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II 19 생애 최고의 생일(중)

가족의 의미

by 한우물
다음날

어제부터 우중충하던 날씨는 드디어 빗방울을 흩뿌리기 시작했다.


아침은 서울에서 준비해온 맛있는 전복죽으로 먹고

점심은 경주에서 유명한 김밥과 칼국수를 사 와서 먹었다.

김밥과 칼국수.png

원래는 다 같이 밖에 나가 점심도 먹고 구경도 할 계획이었지만 비로 인해 혹시라도 내가 넘어질까 염려한 식구들이 그냥 빌라에서 보내는 게 좋겠다 하여 그리 한 것이다.


오랜만에 하는 물놀이라 그런지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비가 와도 옥외풀장에서 재미있게 놀고 있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자 다들 본채 바로 밖에 세워진 바비큐장으로 이동했다.


편리하고 안전한 가스용 구이기에, 기다란 식탁에, 추울 때를 대비한 스탠드 형 온열기를 갖춘 멋진 바베큐장은 비나 바람으로부터 자유롭게 해 줄 뿐아니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바깥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유리벽이 있어 좋았다.

느와르블랑 바비큐장 사용법 홍보 동영상을 캡처 한 화면


식탁 위에는 아내와 며느리가 집에서 준비해 온 밑반찬과 낮에 장 보러 가서 사 온 상추, 깻잎, 파절이, 쌈장 등이 차려지고 고기 굽는 일은 아들과 딸이 맡았다.


즉석에서 굽고 자르고 까고 발라서 내주는 돼지고기, 소고기, 곱창, 버섯, 새우, 관자는 얼마나 맛이 있던지….


창밖은 어둑해져 운치를 더하고, 빗줄기는 굵어져 천정을 소리 나게 두드리고, 개구리들은 빗소리 장단에 맞춰 “개굴개굴” 축하송을 불러댄다.


이 얼마 만에 듣는 개구리 울음소린가!


맥주로 다시 한번 생일 축하 건배를 하며 즐겁게 먹고 마신 후, 드디어 이 행사의 클라이맥스인 ‘편지 낭독’ 시간이 돌아왔다.

맨 먼저, 장녀인 딸이 앞으로 나와 밝은 음성으로 이야기하듯 편지를 낭독했다.


딸의 편지


아빠.

먹을 것으로 가득 찬 봉지를 들고 집에 돌아오실 때마다 제가 신나서 뛰어나가던 날이 몇 년 전 같은데

세월이 이렇게 흘러 며느리 조카를 맞이한 할아버지가 되셨네요.


이 만만치 않은 세상에서 아픈 왼발로 세상살이하신다고 얼마나 수고가 많으셨나요?

가끔은 불편한 다리 때문에 하소연하실 법도 한데 아무 불평하지 않는 아빠를 보면서

'저건 성격인 건가? 경상도 남자라서 그러신 건가?'라며 의아해했던 기억이 있어요.


징징대지 않는 아빠 곁에서 자란 딸이라서 그럴까요?

남자가 징징대면 남자처럼 안 보여서 지금까지 싱글이네요.

한번 갔다 와야 했나요?


다행히 승윤이가 윤정이와 결혼해서 이쁜 조카를 안겨드렸으니 손자 손녀에 대한 부담은 덜었네.


아빠 덕분에 부자는 아니더라도 안정적으로 잘 자랄 수 있었어요.

어떤 사람들은 집안 사정으로 인해, 가고 싶어도 못 가는 미국 유학을 갈 수 있었어요.

그러나 항상 아끼고 미래를 위해 허리띠 졸라맨 엄마가 아니면 못 갔을 거예요.


아빠도 친목을 위해 자신을 위한 돈 좀 쓰신 거 아시죠?

(다들 웃음)


미국 유학 시절 외국인 신분으로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고,

사건이 터져도 부모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부모님의 울타리가 얼마나 중요한 건지 깨달았어요.

대신 그 공백의 자리를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시간으로 채웠어요.


아빠,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올릴 때 아빠에게 받은 상처로 인해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를 재정립해야 하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물론 어릴 때 아빠랑 한 번씩 세게 부딪혀서 울고불고하고,

승윤이가 그 와중에 혹시나 자기에게 불똥 튈까 몸 사리는 상황들도 있었어요.

그치만 전 아빠를 생각하면 뭔가 든든하고 멋지고 남자다운 분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빠,

어느 때부터인가 아빠 머리에 더 이상 검은색 머리카락을 찾아볼 수 없고,

걸어 다닐 수 있는 시간이 점차 짧아진 것을 보면서 ‘아 벌써 내가 40살이 넘었고 아빠가 칠순이시구나.’

하며 강물처럼 흘러간 여러 세대의 인생 역사가 느껴집니다.


인생 후반부에 글쓰기에 도전하고 여기에 푹 빠져서 매진하는 아빠를 보면서

'아빤 좋겠다. 좋아하는 분야를 또 찾으셔서'라며 부러워하기도 하고,

'아빠가 진짜 대박을 터뜨리면 어쩌지? 드뎌 40대에 샤넬 매장 한 번 가보나?' 하는 기대도 해 봅니다. ㅋㅋ


뭐든 한 번 하면 끝장을 보는 아빠.

아빠 글을 통해 많은 사람이 상처를 위로받고 힘든 세상살이 이겨나갈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길 응원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빠 글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길 기대합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존경합니다, 우리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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