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 후기소나타 (19, 20, 21번)을 들으며
슈베르트라는 작곡가에 대해 우연히 알게 되며 [죽음] 이라는 키워드에 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슈베르트는 31살 이라는 짧은 생을 살았지만 1,000곡이 넘는 다양한 곡들을 작곡한 다작가이다. 하지만 매독이라는 질병으로 죽은 그는 죽음을 앞둔 몇 개월 간 오만가지 생각을 했을 거 같다.
이렇게 빨리 죽는게 너무 아쉽다...
조금 더 나를 사랑할 걸...
죽음이란 무엇일까...
안죽을 수는 없는 건가...
이런 고뇌가 그가 죽은 1828년에 작곡된 작품들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특히, 슈베르트의 21개 피아노 소나타 중 후기 소나타로 분류되는 19,20,21번은 이러한 [죽음] 이라는 키워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게 한다. 이 3곡들은 슈베르트가 죽는 그 해에 작곡되었으며 특히 21번 같은 경우 슈베르트가 죽기전 마지막 작품이다. 따라서 이 3곡은 슈베르트가 죽음이라는 키워드를 빼놓고는 작곡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마침 이 3곡으로 금호아트홀에서 피아노 리사이틀이 있다고 하여 가보았다.
19, 20, 21번을 다 듣고 생각난 2가지 단어는 '저항'과 '순응' 이다.
리사이틀의 시작을 알리는 19번의 C minor의 강렬한 화성은 죽음을 '저항'하는 그의 모습이 드러난다. 19번 1악장 내내 죽음을 거부하고 죽음에 저항하는 그의 애처로움이 묻어난달까 그러다가 2악장으로 넘어가며 조용히 죽음에 순응하기도 하고 3악장, 4악장을 거치며 잠시 밝아지는듯 하지만 결국 죽음에 또 저항하는 모습을 보인다.
20번은 19번과 달리 1악장은 장조(major) 조성으로 시작한다. 죽음을 앞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르게 기쁜 마음이 엿보인다. 애써 죽음이라는 키워드를 머릿속에서 지운 사람 마냥...죽음을 거부하고 싶겠지. 저항하기 보다는 겸허히 죽음을 받아들이는 모양새다. 그래도 마냥 기쁘진 않고 중간중간 죽음을 앞두고 어지러운 마음도 보인다. 하지만 2악장에서는 지하 땅꿀까지 감정이 슬퍼진다. (아니 슬퍼진다라는 말은 이 감정을 너무 가볍게 표현한 말 같다.) 죽음을 앞두고 고뇌에 가득한 사람이 생각난다. 2악장이 개인적으로는 정말 좋았다. 가만히 생각을 정화할 수 있는 느낌... 3악장을 거치며 다시 기뻐지면 살짝은 깨발랄한 모습이 나온다. 이어지는 4악장은 마치 가곡처럼 멜로딕한 선율이 흘러나오는데 마치 천국에서 천사가 얼른 오라고 재촉하는 느낌이다.
마지막 21번은 가장 차분하다. 1악장은 마치 죽음에 대해 달관하고 죽음을 내 얘기가 아닌 제3자의 시선에서 멀찌감히 보는 느낌이랄까? 2악장도 이런 기조가 이어지지만 갑자기 변화무쌍한 모습도 나타나며 저항이라는 단어가 생각나는 부분들이 많이 보인다. 20번과 같이 21번의 3악장 역시 깨발랄한데 죽음을 앞두고 깨발랄한 모습이 약간 모순적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모순이 그의 죽음을 더 안타깝게 한다. 4악장도 20번처럼 멜로딕한데 21번의 4악장은 슈베르트 본인의 노래인거 같다. 20번에서 천사가 재촉한것에 대한 응답으로 '알겟어.. 갈게..갈테니까 잠시만 기다려줘'라고 하며 애써 웃는 모습인거 같다. 이렇게 결국 죽음을 수용하는 느낌으로 곡이 흘러가다 마지막에 강렬하게 곡을 마무리한다.
올해 내 나이가 슈베르트가 죽은 딱 그나이여서 내 동년배가 죽음을 생각했다는 것에 엄청 놀랍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아직은 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죽음은 내 얘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부쩍 내 말년은 어떨까? 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며 나는 어떻게 죽게될까라는 생각도 많이하게 되었다. (딱 그런 시기에 슈베르트를 만난건 정말 나에겐 행운이다.)
죽음이라는 게 어떤건지 감도 안오지만 이 슈베르트르의 음악을 들으며 죽음 앞에서 어떤 마음을 우리가 갖게 될지 간접적으로 체험을 한 느낌을 받았다.
나도 슈베르트처럼 죽음에 강하게 저항할테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에 순응할 거 같다. 19, 20, 21번도 보면 19번에 비해 20번이, 20번에 비해 21번이 '저항'하는 모습이 약해지는 걸 알 수 있다. 결국 인간으로서 피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해 받아들이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죽음을 저항하든, 이에 순응하든 이것과는 별개로 죽음 앞에서 좀더 당당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럴려면 살아 왔던 인생을 되돌아봤을 때 후회하는 순간이 적어야할 거 같다.(후회가 없을수는 없을거 같고)
그런 의미에서 슈베르트는 본인의 인생을 되돌아 봤을 때 후회가 많았을까 라는 질문을 던져봤다. 나는 조심스럽게 예측하는 거지만 그는 엄청 후회가 많았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슈베르트는 엄청 가난했고 외모 컴플레스도 심했다고 한다. 따라서 본인이 이루고자 했던 거, 생각하고자 하는 바들을 실현하기어려웠을 거 같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앞에서도 '저항'하는 모습이 강하지 않았을까 싶다.
인생은 유한하다. 따라서 우리 모두 후회없이 살았으면 좋겠고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찾아오게 될 죽음 앞에 좀더 당당한 사람들이 었으면 좋겠다.
연주자가 오늘 너무 훌륭했다. 폴 루이스라는 슈베르트 전문가가 연주한 슈베르트 소나타 였다. 의상부터 강렬한 빨간색으로 시각적인 임팩트가 강했다. 또한 곡 연주도 다이나믹 차이를 의도적으로 더 강하게 주려는게 느껴졌다. 강하게 치는부분들에서 내가 중간중간 깜짝 놀랄정도로 아주 강하게 몸 까지 써가며 연주를 하는 모습이 꽤나 많았다. (이렇게 다이나믹 차이 강한 연주를 들으니 그의 베토벤은 어떨지 궁금해지도 했다.)
죽음이라는 무거운 키워드에 대해 알려준 슈베르트에게 감사함을 표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