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19 홀로됨의 두 얼굴, 고독과 외로움

by 한우물
고독과 외로움의 정의

외로울 고(孤)와 홀로 독(獨)으로 이루어진 고독이란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매우 외롭고 쓸쓸함'으로 되어있고, 이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 solitude의 가장 기본적인 의미는 '혼자 있는 상태(The state of being alone)'를 뜻한다.


이와 비슷한 의미를 가진 '외로움'의 정의는 '홀로 되어 쓸쓸한 마음이나 느낌'으로 고독과 별반 다를 바 없고, 이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 loneliness는 '친구나 동료가 없어서 느끼는 슬픔(sadness because one has no friends or company)'이라 되어있다.


이처럼 두 단어는 한자어와 순우리말이라는 차이만 있을 뿐 사전적으로는 거의 감별되지 않는 단어로서 혼용되어 쓰이는 경우가 많고 이러한 사정은 영어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두 단어의 뉘앙스에는 뭔가 묘한 차이가 있고, 그동안 쓰여진 문필가나 사상가들의 글 역시 이들을 구별하여 쓰는데 더 큰 무게를 두고 있다.

그러면 이제 이들의 같은 점은 무엇이고 차이점은 무엇인지, 그들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 탐구의 여행을 떠나보자.


고독과 외로움의 차이

고독과 외로움은 ‘홀로 된 상태에서 오는 감정'이란 공통점을 가지지만, 홀로됨의 원인과 결과에는 큰 차이점이 있다.


고독은 어떤 목적을 위해 스스로 혼자 있는 시간을 택하는 자발적인 홀로됨이 주된 원인이지만 외로움은 주변 사람들로부터의 소외, 따돌림 등으로 인한 사회적 고립이나, 주변에 사람은 많아도 깊은 교감을 나누지 못하는 관계의 질적 결핍이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별이나 이별 등 원치 않는 관계 단절에서 온다.


그 결과, 고독은 휴식, 자기 성찰, 창의성 증진 등에서 오는 중립적이거나 긍정적인 감정으로 나아가지만, 자신의 의사와 반하는 외로움은 쓸쓸함, 소외감, 공허함, 상실감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주를 이루어 심하면 우울증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


인생 제2막

이러한 고독과 외로움은 인생 제2막의 시작을 알리는 정년 퇴임과 함께 찾아온다.

당분간은 직장과 일의 압박감에서 벗어나 마음껏 휴식을 누리고 그동안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던 일에 빠져 즐거워하지만, 그 유효기간은 길어야 6개월.


익숙했던 일상과의 단절은 무료함과 무기력감에 빠지게 하고, 차갑게 변해가는 옛 직장 동료들의 응대는 인간관계에 회의를 느끼게 만들고, 사회생활의 울타리 밖으로 밀려났다는 현실에 대한 인식은 고립감과 함께 외로움과 쓸쓸함이란 낯선 손님들을 몰고온다.


몸이 노쇠해지면서 그동안 잠재해 있던 병증이 곳곳에서 불거져 나오고 호주머니까지 메말라가다 보면 보고싶은 사람들과의 만남마저 수월찮게 되고, 하나둘 날아오는 부고장은 상실감과 비통함을 넘어 인생무상의 감정까지 가지게 만든다.


아름다운 역설의 열매

고독과 외로움.

이 둘은 서로 비슷하면서도 다른 차원의 감정이지만 결코 따로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맞물려 돌아간다. 대부분의 고독은 외로운 상태에서 시작되고, 외로움 속에서 고독의 가치를 발견하고, 그 고독을 통해 외로움을 이겨나가고, 고독하다가도 외롭고, 외롭다가도 고독해진다.


우리는 외로움의 미로를 헤매다 관계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고독의 정원을 거닐며 소원했던 자신과 더욱 가까워지면서 보다 깊고 폭넓은 인간으로 성숙해 간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인생의 황금기에 18년 동안(40~57세)이나 억울한 유배 생활을 해야 했다. 그는 9명의 자녀 중 다섯 명을 먼저 떠나보냈고 유배 기간에는 네 살짜리 막내아들마저 천연두로 잃었다. 하지만 그는 그토록 힘든 시기에 「목민심서」를 위시한 500여 권의 서책을 펴내며 조선 후기 실학의 집대성자로서 놀라운 학문적 업적을 이루었고 그의 저술과 사상은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크나큰 영감을 주고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만약 그가 자신을 옭아넣은 동료들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 억울함, 극심한 고립감과 소외감, 그리고 자식을 잃은 부모의 '간장을 후벼 파는 슬픔'(두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쓴 표현)에 매몰되어 있었더라면 이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분이야말로 외로움의 늪에서 빠져나와 고독의 바다로 자유롭게 헤엄쳐 간 위대한 스승이었다.


고독과 외로움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감정이다. 중요한 것은 이 두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있다. 외로움을 통해 관계의 소중함을 더 깊이 깨닫고 고독을 통해 내면의 평화를 찾아갈 수 있다면 우리는 혼자 있는 시간도, 함께 있는 시간도, 더욱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노년에 맛볼 수 있는 아름다운 역설의 열매인지도 모른다.




※ 표 제사진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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