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의 나는 안부를 잘 묻지 않는 사람이었다.
정확히는 묻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쪽에 가까웠다. 가족은 늘 거기 있을 거라고 믿었고, 바쁘다는 말은 안부를 미루기에 충분한 이유라고 여겼다.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마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다 한 것처럼 살았다. 엄마에게 전화하는 일은 늘 내일로 밀렸고, 아버지에게 먼저 말을 거는 일은 괜히 어색했고, 동생에게 요즘 어떠냐고 묻는 일은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가능한 것처럼 느껴졌다. 사랑은 컸지만 표현은 작았다. 아니, 어쩌면 사랑이 크다는 핑계로 표현의 게으름을 오래 눈감아 준 것인지도 모른다.
혼자 살기 시작한 뒤 가장 먼저 달라진 것은 저녁의 길이였다.
집에 누군가 기다리고 있지 않는 밤은 생각보다 길었고, 그 길어진 시간 속에서 나는 자주 본가를 떠올렸다. 엄마는 이 시간쯤 식탁을 닦고 있을까, 아버지는 뉴스를 틀어 놓고 졸고 있을까, 동생은 또 방 안에서 이어폰을 낀 채 휴대폰을 보고 있을까. 예전에는 그런 장면들이 너무 익숙해서 잘 보이지 않았는데, 떨어져 지내고 나니 이상하게 자꾸만 구체적으로 떠올랐다. 사람은 눈앞에 있을 때보다 멀리 있을 때 더 선명해지는 얼굴들이 있다. 가족이 내게는 자주 그랬다.
처음에는 그리움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은 단순한 그리움이라기보다, 뒤늦은 깨달음에 가까웠다. 나는 오랫동안 안부를 받는 쪽에만 익숙했다는 사실. 밥은 먹었냐는 말, 늦게 들어가냐는 말, 감기 조심하라는 말, 우산 챙기라는 말 같은 것들을 너무 오래 당연하게 받아왔다는 사실. 누군가 나를 생각하며 먼저 건네는 문장들 위에서 자라 놓고도, 나는 정작 그 문장을 되돌려 보내는 일에는 서툴렀다. 사랑을 받은 사람답게 사랑하는 법을 나는 생각보다 늦게 배우고 있었다.
어느 비 오는 저녁이었다.
퇴근길 버스 안에서 창문에 맺힌 빗물을 멍하니 보고 있는데, 문득 아버지가 떠올랐다. 비 오는 날이면 현관 앞 우산꽂이를 한 번 더 정리하던 사람, 내가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거실 불을 켜 둔 채 잠들던 사람. 별 이유 없이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는 몇 번의 신호 끝에 전화를 받았고, 평소처럼 짧게 “왜”라고 말했다. 나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그냥 비가 와서 전화했다고 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잠시 웃는 듯하더니, 우산은 있냐고 물었다. 이미 다 큰 어른이 된 나에게, 아버지는 여전히 가장 먼저 그것을 물었다. 우산은 있냐고. 나는 그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 젖었다. 아무것도 아닌 질문인데도 그랬다. 누군가에게 나는 아직도 비를 맞지 않았으면 하는 사람이구나 싶어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면 대화는 늘 비슷하게 시작된다.
밥 먹었니, 뭐 해 먹었니, 피곤하지 않니, 주말엔 올 거니. 예전의 나는 그런 질문들이 때로는 번거롭다고 느껴졌다. 이제는 안다. 질문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비어 있는 시간마다 내 쪽을 생각했다는 뜻이라는 걸. 그래서 요즘은 전화를 끊기 전에 일부러 한마디를 더 붙인다. 엄마는 오늘 어땠어. 그러면 엄마는 대개 처음엔 별일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다 내가 조금 더 듣고 있으면, 장을 보다가 누구를 만났다는 이야기, 허리가 좀 뻐근했다는 이야기, TV에서 본 드라마가 별로였다는 이야기 같은 것들을 천천히 꺼내놓는다. 예전에는 몰랐다. 안부를 묻는다는 것은 단순히 정보를 확인하는 일이 아니라, 상대가 자기 하루를 놓을 자리를 만들어 주는 일이라는 것을.
동생과의 대화도 조금 달라졌다.
예전에는 용건이 있을 때만 연락하는 경우가 많았다. 필요한 걸 물어보거나, 집에 무슨 일이 있는지 전해 듣거나, 아주 가끔 서로 심심할 때 짧게 장난을 치는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 날은 그냥 별 뜻 없이 메시지를 보냈다. 요즘 어때. 동생은 한참 뒤에야 답을 보냈다. 그냥 그렇지 뭐. 그 짧은 문장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났다. 여전히 동생답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এবার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냥 그렇다는 게 제일 애매한 거 알지, 하고 다시 보냈다. 그러자 조금 뒤에 답이 왔다. 좀 피곤하긴 해. 그날 우리는 별로 길지 않은 대화를 나눴다. 대단한 고민이 오간 것도 아니고, 무슨 큰 위로를 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안부는 길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다만 정말 듣고 싶은 마음으로 한 번 더 묻는 쪽이 중요하다는 것을.
외할머니를 찾아뵐 때도 비슷한 마음이 든다.
전처럼 반찬통을 보며 오래된 것이 많다고 먼저 말하지 않고, 요즘은 무얼 제일 잘 드시는지 묻는다. 냉장고 문을 열고 “이건 언제 거예요” 하고 웃기보다, “할머니 이거 좋아해서 해 둔 거예요?” 하고 묻는다. 질문 하나가 달라졌을 뿐인데 대답의 표정도 조금 달라진다. 외할머니는 전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해준다. 시장에 가면 뭐가 비싼지, 요즘은 입맛이 어떤지, 누가 다녀갔는지. 듣다 보면 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일상을 말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다만 들어 줄 사람이 필요할 뿐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안부는 참 사소한 일이다.
잘 지내냐고 묻고, 밥은 먹었냐고 묻고, 아프진 않냐고 묻는 일. 문장으로만 보면 너무 평범해서 사랑이라고 부르기조차 머쓱할 만큼 작은 것들. 그런데 가족은 오래 그 작은 것들로 버텨진다. 거창한 이해보다 먼저 도착하는 한 통의 전화, 특별한 해결책 대신 건네지는 한마디, 오늘은 좀 일찍 자라는 말. 나는 오래도록 사랑을 더 큰 장면에서만 찾으려 했다. 서로를 위해 희생하는 일, 눈물로 화해하는 일,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관계 같은 것들. 하지만 뒤늦게 알게 됐다. 가족을 오래 붙들어 주는 것은 대부분 그런 극적인 순간이 아니라, 사소해서 자주 지나치는 안부의 반복이라는 것을.
물론 나는 아직도 서툴다.
바쁜 날에는 연락을 미루고, 피곤한 날에는 짧게 답하고, 내 기분이 가라앉아 있을 때는 누군가를 챙길 여유가 없다고 느끼기도 한다. 그러다가 문득 깨닫는다. 엄마도, 아버지도, 동생도 아마 그런 날들이 있었을 텐데, 그럼에도 내게 안부를 물어 주었다는 사실을. 사랑은 여유가 넘쳐서 하는 일이 아니라, 여유가 없어도 잊지 않으려고 애쓰는 일에 더 가까운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완벽하게 다정한 사람이 되기보다, 생각났을 때 미루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보고 싶으면 먼저 연락하고, 걱정되면 먼저 묻고, 고마우면 그날 말하는 사람.
한 번은 본가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엄마가 반찬을 한가득 싸 주었다.
늘 그렇듯 나는 너무 많다고 말했고, 엄마는 혼자 있으면 이런 게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무거운 가방을 들고 버스를 타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내게 보내는 사랑은 대부분 이렇게 무게가 있는 것들이었구나. 반찬통, 과일, 휴지, 약, 계절 바뀔 때마다 꺼내 준 이불. 반대로 내가 보낼 수 있는 사랑은 아직 가벼운 쪽에 가까웠다. 전화 한 통, 짧은 메시지, 주말에 잠깐 들르는 일. 그런데도 나는 이제 안다. 가벼워 보여도 반복되면 마음이 된다는 것을. 자주 묻는 안부는, 멀리 사는 사람이 건넬 수 있는 가장 꾸준한 온기인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래서 요즘 나는 조금씩 먼저 묻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엄마에게는 오늘 허리는 어땠는지, 아버지에게는 병원 예약은 했는지, 동생에게는 이번 주는 좀 나은지, 외할머니에게는 입맛은 괜찮으신지. 질문의 내용은 사소하지만, 그 사소함 안에는 오래 미뤄 둔 마음이 들어 있다. 당신들을 생각하고 있다는 뜻, 이제는 나도 받기만 하지 않겠다는 뜻, 서툴더라도 당신들 쪽으로 한 걸음 더 가보겠다는 뜻.
가끔은 그런 생각도 한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에게 안부를 기다리게 되는 사람이 되겠지. 내가 지금의 엄마와 아버지 나이가 되고, 누군가의 하루를 먼저 헤아리는 쪽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때 나는 어떤 사람일까. 밥은 먹었냐는 말을 너무 많이 하는 사람일까, 괜찮냐는 말을 어색해하면서도 자꾸 묻게 되는 사람일까. 정확히는 모르지만 한 가지는 알 것 같다. 내가 어떤 방식으로든 누군가를 걱정하게 된다면, 그것은 결국 이 집에서 배운 사랑의 연장선일 거라는 것. 식탁을 닦던 손, 괜찮다고 말하던 목소리, 비어 보이지 않게 냉장고를 채워 두던 마음, 무심한 듯 건네던 짧은 관심들이 결국 내 안에 남아, 나를 그런 사람으로 만들 것이라는 것을.
예전의 나는 가족이란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이어지는 관계라고 믿었다.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가족은 끊어지지 않아서 안전한 관계가 아니라, 끊어지지 않도록 자꾸 안부를 건네는 관계에 더 가깝다. 멀리 있어도 저녁마다 한 번쯤 떠올리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도 우선 전화를 걸어 보고, 괜찮다는 대답을 들어도 한 번쯤 더 물어보는 관계. 사랑은 그렇게 조금 번거롭고, 조금 반복적이고, 조금 늦더라도 계속 도착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도 다정함을 배워가는 중이다.
여전히 뒤늦게 깨닫는 것이 많고, 받은 마음에 비해 건네는 마음은 모자라다. 그래도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는 안다. 안부는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는 것을. 그건 네 하루를 내가 잠깐 품어 보겠다는 뜻이고, 네가 내 마음 바깥으로 완전히 밀려나 있지 않다는 확인이고, 우리가 아직 서로의 곁에 있다는 조용한 신호라는 것을.
그래서 이제는 내가 먼저 안부를 묻는 사람이 되고 싶다.
받아온 사랑을 겨우 알아차린 사람답게, 늦었지만 늦지 않게. 엄마에게, 아버지에게, 동생에게, 외할머니에게, 그리고 언젠가 내 삶에 들어올 누군가에게도. 잘 지내냐고, 오늘은 어땠냐고, 밥은 먹었냐고 묻는 사람. 어쩌면 가족이 내게 남긴 가장 오래가는 유산은 거창한 가르침이 아니라 그런 문장 몇 개였는지도 모른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사람이 사람을 끝내 놓지 않게 만드는 말들. 나는 이제 그 문장들을, 내 차례의 목소리로 천천히 건네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