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온몰, 슈리성, 국제거리, 오키나와 안녕
온나 리조트는 진짜 전망이 다 한 곳이었다. 근처에 편의점도 없고, 산책할 만한 길도 없고 무인리조트였다.
오기 전에 편의점에서 먹을 걸 사 왔어야 했는데.. 다시 편의점 가는 길이 무척 힘들었다 한다. 나 빼고 세 명이서 갔었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아 걱정이 되었다. 나중에 들어 본 적 나가는 길이 너무 어둡고 헷갈려서 고생했다고 한다.
나는 수고했다고 하고 사온 어묵탕이랑 빵, 햄을 구워서 한 상 차려 저녁을 먹었다.
남편은 이곳 안락의자가 너무 편한지 그곳에서 앉아서 꼼짝도 하지 않고, 이런 거 하나 사 달라해서 나는 칼같이 잘랐다.
우리는 저녁을 먹고 각자 티브이를 보든지, 음악을 듣든지 하며 어두워진 바다를 바라보았다.
아침 해가 뜨자 욕조에 들어갔는데 욕조 뷰가 장난이 아니라 한 컷 찍었다.
조식은 어제 편의점에서 사 온 것들로, 나와 아들이 준비하고 뒷정리는 남편과 딸이 했다.
이 리조트는 진짜 전망이 모든 것을 다 한 곳이라 아들이 체크 아웃 하러 나오는 중 마지막으로 전망을 즐기라고 하는 순간 우당탕탕하는 소리가 났다. 우리는 깜짝 놀라 돌아보았는데 딸이 베란다에 전망 보러 가다가 방충망을 못 봐서 그만 방충망이 넘어졌다. 휘어진 방충망을 펴서 억지로 끼워 놓고 우리는 엄청 웃었다.
오는 길에 남편은 도로와 터널을 유심히 보면서 여기는 국도마다 인도가 다 설치되어 있다며 감탄했고, 굉장히 오래된 터널 같은데 균열하나 가지 않았다며 토목 하는 사람답게 유심히 보았다.
그러면서 도로에 풀을 그대로 두었다는 둥 낙엽이 청소를 안 해 그대로라는 둥 투덜투덜 댔다.
열 시쯤 리조트를 나와 이온 몰로 갔다. 이온 몰은 우리나라 롯데몰과 비슷한데
인포메이션에 가서 할인권을 발급받았다.
나는 1층 문구점에서 친구에게 부탁받은 수첩을 샀는데 굉장히 가격이 비싸서 놀랐다.
그리고 1층의 반려견 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우리나라 샵은 반려견들이 불쌍하게 앉아 있는데, 일본의 그곳의 샵은 환경이 좋아 강아지들이 즐겁게 뛰어놀고 활기가 넘쳐 있어서 그 모습이 좋아 보였다.
애들과 나는 몽벨, 유니클로, 스탠다드에서 쇼핑을 했는데 살게 없던 나도 잔뜩 사 들고 왔다.
아들이 유명하다며 4층 식당에서 와쇼쿠(일식)를 한참을 기다려 식사를 하였다.
식사를 하고 애들은 국제 거리에 가서 쇼핑한다고 가고 나와 남편은 가는 길에 슈리성에 내려달라고 했다.
쇼핑할 때는 별로던 남편의 얼굴이 슈리성에서는 엄청 만족한 얼굴이었다. 슈리성에는 수학여행단이 많이 와 있었다. 날씨도 많이 도와줘서 시원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남편은 일본에는 저게 뭔데 여기저기 장식처럼 되어 있냐고 물었는데 그것은 오키나와를 상징하는 시사 라고 이야기 해 주었다.
오키나와 집 지붕이나 문 앞에 있는 사자 모양 장식은 ‘시사(シーサー)’이다.
중국 사자상에서 전해진 오키나와의 수호신으로, 태풍과 재앙이 잦은 섬에서 집을 지키기 위해 놓여졌다고 한다.
입을 벌린 시사는 나쁜 기운을 쫓고, 입을 다문 시사는 복을 지킨다고 해서 보통 한 쌍으로 둔다고 한다.
시사들
국제 거리의 시사 (오키나와 마스코트)
슈리성은 일본의 성이지만, 사무라이가 살던 전쟁용 성이 아니라 류큐 왕국의 왕이 살며 외교와 정치를 하던 왕궁이었다. 류큐 왕국은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무역으로 번영했던 나라였기 때문에 이 성에서도 일본보다는 중국 문화의 영향이 많이 보여 붉은색 건물과 장식이 그 특징이다.
입구의 슈레이몬(崇禮門)은‘예를 중시하는 나라’라는 뜻을 가진 문으로, 류큐 왕국이 무력보다 예의와 외교를 중요하게 여겼다는 상징이기도 하다. 우리는 슈레이몬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갔는데 이곳에도 물시계와 해시계가 있었다. 슈리성은 전쟁과 화재로 여러 번 불탔지만 그때마다 다시 복원되어 왔다. 그래서 이곳은 단순한 유적이 아니라 오키나와 사람들의 역사와 정체성을 상징하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오키나라는 450년간 류큐 왕국으로 단독적인 국가였지만 태평양 전쟁 이후 일본에게 합병된 곳이다.ㅠ
복원 중인 슈리성의 정전
오키나와는 원래 일본의 일부가 아니라, 류큐 왕국이라는 독립된 나라였다.
14세기부터 류큐 왕국은 중국과 일본, 동남아를 잇는 해상 무역으로 번성했고, 무력보다 외교와 예의를 중시한 나라였다. 17세기에는 일본 사쓰마번의 지배를 받았지만, 겉으로는 왕국의 형태를 유지하며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이중 외교를 이어갔다. 19세기말, 일본이 근대 국가가 되면서
류큐 왕국은 폐지되고 오키나와현으로 편입되었다.
이 과정에서 오키나와 사람들은 언어와 문화, 정체성을 잃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오키나와 전투로 많은 민간인이 희생되었고, 전쟁 후에는 일본이 아닌 미국의 통치를 받게 된다.
그러다가 1972년에야 일본으로 반환되었지만, 지금도 미군 기지가 많아 오키나와는 여전히 복잡한 역사와 현실 속에 놓여 있다.
그래서 오키나와는 일본이면서도 일본과는 다른, 자기만의 아픔과 문화를 가진 지역이다. 얼마 전에 불탄 슈리성의 정전은 내년 봄이면 완전히 복구가 된다고 하는데 마치 오키나와의 역사와 닮아 있다.
슈리성 위에서 바라보는 나하 시내는 평온하고 아름다웠다.
슈리성을 나와 걸어오는 중 호수에 처음 보는 칠면조처럼 생긴 새들이 엄청 많이 살고 있었다. 신기했다.
나는 일본에 왔으면 일본 대중교통도 이용해 봐야 된다면서 한참을 걸어 버스 타는 곳으로 갔다. 가는 길은 마치 태국 같은 느낌이 났다.
버스를 타고 국제 거리의 스벅에서 기다리는 아이들을 만나 마지막 숙박지인 르와지르 호텔로 향했다.
체크인을 하고 저녁식사는 호텔 근처 이자카야에 갔다. 절대 술을 안 마시는 사람들이 생맥주가 너무 맛있어서 그런지 다들 한잔씩 주문했다.
꼬지와 해산물이 진짜 맛있었는데 이곳도 종업원은 동남아 사람들이 많았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서 남편은 좁다고 투덜거렸는데, 우리는 일본 호텔은 원래 좁다고, 전에 두 곳이 너무 좋았던 곳이었다며 투덜거리는 남편을 나무랐다.
아침에 일어나니 호텔 주위는 공항에서 가까워 이착륙하는 비행기를 볼 수 있었고 큰 함대도 볼 수 있어 같이 산책을 하였다.
딸은 오후 비행기라 놔두고, 우리 셋은 렌터카를 반납했다. 왜케 일찍 가야하냐고 투덜대는 남편을 위해 공항에 도착해 아침으로 햄 주먹밥을 사 먹었다.
비행기 창문 쪽은 남편에게 양보해 구름 위로 나는 즐거움을 선사하고, 아픈 역사를 가지고도 저렇게 아름다운 오키나와의 바닷물을 뒤로하고 우리는 부산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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