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국을 '사오'하다
"사오(扫)부터 할까요?" 중국에서 새로운 사람을 소개받는 자리에선 이 말부터 하게 된다. 중국판 카카오톡이라 할 수 있는 위챗(微信.Wechat)에는 본인의 QR코드가 생성돼있는데, 그 사람의 QR코드를 ‘사오’하면 친구 추가 신청이 이뤄진다. ‘사오’는 ‘(비 따위로) 쓸다’, ‘(매우 빨리) 좌우로 움직이다’라는 뜻으로, QR코드를 스캔하는 행위를 말한다.
중국에선 정말 많은 일들이 이 ‘사오’로 이뤄진다. 친구 신청부터 시작해 각종 결제 역시 사오로 가능하다. 중국에서 현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중국으로 관광 온 한국인들이 가장 큰 불편을 겪는 것도 이 부분이다. 요즘엔 일반 관광객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어서 한국에서 미리 위챗페이, 알리페이에 신용카드를 연결해서 중국으로 오는 경우가 많다.
식당에 들어가면 식탁 위에 있는 QR코드를 ‘사오’해 메뉴판을 보고 음식을 주문한다. 이후 결제까지 한 번에 이뤄진다. 최근엔 많이 사라진 길거리 노점에서도 QR코드로 물건을 사며 공유 자전거 역시 QR코드를 사오해 이용한다. 심지어 절에서도 QR코드를 이용해 시주를 한다. 최근엔 저녁에 동네를 산책하다 버스킹하는 청년들의 노래를 잠깐 서서 들었는데, 그들은 나무 위에 크게 프린트한 자신의 결제 QR코드를 걸어두고 있었다.
중국에 온 뒤 휴대폰을 사고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웨이신 계정 개설과 계좌 연동이었다. 처음 세팅만 잘 해두면 그 다음부턴 살아가기 퍽 쉬워진다. 어디를 가든 스마트폰 하나만 들고 다니면 된다. 휴대폰으로 사오해서 뭐든 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면, 가장 두려운 일은 바로 휴대폰 분실이다. 휴대폰으로 모든 결제를 다 하고 택시도 부르는데 휴대폰을 잃어버린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중국에서 첫 번째 모바일 결제 QR코드가 만들어져 배포된 것은 2011년이다. 2011년 알리페이가 스마트폰을 스캔하기만 하면 결제 거래가 완료되는 QR코드 시스템을 만들었다. 혁신적인 시스템이었지만 바로 크게 확산되진 않았다. 당시 스마트폰이 아직 보급 단계에 있어 중국에서 스마트폰을 가진 사람이 많지 않았으며 QR코드가 상점들 사이에서도 바로 전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위챗이 2013년 8월 위챗페이를 정식으로 론칭하고, 이듬해 춘절(중국의 음력 설)에 ‘위챗 홍바오(紅包)’를 출시했는데 이 일이 모바일 결제 역사의 한 획을 그을 정도로 큰 성공을 거뒀다. 홍바오는 '붉은 봉투'를 뜻하는 중국말로, 세뱃돈이나 결혼식 축의금 등을 이야기한다. 당시 위챗 홍바오가 큰 호응을 얻으면서 연휴 동안 3000만 명이 넘는 위챗 사용자가 계좌를 연결해 위챗페이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위챗페이의 큰 성공에 놀란 알리바바 그룹의 창업자 마윈이 당시 연휴를 즐기고 있던 모든 고위 관리들을 소집해 비상 회의를 열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당시 한 당사자는 언론에 "알리페이가 수년 동안 이룬 성과를 위챗페이가 일주일 만에 이룬 셈"이라고 회고했다.
2013년 알리페이의 시장 점유율은 거의 80%에서 54%로 떨어졌고 위챗페이는 40%로 증가했다. 오프라인 결제에서는 위챗페이가 70%의 점유율로 알리페이(20%)를 크게 앞섰다. 2026년 현재도 중국 내 결제 시장은 위챗페이와 알리페이가 양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현금에서 신용카드로, 신용카드에서 모바일 결제로 넘어가고 있다. 중국은 이 중간 단계가 빠진 채 현금에서 바로 모바일 결제로 넘어왔다. 왜 그랬을까. 당시 중국은 신용카드 보급률이 낮았고 POS 단말기 설치 비용이 커 POS 기기가 설치된 상점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반면 알리페이와 위챗페이는 고가의 단말기가 필요하지 않아 많은 상점들이 빠르게 QR코드 결제 시스템을 도입하는 배경이 됐다.
이에 더해 중국은 오래 전부터 위폐 문제가 심각했는데, 모바일 결제는 이러한 위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여겨졌다. 현금을 사용하지 않으니 잔돈 문제도 해결됐다.
이후 중국의 모바일 결제는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며 더욱 일반화됐다. 지역 간 이동을 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건강 QR코드를 제시해야 해 QR 스캔이 기본이 된 것이다. 배달 산업이 크게 확대되면서 비대면 모바일 결제도 함께 붐을 이뤘다.
부작용은 있다. 가짜 QR코드를 이용한 각종 사기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고 QR코드를 스캔하면 자동으로 링크가 열리기 때문에 피싱에 취약하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샀는지 정밀하게 기록되기에 데이터 수집 위험도 있다.
이제 중국의 결제 시스템은 지문, 손바닥, 안면 등 생체 인식을 통한 것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른바 ‘결제 3.0’ 시대다. 중국지불청산협회(中国支付清算协会)에 따르면 2024년 신흥 결제 방식의 거래량은 전년 대비 67.3% 증가했으며 그 중 생체인식 결제가 가장 높은 42.8%를 차지했다.
휴대폰을 꺼내 QR코드를 스캔하고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데 평균 15초 이상이 걸렸지만 안면 인식 결제는 이 과정을 3초 이내로 단축시킨다. 지하철역이나 편의점, 식당 등에서 이 기술이 사용되고 있는데 일부 식당이나 주차장에선 식사 후 떠나면 시스템이 자동으로 얼굴을 인식하고 결제를 완료한다. 차량이 주차장을 떠날 땐 카메라가 차량 번호판 인식과 계좌 결제를 동시에 진행해 ‘출발과 동시 결제’가 실현된다.
중국 유니온페이의 통계에 따르면 2024년 배치된 얼굴 인식 결제 장비 수는 185만 대에 달한다. 2023년에 비해 89.6% 증가한 수치다. 월간 활성 사용자 수도 1억 2000만 명을 돌파했다. 중국의 결제 방식은 지금 이 순간에도 무시무시한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