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y Mar 18. 2022

지금 그대로의 너의 모습으로

JUST  THE  WAY  YOU ARE

 “지금 그대로의 너의 모습이 최고란다.”

 

 

 지루했던 고등학교 영어 시간에 팝송으로 영어의 매력을 발견하게 해 주신 선생님이 계셨는데, 가사와 음이 독특하여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곡으로 남아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미국의 팝 아티스트 빌리 조엘(BILLY JOEL)의 이 곡에는 한 가지 뜻깊은 사연이 있다고 한다. 학교에서 흑인계 혼혈아로 갈등을 겪는 아들에게 믿음과 용기를 준 어머니의 말 한마디가 그를 자신다운 길로 가게 했고,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담아 “JUST THE WAY YOU ARE”라는 곡이 탄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사실 자신의 모습이나 타인의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다. 나이가 듦에 따라 더욱 자신의 관점에서 남을 판단하고 마는 안타까운 사실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는다. 가장 가까운 사이일수록 기대치가 높아 더욱 그런 것 같다.

  


 최근에 화두가 되고 있는 ‘소통’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도 어쩌면 이런 간단한 진리에 담겨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빌리 조엘의 어머니는 참으로 현명하고 지혜로운 여성이라 생각한다.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의 입장이라면 첫아이의 긴장되는 순간이 많을 것이다. 특히 처음으로 초등학교를 보내고 공개수업에서 내 아이의 모습을 보는 날은 더욱 떨리고 마음이 설렐 것이다. 실은 나에게도 그런 날이 있었다. 학교에서는 교사였지만, 우리 아이에게는 ‘직장 맘’이라는 어려운 갈림길을 걷게 했던 3년간의 공백 후 처음으로 아이 학교를 찾아가는 날이었다. 입학식에도 못 가봤는데 우리 아이는 어느덧 4학년이 되어 있었다.

  


 약속시간보다 30분 일찍 도착했는데도 복도에는 최고로 예쁘게 꽃단장한 여인들의 분주한 모습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말 한마디라도 건네고 싶었으나 저마다 둘셋이 그룹이 되어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서 좀처럼 접근하기 어려웠다.   

  


 직장 맘은 이런 엄마들 그룹에 끼지 못한다 하더니만 전에는 당연했던 아줌마 그룹에 소속되지 못해 부럽기까지 했다. 그녀들이 아이 학교 보내고 만나서 차 마시고 밥 먹는 사이에 나도 내 나름대로 학교에서 아이들을 열심히 가르치고 연구하느라 힘들었건만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는 소외감마저 느껴졌다. 어느덧 아이의 교실 앞에 도착하자 사랑스러운 우리 아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교실에서 창문을 빼꼼히 쳐다보고 있었다. 우리 아이와 그 또래의 아이들을 보니 묘한 경쟁심리가 내 마음을 간지럽혔다. 누가 뭐래도 우리 아이가 더 예뻐 보이고 찡한 핏줄의 감동이 느껴졌다. 같은 학교에 자기 자식이 있으면 힘들다고 하시던 선생님도 계셨는데 이런 느낌을 두고 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담임 선생님은 털털한 총각 선생님이셨다. 수업은 ‘부모님께 편지 쓰기’ 시간으로 이어져 10분간의 짧은 쓰기 시간을 준 후 발표를 시키셨다. 교실 뒤에 엄마들이 서 있는 가운데 진행되는 것이라 발표하는 아이는 뒤를 보며 엄마에게 편지를 낭독해야 했다. 좀 유치하기는 하지만 우리 아이도 편지를 낭독해 주었으면 하는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처음에는 안 할 것 같더니 한두 명씩 손을 들고 결국 다섯 명 정도만 빼놓고 거의 다 발표를 해 버렸다. 마지막으로 한 명만 더 하자는 선생님의 말씀에 나도 모르게 우리 아이 쪽을 보며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다른 아이가 손을 들어 버렸고 마지막 기회는 없어져 버렸다. 한숨이 나왔다. 아이가 편지를 낭독할 때마다 다른 엄마들도 칭찬을 덩달아하는 분위기여서 우리 아이의 상태보다는 나 자신이 으쓱해지고 싶은 욕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리자 아이는 내게 달려와 그제야 편지를 손에 쥐어주었다. 나는 “고마워”라고 해야 했지만 아무 말 없이 풀로 꼼꼼히 붙여 놓은 편지를 받기만 하고 미소 짓기만 했다. 내 마음을 나도 알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남편에게 서운한 나의 감정을 이야기하니 놀랍게도 이런 말을 했다. “실은 나도 그랬어. 발표도 안 하고 말이 없다고 엄마한테 항상 혼났지. 하지만 성격이니까 그러지 말아 줘. 좋은 면도 많으니까.” 그러더니 시장에 가서 내가 좋아하는 온갖 과일을 양손에 주렁주렁 사 가지고 와서 내 눈치를 보는 것이었다. 

  


 내가 꼭 직장 맘이어서가 아니라 우리 아들의 성격이었다니 나도 몰랐던 남편과 아들의 새로운 면을 보게 된 셈이다. 내가 욕심이 좀 과했지만 솔직했기 때문에 알게 된 사실이 너무 감사하게 느껴졌다. 나 자신도 나를 바꿀 수 없는데 고귀한 아이의 좋은 면을 키워줄 생각은 안 하고 바꾸려고 했던 것이 창피했다. “아들아, 미안해. 엄마도 부족한 점이 많구나. 지금부터라도 지금 그대로의 모습을 멋지게 키워가자꾸나.” 

 


  “지금 그대로의 너의 모습으로” (JUST THE WAY YOU ARE )

  


 지금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은 어머니가 아이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고 나 자신에게도 꼭 해주고 싶은 말이다. 나를 더욱 사랑하기에 자식도 남편도 그리고 주위에 모든 사람도 그대로의 모습을 예뻐해 주고 싶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때 자연과 조화를 이루게 되고, 자유를 느낄 수 있다. 진정한 자아는 자연스러움을 통해 얻어진다고 생각한다. (*)     



작가의 이전글 광장시장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