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서 '탈출'의 의미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서 주인공 부부인 프랭크와 에이프릴은 뉴욕 맨해튼에서 1시간 정도 걸리는 교외 지역인 '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에 보금자리를 꾸리게 된다. 남들이 보기엔 안정되고 행복해 보이는 삶이다. 그러나 프랭크와 에이프릴은 현재의 공허하고 희망 없는 삶을 벗어나고 싶어 한다. 그들은 반복되는 일상에서의 탈출을 위해 파리로의 이민을 결심한다. 사랑도 열정도 식고, 꿈도 좌절된 삶에서 이민은 새로운 미래를 의미했다.
영화를 보며 불편했다. 프랭크와 에이프릴이 아이가 둘이나 있는데, 심지어 셋째까지 임신했는데, 자신들의 삶을 '공허하고 희망 없는 삶'이라고 평가하는 부분이 거슬렸다.
'공허하다'는 말까진 괜찮았지만, '희망 없다'는 말은 너무 잔인하게 들렸다.
사실 이 영화에서 아이들이 자주 등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아이들은 에이프릴이 배우의 꿈을 포기한 이유였고, 프랭크가 직장을 그만둘 수 없는 이유였다. 아이들의 존재는 그들이 반복되는 일상을 사는 이유였다. 그리고 그들이 지루하게 느낀 그 반복되는 삶이 곧 아이들에겐 안정적인 삶을 의미했다.
각자의 역할을 다할 뿐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주인공의 삶을 보니, 지난날 오로지 엄마로서의 삶을 살며 우울했던 나의 모습을 떠올랐다. 그리고 이내 그들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아이들은 내 삶의 이유이지만, 내 행복의 전부는 아니다. 아이들을 위해 사는 건 맞지만, 아이들만으로 행복할 수는 없었다. 아이를 품에 안고도 분명 공허했던 시간들이 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의식적으로 아이들을 나의 희망으로 삼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다. 아이들이 잘되길 바라지 않는 건 아니다. 다만, 그들이 내 삶의 이유나 위로가 되어주길 바라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대리만족하는 삶을 원치 않았다. 아이들이 나의 희망이 되는 순간, 그 희망에 매달리게 되고, 결국 아이들에게 집착하게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애써 선을 그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결국 나의 행복은 아이들도 아니고 남편도 아니고,
나 자신에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나로서' 살아가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나는 나로서 살아가기로 했다는 그 말.
어린아이들 입장에선 무책임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절대적인 시간과 노력을 들여 돌보아야 할 아이들이 있다. 내 몸은 하나고 시간은 한정적이다. '나로서의 삶'과 '아이들을 위한 삶'은 슬프게도 양립하기 어렵다. 혹자는 말한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고. 나로서의 삶을 살도록 응원해 주는 말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엄마가 나로서 존재하며 행복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여기에는 아이에 대한 죄책감이 항상 뒤따른다. 무책임한 엄마라는 꼬리표도 따라붙는다.
엄마가 된 이상 나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어렵다.
사회적 시선도 따갑지만, 나 스스로도 내키지 않는다고 할까나? 엄마의 역할을 포기하기 위해선(아니, 잠시 내려놓기 위해선) 확실한 목표와 나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인 내가 나로서 살아가기 위해선 남편의 희생이 필요했다. 남편은 엄마인 나의 역할을 대체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남편은 나로서 살아가고 있는 걸까?
내가 나로서 산다면, 남편은 결국 나로서 살지 못한다.
부모가 된 이상, 둘 중 한 명은 아이들을 맡아야 한다.
남편이 나의 삶을 응원하던 그때,
나에게 아이들은 자기에게 맡겨두고 새장 밖으로 나가라고 말하던 그때 하필,
남편에게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회사에서 핵심 부서로 손꼽히는 부서로의 스카우트 제의였다. 승진과 미래가 보장되는 자리였다.
남편은 고민했다.
처음엔 거절했다. 가족을 위해서.
그러나 나의 권유에 다시 수락했다.
꿈 없는 삶이 얼마나 공허한지 알기 때문에,
나를 잃어버리고 엄마로만 산 시절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기 때문에
나는 남편에게 그 기회를 잡으라고 했다.
다시 내가 희생하는 삶을 살더라도.
영화에서 에이프릴은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떠나 파리로의 이민을 꿈꾸면서도 파리에서 다시 자신의 꿈을 펼칠 생각을 하진 않는다. 자기가 어떻게든 취직을 해서 돈을 벌고 아이들을 돌볼 테니 남편이라도 원하는 꿈을 좇으라고 말한다. 책임져야 할 가족이 생긴 이상 둘 다의 꿈을 이루는 건 불가능하단 걸 알았던 것일까? 그래서 또다시 자신이 희생하는 삶을 살고자 한다. 파리로의 이민이 에이프릴에게 진정한 탈출이 되었을지 고민되는 지점이다.
어쨌든 그들이 꿈꾸던 이민은 결국 좌절된다.
프랭크는 회사에서 승진을 권유받으면서 이민을 포기한다. 그는 현실에서 좀 더 안정된 삶을 살며 자신의 커리어를 쫓고 싶다.
현실에서의 탈출이 좌절되자, 결국 에이프릴은 임신한 아이를 스스로 낙태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에이프릴 역시 죽게 된다.
에이프릴은 살고 싶었던 것일까? 아이만 없으면 그토록 꿈꾸던 파리를 갈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희망 없는 삶에서 자신도 죽음을 택했던 것일까?
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선 진정 행복을 찾을 순 없었을까?
파리에 가도 다시 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서의 삶을 반복하진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나와 남편은 어떤 탈출을 원하는 걸까?
우리가 같은 탈출을 원하고는 있는 걸까?
우리의 '파리'는 어디에 있을까?
우리 모두 탈출에 성공할 수 있을까?
'파리'에 가면 우리는 정말 행복할까?
나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나는 탈출을 원하다가도, 탈출할 수 없다는 걸 이내 깨닫는다. 아니, 탈출하고 싶지 않다.
보통의 사람들처럼 현실에서 답답함을 느끼지만 내가 책임져야 할,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을 버릴 순 없다.
그 과정에서 나는 끊임없이 고민한다.
나는 결국 타협한다.
나와 남편은 우리가 서있는 이 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서 아이들과 함께 작은 파리를 만들고 싶다.
우리 부부는 용기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끔씩 일탈은 해도 완전히 이곳에서 탈출할 용기는 없다.
아니 그보다도 프랭크와 에이프릴이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 한 '반복되고 지루한 일상'의 의미를 이젠 알기 때문이다. 아이가 주는, 그리고 우리가 아이에게 주는 이 안정되고 행복한 삶의 의미를 온전히 느끼고 있기 때문에.
조금 먼 길로 돌아가야겠지만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만드는 작은 파리를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