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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우물 Mar 28. 2022

인11 우문현답

임기응변의 묘

세상 돌아가는 꼴이 하도 역겨워, 

나 같이 실망하고 분노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조그마한 위안이라도 주고자 

패북에 재미있는 영상을 올리기 시작한 지도 근 5년이 되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지인이 다음과 같은 댓글을 달았다.


“교수님, 이런 사진 다 어디서 채굴하십니까?ㅋㅋ 대단하십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에, 순간,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그 그림이나 사진들은 어떤 특정 사이트에서 구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필자가 오랜 세월 동안, 

강의나 글 쓰기 작업에 필요한 자료를 찾기 위해 인터넷 서핑을 하던 중 우연히 건져 올린 대어들로서 

오랜 숙성 기간을 거친 후 하나하나에 제목을 달아 방출해온 것이다.


댓글 답변이라는 좁은 공간 안에서 이런 시시콜콜한 사연 다 쓰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해서 묻는 데 답을 안 해 줄 수도 없어 난감해하던 차에, 

마침 잊을 수 없는 추억 하나가 반짝하고 떠올랐다.     


       1969년, 고등학교 2학년 세계사 수업시간    
  

선생님께서는 한 프랑스 왕이 총애하는 신하를 은밀히 불러 밀실에서 나눈 밀담에 대해 

마치 현장에 있기라도 한 듯 실감 나게 설명을 하였다.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여 중간에 손을 들고 다음과 같이 질문하였다.     


"선생님, 그 당시는 사진기도 녹음기도 없던 시절인데, 밀실에서 단둘이서 나눈 비밀 이야기를 300년도 더 지난 이 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알 수가 있습니까?"

     

그러자 선생님은 이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몇 초간 멍하니 내 얼굴만 쳐다보고 있더니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다~ 아는 수가 있어!”     


그때 나는 속으로

'뭐 이런 황당한 답이 다 있노? 그 수가 무언지 궁금해서 물었는데 다 아는 수가 있다니?'

라며 선생님이 영 신통찮다고 생각했다.     


그 후, 세월이 지나 나는 학생에서 교수로 입장이 바뀌었다.

35년 동안 강의자로 살아오면서 그 일이 떠오를 때마다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선생님, 그때 얼마나 황당하고 당황스러웠을까? 

만일 내가 그 입장이었다면 나같이 임기응변에 약한 사람이 과연 어떤 답을 내놓았을까? 


당시에는 그날의 질문과 답변이 현문우답(賢問愚答)라 생각했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우문현답(愚問賢答)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일을 떠올린 나는 

‘이런 사진 어디서 구하느냐’는 또 한 명의 나 같은 패친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글을 달았다.     


"다구하는 데가 있어!"     


아무리 봐도 명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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