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방문객
"따르릉!"
평소 잘 울린 적이 없는 판독실 전화기가 오랜만에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길래
'누구지?' 하며 수화기를 들었다.
"교수님, 원무관데요. 지인이라는 분이 찾아와서 뵙기를 청하는데 어떡할까요?"
"전화 바꿔주시죠."
그러자 바로 전화 바꾸는 소리가 들리고 웬 남자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왔다.
"아, 한 교수. 나 홍 00 선생 친구 정 00인데 지금 올라가도 되겠소?"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여기까지 왔을 때는 분명 내게 부탁할 게 있어 왔을진대,
굽신거려도 뭣 할 판에 뭔가 말을 비시디기 까는 것 같아 기분이 살짝 상하려 했다.
하지만 어투를 보아하니 상대는 나를 잘 아는 모양인 데다
홍 교수 친구라면 나보다 네댓 살 많은 사람이다 싶어 그냥 그러라고 했다.
몇 분 후 부인과 함께 찾아온 그는 마스크를 벗고 인사를 하며 자신은 1980년대 초에
부산@병원 00과 교수로 몇 년간 나와 함께 근무한 적이 있다 하였다.
하지만 영상의학과와 00과는 업무적으로 전혀 연관이 없다 보니 서로 만날 일이 없어
이름도 기억나지 않고 얼굴도 생소했다.
나를 찾아온 사연
그가 나를 찾아온 사연은 이러하였다.
- 그의 아내가 해운대@병원에서 건진 목적으로 초음파 검사를 받았는데 담석증이라면서 수술하는 게 좋겠다 하여 그의 오랜 친구인 일반외과의 홍 교수와 주 교수에게 상의를 하였다.
그들은 이왕 수술할 거면 과거 자신들이 함께 근무하던 부산@병원 외과의 최 교수에게 받아라 하여 그를 찾아갔다.
최 교수는 부인의 증세를 들어보고 해운대@병원에서 찍은 초음파 사진을 보더니 아직 수술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며 그냥 돌려보냈다.
이렇게 양쪽 말이 서로 다르다 보니 갈피를 잡지 못한 그는 다시 한번 친구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그러자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렇다면 초음파 전문가인 한 교수에게 가서 한 번 더 검사받고 그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되겠다 하여 내 근무지를 수소문하여 찾아왔단다. -
초음파 소견
원무과에 가서 수속을 끝내고 온 부인을 검사한 결과,
자그마한 담석이 네댓 개 있는데 담낭의 용적은 정상이고 담낭벽도 깨끗하다.
검사를 마치고 판독실에서 마주 앉자 환자는 근심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돌은 여러 개가 있옵니다만 담낭이 깨끗한 걸로 봐서 그동안 애는 별로 안 먹였겠네요."
"예, 70년 동안 담석이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았는데 작년 말부터 한 번씩 명치끝이 아파 복부초음파 검사를 받고 알게 되었습니다. 내시경에서는 이상이 없었고요."
해운대 병원에서 찍은 초음파 날짜를 보니 작년 12월과 금년 2월이다.
둘 다 지금 소견이나 별반 다를 바 없다.
이제 나의 답은 정해졌는데, 그걸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자칫 둘 중 한 사람은 돌팔이 취급당할 수도 있으니 거 참 입장 난처하게 되었다.
담석증이란 병
다음에 나올 나의 조언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담낭의 역할과 담석증이란 병에 대한 기본 지식이 있어야 한다.
담낭(쓸개, 곰의 웅담)이란 간에서 만들어진 담즙을 저장하고 농축하였다가 위장에 음식이 들어오면 필요한 만큼 짜내어 소화를 돕는 장기를 말하고, 그 속을 채우는 담즙은 빌리루빈(대변을 노랗게 보이게 하는 성분), 콜레스테롤, 칼슘염등으로 이루어져 있어 지방을 분해하는 효소 역할을 한다.
담석이란 이러한 담즙이 뭉치고 굳어져 돌처럼 딱딱한 결정체를 형성한 것을 말하고, 그 돌이 있는 위치에 따라 담낭결석과 담도결석으로 나누는데, 일반적으로 말하는 담석증은 담낭결석을 일컫는다.
원인: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으나 담석증 발병률을 증가시키는 요인은 다음과 같다.
1. 담즙 내에 콜레스테롤 치가 높을 때 - 고지방식, 알코올, 비만, 급격한 체중 감량
2. 담즙 내에 빌리루빈 치가 높을 때 - 간질환, 특히 간경화
3. 성별 - 여자 > 남자
4. 나이 - 나든이 > 젊은이
5. 여성 호르몬의 증가 - 임신, 경구용 피임제, 호르몬 치료 시
6. 가족력
7. 질환 - 크론씨병 등
증상:
평생을 아무런 증세 없이 사는 사람도 많이 있고, 통증이 있을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한 번씩 우측 갈비뼈 아래에 묵직한 동통이 느껴지고 심할 경우 칼로 에이는 듯한 통증이 온다.
돌이 점점 커지고 많아지면 담낭벽을 자극하여 통증의 빈도가 증가하며, 응급실로 가야 할 만큼 아픈 경우는 돌이 담즙이 빠져나가는 통로, 즉 담낭관을 틀어막아 담낭이 풍선처럼 확장되었을 때다.
자가치료법:
이 부분은 필자의 아내가 담석증으로 고생을 해보았기에 그 경험에서 얻은 노하우를 전하는 것이니 담석증 환자들은 필히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1. 게보린 같은 일반 진통제와 장의 긴장을 완화시키는 '(복합) 부스코판'을 가정상비약으로 준비해 두었다가 배가 심하게 아플 때 둘 중 하나를 먹어보고, 정 안되면 둘을 함께 복용한다.
2 배를 커버할 정도 크기의 전기핫팩을 바닥에 깔고 배를 대고 엎드린다.
그래도 별 효과 없으면 엎드린 상태에서 좌우로 돌아누워 본다.
* 부스코판과 핫팩은 경직된 장의 긴장을 풀어주어 통증을 완화시키고
* 엎드리는 자세는 막힌 돌이 잘 빠져나오게 해 준다.
이 자세에서 돌이 잘 빠지는 이유는 담낭은 배의 앞부분에 있는 반면
담낭관은 배의 뒤편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나의 조언
"환자의 입장에선 황당하겠지만, 앞서 진찰한 선생님들의 말이 둘 다 일리가 있습니다. 그 말은 곧 지금 같이 애매한 상황에서는 딱히 정답은 없다는 뜻이지요."
그러고 나서 나는 내 아내의 경우를 죽 설명한 후 결론적으로 말했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인생이란 요리의 레시피 제12, 13화(아내의 수술 편)에 자세히 나와 있으니 참고 바람-
https://brunch.co.kr/@@dCCW/86
"지금 당장 수술할 단계는 아니므로 이번 1년 동안은 지켜보시지요.
그러다가 통증이 오는 빈도와 강도가 증가하고 그 간격이 줄어든다 싶으면 즉시 수술을 받으세요.
사모님 연세가 있기 때문에 나이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수술하는 것이 여러모로 좋습니다."
담낭이 없어도 괜찮나?
별 문제없다.
수술 후 몇 개월 간은 소화가 잘 안 되는 경향이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 적응한다.
하지만, 과식하면 잘 체하므로 주의해야 하고 그중에서도 특히 육고기 같은 기름진 음식이 그렇다.
나 수술하기 싫은데, 좀 아파도 참으면 안 되겠나?
안 된다.
돌이 굴러다니면서 담낭벽을 자극하거나 돌이 막혀서 심한 통증을 자주 일으키면 담낭벽에 염증을 유발하게 되고, 이런 일이 반복되면 담낭벽이 두꺼워지면서 담낭이 쪼그라들어 담낭이 제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된다. 또한 만성담낭염은 담낭암의 한 원인이 되기 때문에 놔둬서 좋을 게 없다.
그러니 이런 고통과 위험을 안고 사느니 마~ 쓸개 빠진 사람이 되더라도 속 편하게 사는 게 낫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