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2일 전국의 심장외과 의사들을 충격에 빠뜨린 기사가 올라왔다.
'심장 수술 도중 대동맥 캐뉼라가 빠져 환자에게 영구적인 발달장애 후유증이 발생한 사건과 관련해, 법원이 의료진 과실을 인정하며 9억원에 달하는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제17-2민사부(재판장 차문호)는 환자 A씨 등이 재단법인 B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1세된 복잡심장기형을 가진 아기의 심장 수술 도중에 산소를 실은 피를 공급하는 대동맥 캐뉼라가 빠지는 사고가 발생했고, 의료진이 서둘러 응급처치를 해서 아이가 살았지만 이 사고로 인해 뇌에 피가 가지 않아 영구적인 뇌손상이 발생하여 병원측이 피해자측에 9억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다.
이 기사를 접하는 독자들은 당연한 판결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전문지식이 없는 환자측이 병원을 상대로 의료과실을 입증하기 힘든데 모처럼 잘 된 판결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 판결이 우리 사회에 끼치게 될 파장은 그리 간단치가 않다.
위 환아의 심장병명은 활로씨 사증후군(Tetraology of Fallot)과 폐정맥협착기형, 그리고 시미타증후군으로 나와 있다. 필자는 비록 성인심장수술을 전공했었지만 흉부외과 의사인 필자 조차도 '시미타 증후군(Scimitar syndrome)'이라는 병명을 처음 들어봐서 찾아봤다. 시미타는 터키에서 전통적으로 사용해오던 '굽은 칼'을 의미하는 단어라고 한다. 폐에서 산소를 실어 심장으로 돌아오는 폐정맥이 원래 연결되어야 하는 '좌심방'으로 돌아오지 않고 '하대정맥'등으로 돌아오는 폐정맥의 기형으로 엑스레이상 폐정맥이 굽은 칼처럼 보여 저런 병명이 붙었다고 한다.
활로씨 사증후군(Tetraology of Fallot)도 수술기법이 많이 발전한 지금은 안전한 수술로 여겨지고 있지만, 20~30년 전만 하더라도 수술사망률이 높은 심장기형이었다. 이 활로씨 사증후군이라는 병을 별도로 하더라도 시미타 증후군 하나만 해도 복잡심장기형의 범주에 들어간다. 폐에서 산소를 실은 피가 좌심방과 좌심실을 거쳐 대동맥으로 가야 하는데, 산소를 싣기 위해 허파로 가는 하대정맥으로 되돌아오게 되니 결과적으로 우측 폐는 기능을 전혀 안하는 셈이 되고, 우측 심장에는 과부하가 걸려 폐부전과 폐동맥 고혈압이 발생할 수 있다. 그리고 치료하지 않을 때 주로 이것이 사망 원인이 된다.
즉, 혈액의 정상적인 이동과정은 다음과 같다.
대정맥 --> 우심방 --> 우심실 --> 폐 --> 폐정맥 --> 좌심방 --> 좌심실 --> 대동맥 --> 돌고돌아 대정맥
이렇게 되는 것이 정상인데, 시미타 증후군은
대정맥 --> 우심방 --> 우심실 --> 폐 --> 폐정맥 --> 대정맥 --> 우심방 --> 우심실 --> 폐 --> 폐정맥 --> 대정맥
이렇게 반복순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산소를 실은 피가 전신으로도 돌지 못하고 폐로 계속 이동하는 것이다.
이것을 교정하는 것은 아래 Boston Children's Hospital에서 만든 자료에 나오듯 매우 복잡한 수술을 요하며 다른 선천성 심장병을 동반하지 않은 경우에는 예후가 양호하지만, 이 환자처럼 다른 선천성 심장병을 동반하여 생후 1년 이내 영아기에 수술이 필요한 경우에는 약 30~40%의 수술 사망률을 보이는 위험한 질환으로 나와있다.
심장을 수술하기 위해서는 심장의 기능을 멈춰야 하기 때문에 심장이 멈춘 동안 심장의 일을 대신하는 인공심폐기를 돌려야 한다. 그리고 인공심폐기의 피가 대동맥으로 갈 수 있도록 대동맥 캐뉼라를 대동맥에 삽입해야 한다. 이 때 피가 옆으로 새면 안되기 때문에 가느다란 실을 이용하여 대동맥 벽에 복주머니 모양의 올가미를 만들기 위한 purse-string을 뜬 후 가운데를 절개해서 캐뉼라를 삽입한 후 purse-string을 좁혀 피가 새어나지 못하게 한 후 대동맥 캐뉼라와 함께 묶에서 움직이지 못하도록 한다. 그리고 대동맥 캐뉼라가 흔들리지 않도록 고정한다. 어떤 이유에서라도 고정장치가 풀리는 일이 발생하면 캐뉼라는 빠질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purse-string suture를 뜰 때, 대동맥을 뚫으면 안된다. 피가 나기 때문이다. 대동맥 벽의 가운데층 까지만 뚫어야 한다.
그렇다면 1세 아동의 대동맥의 벽의 두께는 얼마나 될까. 그리고 그 벽은 얼마나 힘을 받을 수 있을까...
위 아기는 수개월 전 이미 한 차례의 교정목적의 심장수술을 받았는데, 한 차례 수술을 받으면 심장이 주변조직과 붙어있게 되는 소위 '유착'이 진행되어 수술이 까다로워진다. 게다가 수개월만에 재수술을 한 것을 보면 심부전이 진행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폐정맥기형 외에도 폐정맥협착소견도 있다고 했다.
수술 자체가 다양한 리스크를 가진 위험한 수술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수술 중 캐뉼라의 이탈은 발생해서는 안되는 일이지만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캐뉼라가 빠진 순간부터 아이의 몸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기 때문에 목이 졸린 것과 같은 상황이다. 의료진이 얼마나 당황했을까. 그 상황에서 5분 이내에 체외순환이 다시 시작되었다는 것은 의료진이 치명적인 사고가 벌어진 상황에서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두 가지를 생각해보자.
질문1. 의료진의 실력이 부족하여 수술 도중 아이가 사망했다면 얼마의 배상판결이 났을까?
사망 사례는 장애 사례보다 배상액이 적게 나온다. 영구장애는 앞으로 평생 살아가는 동안 지속적인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배상액이 크다. 이 사례의 경우, 의료진이 5분 안에 체외순환을 재개하지 못했다면 아기가 사망하게 되고, 배상액이 적었을 것이다. 즉 의료진은 환자를 살리는 것보다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자신에게 이로운 결과를 초래하는 행위가 된다. 이것은 정의로운 것인가?
질문2. 최선을 다했음에도 9억원의 배상판결이 내려진 것에 실망해서 의료진들이 자신의 소임을 포기해 버린다면, 당신은 그들을 비난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사회는, 적어도 판사는 그것을 유도하고 있지 않은가?
질문3. 만일 어느 미치광이가 심장수술실에 난입하여 수술중인 환아에게 칼을 휘둘러 환아가 사망했다면, 그 마치광이는 민사적으로 얼마의 배상판결을 받게 되었을까. 혹시나 의사들이 미치광이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는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심장수술 도중 대동맥 캐뉼라가 빠지는 일은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지만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의료진이 고의로 발생시킨 일이 아니다.
이런 사고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어야 위험한 일을 이어나갈 수 있다. 누가 보호해주어야 하는가. 건보재정에서 부담해야 한다. 보호 받지 못하는 의사는 위험부담을 계속 안으면서 자신을 희생시킬 이유가 없다.
생명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의료진들에게 필요한 것은 '존중'과 '보호'다. 이 사회는 그런 의사들에게 '조롱'과 '배상'을 안겨주고 있다.
이번 판결은 심장수술을 하고 있는 의사와, 앞으로 심장외과의사가 되기 위한 과정에 있는 수련 과정에 있는 의사들에게 매우 큰 충격을 주었다. 이번 판결에 대해 환아의 가족은 정의로운 판결이라고 환영하겠지만, 이 판결이 사회의 전체에 미치는 파장을 생각하면 심장수술하는 의사의 씨를 말리는 큰 악재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인 피해는 국민의 몫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과연 이번 판결을 올바른 판결이라 할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