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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mnogoodnw Jun 17. 2024

사실은

남들보다 아주 조금 욕심이 적어, 짧지 않은 기간 살며 정말 갖고 싶다 여긴 것이 몇 개 없는데, 그 와중 갖고 싶던 것이 이어폰이다. 대학생 시절, 돈이 떨어져 중고로 이어폰을 처분했던 것이 한으로 남아 취업하자마자 월급도 받기 전에 이어폰부터 다시 샀었다. 이제는 블루투스의 편안함에 밀려버렸지만, 가끔 그 특유의 음질이 그리울 때면, 거진 무릎까지 오는 줄을 주렁주렁 달고 다닌다.

‘짜라자잔-‘ 서늘한 음색의 기타 소리가 쨍하게 들려온다. 그래, 이런 맛으로 음악을 들었었는데. 같은 음원이어도 그 소리는 천양지차. 간만에 밀려오는 그 시원함이 다시금 나를 깨운다. 주렁주렁의 불편함 정도야, 내가 잘 간수하고 다니면 그만. 지금의 내게는 이 즐거움이 이미 그것을 압도했다. 역시 나는 플랫한 음색이 좋다니까.

며칠을 그렇게 달고 다니니, 그 특별했던 플랫함은 심심함으로 둔갑하고, 내게 남은 것은 주렁주렁 뿐. 집에 가자마자 아래에서 두 번째 잡동사니 칸에 다시 이어폰을 처박곤 블루투스 이어폰을 낀 채 운동을 간다. ‘두두둥-‘ 역시 이 베이스 빵빵한 음은 사람을 즐겁게 한다. 게다가 이 비할 데 없는 편안함. 아쉽지만, 시장에서 줄 이어폰이 블루투스 이어폰에 잠식당한 이유가 다 있다.

또 며칠 지나면, 아, 이건 내가 좋아하는 음색이 아닌데. 뻔하다. 수많은 가르침들은 결국 ‘모든 것을 얻을 수 없다’로 귀결됨을 알아도, 전부 다 내 거 하고 싶다. 만약 양으로 표현하자면, 분명 이것도, 저것도 사실은 기쁨이 슬픔을 압도할 만큼 많은데, 내 눈에 크게 뵈는 것은 슬픔뿐이다. 분명 남들보다 아주 조금 욕심이 적은데 말이지.

그러니까, 사실은, 누구 말에 따르면, 줄 이어폰도, 블루투스 이어폰도 갖고 있는 나는 행복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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