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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37 도덕 선생님의 아이러니 '왜이러니'

아이러니

by 한우물

# 1969년, 고교 2학년 때

우리 학교에 00선생님이 한 분 계셨다. 별명은 '코따까리'.

하필이면 왜 그런 별명이 붙었는지는 굳이 설명 안 해도 다들 짐작할 것 같으니 그냥 넘어가기로 하자.


어느 날 도덕 수업 시간에 제일 뒷줄에 앉은 덩치 큰 친구 하나가 책상 밑에 음서를 한 권 숨기고 탐독하다 선생님께 걸렸다. 책은 그 자리에서 압수당하고 그는 체벌을 받았다.

책 제목은 <꿀단지>.


1960년 대 당시 우리나라는 세계 최빈국 중 하나로서 국민소득이 북한보다 낮았다.

그런 시절, 글을 생계수단으로 삼는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한국을 대표할만한 훌륭한 문인들 조차 생활고를 못 이겨 음란 소설 집필 유혹에 빠져 든 이들이 간혹 있었다.


한창 사춘기에 접어든 남자 고교생들에게 이들의 작품은 호기심의 정점에 있었고 당시 우리 학교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책은《벌레 먹은 장미》와 《꿀단지 》였다.


이 중 방인근 씨 작품인 《벌레 먹은 장미》는 19금이긴 하지만 책방에서 유통되는 작품으로 나중에 성인영화로도 제작되었다. 하지만 지독한 음란소설인《꿀단지 》는 심사를 통과할 수 없어 비공식적인 경로로만 유통되어 학생들의 인기를 독차지하였다.


이 작품의 저자는 당시 최고의 문필가 중 한 사람인 정비석 씨로 알려졌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누군가가 그의 이름을 도용한 것 같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자신의 글이 국어 교과서에까지 오른 문필가가 어찌 이런 음란 서적에 자신의 본명을 썼겠는가!


아무튼, 이 꿀단지는 학생들로 하여금 집에서는 한밤중에 부모 몰래 이불 뒤집어쓰고 보게 하고 학교에서는 수업시간 중 선생님 몰래 도독처럼 꿀단지 속에 빠져들게 만들었으니 그야말로 이름값 한번 톡톡히 했다.


# 다음 도덕시간

선생님은 그날, 웬일인지 학생들에게 수업 대신 자습을 시키고는 교실 앞 창가 쪽 책상에 앉아 크고 기다랗게 생긴 출석부를 열심히 보고 계셨다.


앞에서 두 번째 줄에 앉은 나는 뭔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거 이상타! 왜 출석부를 저렇게나 열심히 보실까?'


그러던 중, 제일 앞줄에 앉은 친구의 지우개가 떨어져 칠판 쪽으로 굴러가자 그는 그것을 주우러 무릎을 구부리고 살금살금 앞으로 나갔다. 그러고는 선생님 쪽으로 살며시 고개를 돌려 훔쳐보았다. 그 역시 나처럼 뭔가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는 못 볼 걸 보고 말았다. 출석부 안에 감추어진 작은 책 한 권을.


선생님은 그 친구가 앞으로 들락거리는 것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꿀맛삼매경에 빠져있다가 수업 종료 시간이 다 되어가자 출석부를 내려놓고는 교실 뒤로 걸어가 책 주인 귀에다 귓속말로 조용히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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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단지 2편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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