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40 비교하는 마음이 연주하는 삶의 변주곡

by 한우물

사람은 누구나 남을 보며 산다.
그러면서 자기 삶도 함께 보며 비교의 눈을 뜬다.

나보다 잘난 사람. 나보다 많이 가진 사람.

이들을 볼 때 반사적으로 일어나는 감정은 부러움이다.

저 사람은 저렇게 잘났구나.

저런 재능이 있구나.

저런 사랑을 받는구나.
나는 없는데 저 사람은 있구나.
이 단순한 자각이 부러움의 시작이다.

부러움에는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동경과 일말의 아쉬움이 섞여 있을 뿐

그 속에 아직 독기는 없다.

그래서 보다 인간적이다.


하지만 부러움이 오래 머물거나 정도를 지나치면

그것은 금세 시기로 변한다.


시기는 남의 좋은 점을 보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왜 하필 저 사람인가, 왜 나는 아닌가, 세상은 왜 이렇게 불공평한가.

이 질문이 시작되면 감정은 이미 자기 성찰을 떠나 불만의 늪으로 빠져든다.


시기는 무섭다.
겉으로는 조용하지만, 속에서는 남의 행복이 불편해진다.
축하해야 할 자리에서 박수가 잘 나오지 않고,
남의 칭찬을 들으면 먼저 흠집부터 찾고 싶어진다.

그 사람의 노력은 지워지고 결과만 크게 보인다.
운이 좋았던 게지, 다 배경 덕분이지, 별 잘난 것도 없구먼.
이런 말은 남을 향한 평가라기보다 금이 간 내 마음의 고백에 가깝다.


시기가 자라나면 질투가 된다.

시기가 ‘왜 저 사람인가’라고 묻는 감정이라면,
질투는 ‘저 사람이 가진 것을 잃게 하고 싶다’라는 충동에 가깝다.

질투의 밑바닥에는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다.
사랑을 빼앗길까 봐, 자리를 빼앗길까 봐, 나의 몫이 줄어들까 봐 불안한 것이다.
그래서 질투는 관계 속에서 더 날카롭고,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쉽게 불붙는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부러움과 시기와 질투는 모두 남 때문에 생기는 감정 같지만
실은 내 안의 결핍이 끌어올리는 어두운 그림자 같은 것이다.


내 존재의 가치를 인정하지 못하고

내 가진 것에 감사할 줄 모를 때
타인의 빛은 유난히 눈부시고

그 앞에 선 나는 초라해 보인다.


하지만 이 감정들을 무조건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부러움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려주고

시기는 내 자존감의 상처가 어디에 있는지 보여주며
질투는 내가 무엇을 잃을까 두려워하는지 드러낸다.

그러니 이 감정들은 감추어야 할 수치라기보다 읽어내야 할 신호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감정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에 끌려다니지 않는 사람이 되는 일이다.


누군가가 부러울 때
이제 나는 내 마음에 이렇게 묻고 싶다.

나는 저 사람의 무엇이 부러운가.
그것이 왜 부러운가.

그것은 진정 부러워할 가지가 있는가.


막연한 비교는 사람을 소모시키지만

정확한 자각은 사람을 성장시킨다.


시기와 질투가 올라올 때일수록 더 정직해져야 한다.
나는 지금 약해져 있구나.
나는 지금 인정받고 싶구나.
나는 지금 사랑이 부족하다고 느끼는구나.


이렇게 자기 마음의 바닥을 인정하는 일은 비참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때부터 감정은 독이 아니라 고백이 된다.


사람은 끝내 비교를 멈출 수는 없다.
하지만 비교의 방향은 바꿀 수 있다.


남의 삶을 보며 자신을 깎아내리는 대신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는 쪽으로.
남이 가진 것을 세는 대신
내가 지켜 온 시간과 견뎌 온 계절을 떠올리는 쪽으로.


그렇게 살아가면 부러움은 성장의 발판이 되고
시기는 성찰이 되며
질투는 관계를 지키고 싶은 마음의 미숙한 표현으로 가라앉는다.


부러움과 시기와 질투.

이 셋은 모두 인간이 악해서 생기는 감정이 아니다.
인간이 너무 인간적이어서 생기는 감정이다.
다만 그 감정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뿐이다.


남의 빛을 보며 어두워지는 사람이 있고
남의 빛을 보며 자기 등불을 고쳐 켜는 사람이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남이 얼마나 빛나는가가 아니라
그 빛 앞에서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는가 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