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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제품 Jun 16. 2024

새똥 묻은 작품도 완벽한 작품이다

예술의전당 <에드바드 뭉크>전을 다녀와서




본인 작품을 새똥을 맞게끔 방치해둔 화가가 있다.


바로 우리에게 <절규>로 유명한 뭉크다.


우리에게 <절규>로 유명한 뭉크의 작품들이 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에 모여 그의 작품 세계를 엿보고자 미술관을 찾았다.



뭉크의 로스쿠어 화법

- 작품을 날씨에 노출시켜 작품을 자연스럽게 노화시키기



뭉크는 '로스쿠어'라는 방식으로 작품을 그려냈다고 한다.

이 방식은 그림을 그리고 이 작품을 자연스러운 날씨에 노출시키며 자연스럽게 작품을 노화시키는 것으로, 작품에 시간의 흐름을 담아낼 수 있는 기법이다.


로스쿠어 기법에 따라 뭉크는 본인의 작품을 방치해두는 것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그래서 뭉크가 죽고 나서 뭉크 작업실을 보니 작품들이 방치되어 작품에 곰팡이가 피어 있었고, 심지어 방치된 작품에 새똥도 묻어 있었다고 한다. 이런 오염 또한 뭉크가 의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사실 로스쿠어라는 말을 처음들어봐서 인터넷에 쳐봣더니 영어로는 'kill or cure'라고 한다. 우리나라말로 번역하자면 '모 아니면 도'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거 같다. 즉, 작품을 노화시키면 아예 작품이 훼손될 수도 있지만 뭉크의 의도대로 그 자연의 시간의 흐름을 작품에 담아낼 수도 있다는 의미인듯 (나는 미술전문가가 아니라서 내가 틀릴수도 있다.. 지극히 나의 개인적인 해석)


실제로 뭉크의 이런 화법을 몰랐던 사람들은 뭉크 사후에 뭉크의 집에 새똥이 가득한 뭉크의 작품을 복원하려고 애썼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새똥으로 방치된 것이 뭉크가 의도한 것일 수도 있을텐데 말이다.





완벽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좋을 수 있다


뭉크는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새롭게 그린 그림에는 무언가 단단한 느낌이 있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가 내 그림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거나

오일을 덧칠하려고 할 때 너무도 초조해진다.

약간의 흙먼지와 몇개의 구멍은 그림의 완성도를 더할 뿐이다."



로스쿠어 방식을 채택한 뭉크가 정말 했을 법한 말이다.

햇빛, 흙먼지, 비와 같은 자연스러운 자연의 흐름에 작품을 놓아두는 것이 오히려 완성도가 높아지는 것이라고 한 뭉크는 오히려 빡세게(?) 작품을 '완벽하게' 보존하려고 했던 후대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도 살아갈 때 '완벽'하고자 노력하고, 그 '완벽'에 충족하지 못하는 나를 발견할 때 자책하기도 하고 자신에게 가혹해진다.


특히, 현대사회의 사람들은 지나치게 발달한 SNS의 영향으로 '완벽'한 타인의 삶의 모습을 좋든 싫든 경험하게 된다.


쟤는 저렇게 친구가 많네 ...

쟤는 저렇게 비싼 레스토랑에 갔네 ...

쟤는 저렇게 좋은 회사를 다니네 ...

쟤는 저렇게 호화로운 결혼식을 올리네...


사실 나 역시도 SNS에 뭔가를 올릴 때 나의 행복한 순간을 포착해서 올린다. 사진을 적어도 100장은 찍어서 그중에 몇개를 추리곤 하니까.

그런데 나는 나를 잘 제일 잘 안다. 나는 고민많고 고뇌도 많고 걱정도 많은 그냥 불완전한 사람이라는 것을... SNS 속 나의 모습은 나의 1%정도만 반영된 모습이라는 것을


다행히 우리는 뭉크의 로스쿠어 기법을 통해 꼭 티 없이 완벽해야만 완성도 있는 작품은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냥 자연에 노출되어 약간 훼손되고 조금 망가지더라도 그거 나름대로 완성도가 있는 것이다.


우리 삶도 SNS에 비춰지는 것 처럼 완벽할 필요가 전혀 없다. 내가 겪는 슬픔, 고통, 고뇌들은 나를 오히려 완성시켜주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불교의 가르침 대로 너무 애쓸필요 없다. 이런 고통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날씨의 변화처럼 우리에게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것이니까


이렇게 생각하니 '전화위복'이라는 말도 떠오른다. 재앙이 오히려 복이 된다는 것인데, 내가 겪는 부정적인 감정들이 재앙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오히려 나를 더 단단하고 완전한 존재로 만들어주는 복일 수도 있으니까


그러니 '완벽'하지 못한 나를 발견하더라도 너무 자책하지 말자.

'완벽'한 것처럼 보이는 타인을 보고서도 너무 주눅들지말자.

'완벽'하지 못한 것은 오히려 완성도가 높아지는 과정이니까 말이다.



혹시 요즘 고통스럽다면,
나를 완전하게 만들어 줄 그 '고통'에
오늘 감사인사를 해보는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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