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을씨년스러운 바람은 봄을 더욱 멀리 느끼게 했다. 초등학교 아들의 입학식에 가져갈 꽃다발을 미리 사놓고, 또 다른 학교로 출근하며 한숨을 짓는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고 했던가. 무거운 발걸음은 바뀐 장소로 분주하게 자기 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나는 어느새, S 대 부설 여자 중학교 일본어 교사가 되어 있었다. 이 학교는 교육부 지정 연구학교로, 제2 외국어를 일본어로 채택하여 가게 되었단다. 전임자와 조력자 없이 혼자 모든 것을 해야 했기에 걱정이 앞섰다. 다행히 나와 비슷한 과목에 해당하는 한문 선생님은 나를 국어과에 소속시키시며,
“지금은 외롭다고 생각하겠지만, 나중엔 편해요. 가끔 국어과 모임에 같이 참석하면 되죠. 모두 좋은 분들이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선생님의 따뜻한 말에, 어려운 학교 시스템을 익히고 주위와 적응해 나갈 수 있었다. 교사가 되면 아이들만 잘 가르치면 될 것 같지만, 교사들과의 관계도 중요하다. 그다음이 학생들과 학부모, 그 밖의 업무가 골고루 갖춰져야 한다. 교과에 대한 지식과 지도력은 기본이고 말이다. 그러니 갑자기 몰려든 파도로 어지러울 때, 한문 선생님은 잔잔한 미풍이 되어 주셨다.
교과교실제가 처음으로 도입되어, 그 당시 교사들은 교무실이 아닌 각 교실에서 수업했다. 학생들은 담임교사와 교과 교실에서 조회와 종례, 잠깐의 휴식을 취하는데, 이것은 미국이나 유럽 스타일로 ‘왕따 예방’이란다. 그런 이유로 학교에 가면 온종일 일본어 교실에서 학생들을 맞이했다. 그러니까 아침에 교무실에 가서 인사를 드리고, 커피를 타 마시는 일 외에 선생님들과 만나는 일이 교직원 회의나 행사 외에는 없었다. 사교성이 있는듯하지만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대로도 좋았다. 다른 선생님들은 담임과 다른 업무로 바쁘셨고, 나는 일본어 전체 수업과 방과 후 주 4회 수업만으로도 솔직히 벅찼다. 시간이 나면 미리 중간이나 기말고사 준비를 해 두었다.
학생들은 일본어 수업을 매우 좋아했다. 처음 맡은 중학교 2학년 여자아이들. 나도 이 아이들보다 7살 어린 아들이 있어, 자식 같은 느낌도 있었는데,
“뭐라고요?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이요? 선생님 그러면 18살에 결혼하셨나요?”
어떤 아이가 진지한 눈빛으로 물어본다. 나보고 배우 한효주 닮았다고. 어떤 아이는 자기 이름 대신 ‘벚꽃’라고 불러 달라고 하고, 또 어떤 아이는 1,000원을 대뜸 주고 간다. 길에서 주웠는데, 선생님께 드려야 할 것 같단다. 수업이 끝나면 칠판 가득 좋아하는 일본 드라마나 하고 싶은 말을 써 놓고 갔다. 여자아이들은 이렇게 관심을 두다가도 시험 점수가 낮게 나오면 금방 상처받아 토라지거나 운다. 이런 여자아이들을 1반부터 8반까지 가르치다 보니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나처럼 전교생을 만나지 않아 알지 못할 일이 나한테는 보였다.
그것은 학생들은 담임선생님의 향기를 닮는다는 것이다. 8반 중에 유독 힘든 2명이 있었는데, 그 친구로 인해 항상 그 반 수업이 어수선했다. 나도 학창 시절에 그런 친구를 좋아했지만, 선생님들에게는 골칫거리였던. 친구들을 웃기려고 별난 행동을 하며 수업을 방해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자주 있는 반의 담임선생님에게는 특징이 있다. 담임이 미술이나 음악 과목일 경우, 아이들이 자유분방한 경우가 많아 보였다. 반면에 정서가 안정되고, 처음과 마지막이 한결같은 반이 있었는데, 담임이 과학 선생님이셨다. 물론 이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평소에 과학 선생님을 보면 알 것 같다. 목소리와 키가 작은 까만 얼굴의 귀여운 과학 선생님은 항상 반 아이들 걱정을 하며 이것저것 챙기시지만, 아이들 앞에서는 한결같은 조용한 분위기를 갖고 계신다. 화낼 일도 없는 것이 처음에 먼저 지켜야 할 사항을 얘기하고, 본인이 모범을 보이기 때문에 아이들도 흩어지지 않고 따라간다. 담임선생님의 향기가 학생들에게 전해지는 것은, 아이를 보고 부모를 아는 것과 같을 정도다.
또 하나 알게 된 것이 있다. S 대 부설 여자 중학교에 오는 선생님들은 연구수업을 많이 하시는데, 모임에서 만난 K 선생님은 삼성맨인 남편보다 업무량이 많아, 일 끝나면 남편이 학교 앞에서 기다린단다. 한 번은 수위 아저씨가 그대로 문을 잠그고 가신 일도. 밤 12시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 학교는 교사들의 이런 노력에 비해 학생들의 학업성취율이 높지 않다는 것이다. 주말이나 방학 기간에 기초를 따로 가르쳐도 그렇단다. 그런데 성숙한 아이는 학교생활을 즐기면서도 이렇게 얘기한다.
“여기 선생님들이 일을 너무 많이 하는 건 욕심이 많아서 그래요. 밤늦게까지 교실에 불이 켜져 있던데요?”
솔직히 열심히 하는 것이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서라면 얼굴이 후끈거리는 말이 아닐 수 없다. 나도 처음엔 그랬었다. 그런데 능숙한 선생님들도 그런 길을 걸으셨겠지. 때로는 주위 조화를 맞춰야 하는데, S 대 부설 여자 중학교에서는 열심히 하는 것이 조화였기에 어쩔 수 없지만, 아이들의 순수한 의견에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고사실에서 우연히 만난 J 선생님은,
“교육 분위기와 가정학습도 중요해요. 그런데 우리 교사들도 정작 자기 자식은 돌보지 못하잖아요. 옛날에는 부모님이 교사라면 아이도 공부를 잘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쉽지 않네요. 공부보다 자식의 마음을 잘 챙겨주고 싶어서 자주 전화를 걸어요. 여기서 교사하려면 남편의 외조는 필수인 거 아시죠?”
일하다 보니, 나도 어느새 집안일에 소홀해졌다. 아들에 대해서도 모르는 부분이 늘어나고, 남편에게 부탁해야 할 일이 많아진다. 어딘가에 구멍이 나 있을지 모르지만, 이런 순간도 인생에 필요할 것이다. 가시덤불을 헤치고 나가자, 주위는 향긋한 오월의 장미 향으로 가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