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고민 끝에 이번 7월 3주 남미 여행은
리마를 시작으로 쿠스코와 부에노스아이레스, 그리고 이과수에 이르는 여정으로 채우기로 했다. 남미까지 가서 유명한 사막이나 빙하를 일정에서 뺀다는 것이 처음에는 아쉽기도 했지만, 마음 한편에서 들려오는 "무리하지 말자"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기로 했다. 지난 북미 로드트립을 통해 얻은, 우리 가족에게 가장 좋았던 순간들의 기억을 조심스레 되짚어보며 내린 결정이다.
미국에서 여행했던 경험들은 나에게 여행의 단단한 기준을 세워주었다. 남들이 좋다는 곳, 유명한 곳도 물론 멋지겠지만 그것을 무조건적으로 따라가기보다 우리 가족의 속도를 지키는 것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배웠다. 유명한 장소에 도장을 찍듯 바쁘게 움직이는 것보다, 여행자 개개인의 체력과 평온함을 우선순위에 두는 것이 결국 더 깊은 기억을 남긴다는 사실도 말이다.
내가 바라는 여행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저 그 장소가 주는 감동을 서두르지 않고 온전히 느껴보고 싶을 뿐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처럼, 마음의 여유는 몸의 평온함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예전에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인파에 떠밀려 다닐 때, 위대한 유물들이 그저 차가운 '돌덩이'처럼 느껴져 속상했던 적이 있다. 자이언이나 요세미티 같은 대자연 앞에서 단 2시간만 머물다 떠나야 하는 서두름을 볼 때도 비슷한 마음이었다. 시차와 피로에 쫓기다 보면, 아무리 아름다운 풍경도 그저 빨리 지나가고 싶은 배경이 되어버리곤 하니까.
특히 부모님과 어린 아이가 함께하는 이번 길이라면 더욱 조심스럽다. 우리 가족 모두가 지치지 않고 평온한 상태여야 비로소 풍경이 마음속에 깊숙이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옐로스톤의 '올드 페이스풀'이 그토록 따뜻하게 기억되는 이유도, 고풍스러운 라지 테라스에서 차 한 잔을 마시며 안락하게 자연을 응시할 수 있었던 그 '머무름의 시간'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는 우리를 지치게 할지도 모를 요소들을 조금씩 덜어내 보려 한다. 몸을 힘들게 하는 기후나 공항대기시간, 장시간 차량이동과 치안.고도에 대한 걱정, 바쁜 일정에 쫓기는 마음까지. 그런 불편함을 걷어낸 자리에는 오로지 풍경과 나, 그리고 가족이 함께하는 다정한 시간만이 남길 바란다.
우리 가족의 발걸음이 가볍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을 때, 여행은 비로소 선물처럼 다가올 것이다. 뺨을 스치는 부드러운 바람, 낯선 땅의 공기 냄새, 햇살에 반짝이는 잎사귀의 흔들림조차 우리 가족에게 작은 기쁨으로 다가오는 그런 '순간의 행복'을 만나고 싶다.
나에게 소중한 여행이란 '얼마나 많은 곳을 보았는가'보다 '사랑하는 이들과 어떤 마음으로 그곳에 머물렀는가'의 문제다. 조금 덜 보고 조금 더 걷더라도, 쾌적한 아침 공기 속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부모님의 미소와 아이의 눈을 맞출 수 있는 여유. 이것이 내가 이번 남미 여행에서 꼭 지켜내고 싶은 가장 큰 욕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