싫을 때도 있다. 끊임 없이 이어지는 숙제들 덕분에 나는 방에 틀어박혀 있고, 가끔 나가 지하 1층으로 나가 얘기할 때도 아직은 깊이가 있는 관계가 아니기에 적적함을 느낀다. 가족과 함께하는 생활을 사랑하는 나를 이해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건 알지만 때론 그냥 다락방에서 시끄러워도 동생과 함께 공부하던 때가 그립기도 하다. 여기서 혼자 이러고 있는 게 너무 폐쇄적인 것 같아서.
그렇지만 살아가고 있다. 아직은 시작이라는 걸 아니까. 아직 학기의 반도 지나지 않았다는 걸 아니까.
또 나는 하루하루의 소소한 기쁨을 요리에서 발견하고 있다.
혼자 해 먹는 요리, 전자레인지를 써서 빵을 해동하고, 파스타 1인분을 조리하는 것. 다 처음이라 하면 놀랍겠지만, 나에게는 처음이었고, 가족이 아닌 사람들과 함께 요리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집에서는 엄마를 도와드린다는 의무감에 하기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파스타니까 요리하기도 했지만 이곳에서는 엄마가 없다. 가끔은 그냥 공부해도 나에게 밥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그러면 내가 내 엄마가 되어 주어야 한다. 그래서 난 '야무지게'를 내 식단의 컨셉으로 잡았다. 간단해도, 쉬워도 맛있게 챙겨먹을 것은 다 챙겨먹자는 생각으로 이렇게 나의 식탁은 차려지고 있다. 그리고 엄마도 그렇게 많이 챙겨주신다.
요리를 해서 누군가에게 나눌 수 있다는 것도, 그것이 참 행복하다는 것도 여기와서 요리를 하면서 새삼 느끼는 거다. 집에서 꼭 요리를 배우시길..! 어떤 상황이 내 앞에 펼쳐질지 모르니까 말이다.
하루하루가 참 고되게 느껴진다. 하루하루의 그 시간 속 나를 위한 여유 시간은 아침 큐티 시간 밖에 없다 느껴질 정도로 나는 공부하고 인간관계를 쌓아나가고 요리하고 공부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막 힘들어 죽을 거 같지는 않다. 수업도 재밌고 사람들 만나는 것도 즐겁고.... 내가 할 수 있는 거에 최선을 다하며 오늘에 최선을 다하는 나로 살고 싶기에 때론 지치지만 그것도 내가 짊어져야 하는 짐임을 알고 살아간다. 찬양을 듣고 기도한다. 피곤함과 감정이 몰려오면 나도 견디기 힘드니까.
이게 내 일상생활인 것 같다. 참으로 단조로운가 싶다가도 몰려드는 과제와 숙제들은 많기에 다이내믹한 삶을 살고 있는가 싶기도 하다. 그리고 내 인생 최초로 참 안정적인 삶을 맞이해 살아가고 있다. 보이지 않는 변수도 별로 없고, 나는 이렇게 한 학기를 살아내면 방학을 맞이할 것이고 내년에는 미국으로 떠난다. 중간 중간에 새로운 상황이 또 끼어들 수도 있겠지만 4년 동안은 이 학교를 다니며 학교에서 정해준 커리큘럼을 따라 조정하고 삶을 살아갈 것이다. 얼마나 홈스쿨링과 다른가. 그걸 새삼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좋냐고? 나도 모른다. 난 아직 홈스쿨러로 살아간 세월이 더 많기 때문에. 그리고 아직 홈스쿨링 졸업한 거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착실하게 살아보려 노력한다.
하루하루 쌓이는 기쁨이나 보람도 있는 것 같다. 수업 시간에 내가 미래를 바쳐 불태워 열정을 바칠 수 있는 것에 대해 얘기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너의 열정을 이것일 것 같아 라고 말하는 것이 참 어려울 것 같아 나는 그냥 칭찬을 해주고 내가 생각하기에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었다. 내가 느꼈던 첫인상과는 달랐던 분에게 내가 느끼기에 당신은 진지할 때는 진지하고, 웃길 때는 웃기며,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 라고 말해주고 수업을 마무리 지었다. 그러고 별 생각 없이 밑으로 내려가 밥을 해먹으려 하는데 나에게 그분이 바로 다가와서 너무도 열정적으로 자기가 생각을 해보니 자기가 그런 사람이 맞는 것 같다며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너무 맞는 것 같다며 내가 또 처음보는 열성을 가지고 나에게 말을 해주었다.
그때, 행복했다. 처음 이곳에서 지내면서 보람을 느꼈다. 내가 한 것이 정말 별 것이 아닌데. 그냥 항상 하던 대로 사람을 관찰하고 바라보고 내가 느낀 바를 전달한 것 뿐인데. 어쩌면 우리에게는 우리를 돌아볼 시간이 너무 없는 걸지도 모르겠다. 너무 바빠서, 너무 피곤해서, 너무 아파서. 그걸 못하는 내 주위 사람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들이 그런 것들일까.
이상하게도 말이다. 처음인데 참 익숙하다. 처음인데 이미 해온 것들이 쌓이고 쌓여 나의 새로운 삶의 순간들을 빚어가고 있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이어지는 걸 보는 게 나도 신기하다. 혼자 적극적으로 선택을 내리고, 엄마를 도와 요리를 해보고,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고 왜 그럴까를 질문했던 나의 삶이 새로운 환경에서 똑같지만 또 다른 모양새로 이뤄지고 있다. 그래서 비록 태재대의 학생이지만 홈스쿨러라는 말을 내려놓고 싶지 않고, 처음이라고 말하지만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내가 대견하다.
이곳을 위해 준비하면서도 나의 삶을 돌아보고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지만 와서 살아보니 잘 살았다 라고 외칠 수 있는 것은 혼자라는 시기를, 처음이라는 시기를 잘 살아냈다는 걸 알기에 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처음을 혼자 잘 살아낸 거 같다. 앞으로 12월까지 그렇게 살아야 하겠지. 처음이 2달, 3달로 이어질 거고, 그때쯤이 되면 나에게는 글을 쓸 여유 시간이 더 많아질까?
처음이지만 익숙한 학교 생활, 앞으로 많은 추억을 쌓아가고 싶다. 나 혼자의 시간도, 함께하는 시간도 많아지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