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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동 May 07. 2022

택시 기사가 열쇠 구멍으로 들여다본 세상만사

까치설날

      이야기 열셋

            까치설날

                고재동(시인ㆍ택시 기사)


  참새 보기가 힘들어졌다. 날씨 탓인가? 기왓장 밑 포근한 보금자리가 참새를 붙잡아 앉힌 듯. 곰처럼, 뱀처럼 겨울잠을 자는 조류가 아닌 만큼 뭘 먹긴 해야 할 텐데. 다람쥐처럼, 청설모처럼 도토리라든가 밤 따위 보관하는 지혜를 가지지도 않았는데 긴 겨울을 어떻게 나는지 궁금하다. 가뜩이나 겨울철이라 먹잇감도 적은데 그들이 안쓰럽다. 여름철 벌레와 가을에 알곡으로 아무리 든든하게 배를 채워놨다고 해도 창자가 짧아 빠르게 소화시켜 버렸으니 속이 허전할 법도 한데 적이 걱정된다. 활동을 적게 하여 체력 소비를 줄이려는 심산인가? 저 멀리 방앗간으로 먹이 여행 떠날 기력조차 남아있으려나? 방앗간까지 먹이 여행 떠나려는 시도조차 할 수 없는 것이 조상으로부터 전해 들은 험난한 여정 때문이다. 들판을 지나 내를 건너고 좁은 도로, 넓은 도로를 지나야 닿을 수 있는 방앗간 가는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 그곳에 가면 배 불리 먹을 수는 있지만 부모 형제 몇을 잃는 일이 다반사라는 사실을 조상들로부터 듣고 있는 터라 참새들은 다녀올 엄두를 못 낸다.

   매일 보던 참새 안부가 오늘따라 궁금하다. 그들도 아마 자가 격리하고 있는지도 몰라. 그런 건가? 조류 세계에도 코로나가 엄습했을까? 조류 독감보다 더 무서운 것이 코로나일까? 그렇지 않고서야 참새가 왜 두문불출하는 걸까? 내 눈을 피해 다닐 일도 아닌데... 가끔 닭 모이 주고 나면 그곳에 나타나 함께 식사하곤 했는데. 닭들도 저 먹기 바빠 참새  따위가 축내는 먹이에 별 신경을 안 쓰는 듯했었다. 요즘은 참새들이 닭 모이 들고 가는 나를 먼발치에서 뒤따르지도 않는 것 같다. 창가에 와서 노래를 들려주는 법도 없다. 반말로 울지도 않는다. 코로나 양성 판정받은 게 틀림없다.

  섣달그믐.

  까치설날이다. 참새는 그렇다손 치고 까치 본 기억이 희미하다. 참새와 까치 등은 텃새로서 가장 흔하게 우리 주변에서 만나던 새들이다. 까마귀는 개체 수가 적었지만 가끔 눈에 띄는데 까치를 상면한 적은 1년을 거슬러도 뇌리에 남아있지 않다. 어디로 가버린 걸까?

  환경 탓일 것이다. 지구가 더워지고 오염되는 이 시점에 정상적인 생태계를 바라본다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 아닐까? 농약의 오용으로 개구리 개체 수도 줄고 뱀 마저 흔하지 않다. 두루미도 거의 사라졌고 땅 밑에 사는 두더지도 보기 힘들다. 꿩은 가끔 갑자기 숲에서 날아오르며 나를 놀라게 하치만 까치 모습은 찾기가 어렵다. 아마 먹잇감을 찾아 청정 지역으로 떠났거나 서서히 사라져 가는 조류로 분류되는 게 아닐까 하여 서글픈 생각마저 든다. '까치까치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라고 한 거로 봤을 때 까치는 그만큼 우리에게 친숙한 새였을 텐데 말이다.

  코로나로 인해 명절이지만 명절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 3년째다.  정부에서는 가족 간 상봉을 말리고 있다. 사적인 모임 6인 이하로 경계 선을 그어놓았다.

  그래서 멀리 있는 아이들은 오지 말라고 했지만 첫째와 막내가 이틀간 머물다가 조금 전 떠났다. 다섯 식구를 거느린 둘째는 설날 당일인 내일 왔다가 일박하고 간단다. 정부 방침을 어긴 사실을 반추하지만 통제할 방법도 없다. 자매끼리, 사촌끼리 이 기회에 정을 나누지 못하고 문을 닫아걸면 이 또한 못할 짓 아닌가!

  재잘재잘, 시끌벅적 아이들이 떠나고 난 휑한 마음을 달래려 닭 모이를 들고 닭장으로 향했다. 발자국 소리에 놀란 장끼 한 마리가 푸드덕 난다. 나도 놀랐다. 놀란 이들이 또 있다. 참새떼이다. 한동안 눈에 띄지 않던 참새떼가 꿩이 날아오르자 반대편 숲에서 휘리릭 난다. 까치설날인데 까치는 온 데 간데 없고 꿩과 참새가 존재감을 알린다. 오늘을 까치설날이라 할 게 아니라 장끼 설날, 참새 설날이라고 해야 할까 보다.

  참새들이 자가 격리에서 풀려난 걸까. 저처럼 수십 마리가 몰려다니는 참새 광경을 모처럼 본다. 장관이다. 저들은 6인 사적 모임 제한도 없나 보다.



새가 종알종알 반말을 한다

바람이 물어다 준

낱말을 포개 놓으니

휘익 야산 하나가 흩어진다

참새 소리를 흉내 내지 못 해

찌르륵 했더니

그녀는 짹짹짹한다

참새가 매일 반말하는 거라고

바람이 귀엣말로 전언해도

나는 믿고 싶지 않았다

늘 참새는 반말하고

바람은 그녀의 거짓말을

참말인 양 조잘조잘 물어온다

오늘도 짝 잃은 참새는

가슴으로 말을 걸어도

야속한 바람은 반말로 운다

              --<바람의 반말>



  저녁 후 늦은 시각 일터에 나섰다. 명절 대목을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역시나 나를 기다리는 손님 찾기가 어렵다.

  새벽녘에 A동에서 어렵게 모신 손님은 젊은 여자였다. 강 건너 B동으로 가자고 했다. 강을 건너는 만큼 시내 장거리 손님인 그녀는 먼저 반갑게 인사를 건네 왔다.

  "안녕하세요? B동으로 가 주세요. 설날 새벽인데 일을 하시네요? 저는 택시를 못 잡을까 걱정했어요. 감사해요."

  "어서 오세요. 제가 더 감사하죠. 손님 한 분 모시기가 얼마나 힘든데 예약해 주시니 감복할 따름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아가씨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좋은 일이 넘치는 한 해 보내길 빌게요."

  B동에 도착한 그녀는 느닷없이 단독주택 2층 벨을 눌렀다. 한 번, 두 번, 세 번... 인기척은 없고  강아지만 응답한다. 더 소란을 피울 수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나의 도움을 받아 갖고 온 두루마리 휴지를 2층 계단 쪽으로 넘겼다. 그리고는 다시 내 택시로 집까지 데려 달라고 했다. 2층 집 남자는 혼자 사는데 남자 친구는 아니고 그냥 친구란다. 명절 전에 두루마리 휴지를 저렴하게 구입해서 몇 집은 돌리고 마지막으로 이 집에 가져다주는 거라고 했다. 그럴만한 사연이 있는 친구인데 자세한 사연은 듣질 못했다. 왕복 택시비가 더 큰 값인데 선물을 이 새벽에 정성껏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은 천사 밖에 없다.

  "천사 세요."

  "천사 아니에요. 악마예요."

  그녀의 답변은 의외였다.

  "천사는 본인 입으로 천사라고 하지 않고, 악마도 스스로 악마라고 하지 않죠. 제가 판단컨대 아가씨는 틀림없는 천사입니다."

  "천사 아니고 악마라니까요."

  그녀는 유치원 교사와 간호사로 근무하다가 지금은 쉬고 있는데 개인 사업을 구상하고 있는 마흔 살의 우먼파워였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는 성선설과 성악설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를 피웠다.

  하늘에서 눈발이 날렸다. 여섯 번째 눈은 함박눈이었다. 까만 밤을 하얗게 밝혔다. 분명 서설瑞雪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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