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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우물 Jun 12. 2022

나10 국보가 된 날

소확행

젊은 시절 한참 잘 나갈 땐 저녁 식사를 밖에서 하는 빈도가 너무 잦아 아내에게 미안했는데

퇴임 후에는 너무 집에서만 먹어서 미안하다.

 

'오늘 저녁에는 또 무얼 차리지?' 하는 고민에 빠질 아내를 생각해서 

“오늘 퇴근길에 뭐 좀 사 올까? 뭐 먹고 싶어요?” 하고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물어본다.     


오늘도 그랬다그런데 아내는 생각나는 게 별로 없는 모양이다.

마침 조간신문 사이에 끼어 들어온 코다리 전문식당 광고가 생각나

코다리찜 좀 사 올 테니 막걸리나 한 병 사놓으시라요.” 하고 집을 나섰다.

 

출근해서 환자 한 명 보고 방에 오니 부재중 전화가 한 통 들어와 있다.

금정산 보쌈’ 사장님 전화다웬일이지?

전화를 넣었더니 반갑게 받는다.

 

“교수님, 저번에 주신 책 잘 읽었습니다. 지난번 얼굴특강도 좋았지만 이번 책은 그야말로 최곱니다.”


올 2월 말에 출간한 나의 저서아무튼, 사는 동안 안 아프게」에 대한 감사의 인사다.

 

감사합니다안 그래도 책을 드리고 나서 음식 부분에 대해선 그 분야 전문가이신 사모님께 한번 솔직한 평을 듣고 싶었는데 잘됐네요내용 중에 혹시 잘못된 곳은 없던가요?”

 

“어데에! 완벽합디더. 이 책을 읽어보니 교수님은 온갖 문제에 대해 훤히 꿰고 계신 것 같습디다.”

아이고과찬의 말씀입니다.”

 

“참, 제가 전화드린 건 다름이 아니라 사모님 전화번호 좀 알고 싶어서요.

~문자로 넣어드리지요저도 제 아내 전화번호를 잘 못 외워서요.ㅎㅎ

 

문자를 보내고 얼마 안 있으니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보, 여보, 여보, 바빠요?”

아침부터 웬 호들갑?”

 

“오늘 올 때 코다리 안 사 와도 되겠다. 방금 금정산 사장님이 전화가 와서 당신 책 읽고 하도 감동을 받아 간장게장을 갖다 주겠다고 하지 뭐예요?”

그래서?”

 

“괜찮다고. 그걸 들고 어디 여기까지 오시겠냐고. 남편 퇴근할 때 금정산 들러서 가져오라 하겠다고 했는데도 부득부득 갖다 주겠다네요.”

고맙기도 하제!”

 

“그런데 당신 보고 뭐라시는 줄 알아요?”

뭐라던데?”

 

“당신은 대한민국 국보 같은 존재랍니다 ㅎㅎㅎ. 아이고, 내가 이때까지 국보 마누라로 살아온 것도 모르고 있었네요. ㅋㅋ"    

]

호오그런 일이그러니끼니 귀한 남편 앞으로 잘 알아서 모시라우흠 흠.”

"알갓시요, 국보님."

 

퇴근해 집에 돌아오니 큰 선물 보따리가 와 있다.

간장게장에김 튀각 세 봉지에쑥떡에모도배기떡까지.


그것도 게장튀각떡을 각각 보자기에 싸서 큰 쇼핑백 안에 넣어 보냈다.

내용물을 보아하니 하나하나 정성이 보통 들어간 음식이 아니다.

 

지금껏 많은 사람에게 선물해 본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남의 선물에 대한 감사의 표현에 있어서는  한국 사람, 그중에서도 경상도 사람만큼 서툰 사람은 세상에 없을 것 같다.

 

이번 신간이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책이 내 손에 들어오자마자 맨 먼저 13명의 우리 재단 소속 병원 과장들에게  한 사람 한 사람 이름과 함께 작가 사인을 하여 보내주었다.


그런데 여태껏 책을 받은 데 대한 감사의 인사나 책 내용에 대한 서평 치례를 해 온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물론 대부분이 내 제자들이라 내가 어려워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건 아니지.


아무튼, 경상도 보리 문둥이들이 원래 이래요. 사람은 진국인데 멋대가리는 참말로 없다.

내 다시는 주나 봐라!

 



그런 와중에 이런 인사를 받았으니 참으로 귀하고 귀하다.


비록 아첨이라 할지라도 사람은 칭찬을 받으면 기분이 좋은 법인데, 

오늘 나는 생애 최고의 찬사를 받았다.

그에 더해, 그분은 내 책을 한 장 한 장 아껴가며 읽는다 한다.


물론 그 사장님은 대학 선배의 부인으로서 평소에 우리 부부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가진 분이라

애정 어린 눈길로 글을 읽다 보니 내 글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좋게 보였을 수 있다.


하지만, 비록 그런 선입관이 작용했다 하더라도 나는 오늘 나의 가치를 최고로 알아주는 사람을 만났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 중에 '士爲知己者死 女爲悅己者容, 사위기지자사 여위열기자용’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사마천의 자객열전에 나오는 豫讓(예양)의 말로서 우리말로 옮기자면 다음과 같다.

 

여자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화장을 하고,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내가 원래 그런 류의 사람인 데다, 이리도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났으니 내 어찌 즐겁지 않겠으며 술 한 잔 없을쏜가!


그런데, 막걸리에 간장게장은 어울리지 않을 것을 염려한 아내가 
"게장은 내일 맛보기로 하고 오늘은 마전이나 드소." 하며 먹음직한 전을 한 판 지지직 구워 올린다.


막걸리 한 사발에 아내의 손맛과 정성이 듬뿍 담긴 전 한 점이 그렇게 맛있을 수 없다.

참으로 기분 좋은 저녁이다살맛 나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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