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혼자 있는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아이가 거실에 누워 뒹굴거리고 있다.
무언가 심심해 보인다.
"간식 줄까?" 말을 걸어본다.
아이는 배가 안 고프다고 한다.
"점토 줄까?"
미리 사두었던 점토를 꺼내본다.
마지못해 아이는 몸을 일으킨다.
아이가 나한테 놀아달라고 요구한 것도 아닌데 괜히 내가 먼저 아이에게 말을 건다.
계속 아이에게 무언가를 채워주려고 한다.
내 생각대로, 내 계획대로만 말이다.
왜 아이가 가만히 쉬는 꼴을 보지 못하는 것일까?
아이의 지루함, 심심함은 곧 '발달 없는 상태'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이가 가만히 있는 상태는 아이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일까?
주말에도 나는 아이를 데리고 근교로 바람 쐬러 놀러 가든, 박물관이나 과학관을 가든, 키즈카페를 가든 어딘가로 향하려고 했다.
아이가 6살이 되면서 다양한 학원들로 아이의 일상을 채워주려고 했다. 피아노 학원, 미술 학원, 스포츠 학원을 보냈고, 학습지로 한글과 수학 공부도 시켰다.
아이에게 많은 자극과 경험, 지식을 주고 싶었다.
그 속에서 아이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만지고 생각할 것이라고 믿었다.
내가 아이를 채워줄수록 아이가 더 큰 그릇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TV 뉴스에서 '멍 때리기' 대회가 나온다.
90분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대회이다.
함께 뉴스를 보던 아이가 말한다.
"엄마! 나도 하루 종일 멍 때리고 싶어."
6살 아이가 하루 종일 멍 때리고 싶다니.
이유를 물었다.
"멍 때리면 심장이 천천히 뛰거든."
그때 깨달았다.
특히 불안감과 긴장감 높은 우리 아이에게 휴식은 곧 성장이라는 것을.
세상의 자극이 불편한 아이는 휴식 속에서 자신을 지키고 안정감을 얻고 있었다. 이는 곧 세상에 나갈 준비를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엄마가 보기에 지루하고 따분한 아이의 시간은 휴식의 시간이자, 진짜 아이가 좋아하는 일을 찾는 시간이었다.
아이는 그 시간 속에서 자기 내면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자기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는다.
그게 그림을 끼적거리는 일이든, 노래를 흥얼거리는 일이든 상관없다.
외부의 방해 없이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게 된다.
그리고 이 경험은 '몰입'으로 이어진다.
좋아하는 일에 몰입할 때 도파민은 증가하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감소한다.
그야말로 아이는 행복한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일상적인 긴장 상태에서 벗어나 몰입 상태에 이르렀을 때, 뇌파 또한 베타파가 감소하고 알파파와 세타파 상태로 접어든다. 최고의 집중을 발휘하고 창의적 사고를 하는 때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휴식은 아이의 뇌가 가장 바쁘게 일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엄마들이 걱정하는 '발달 없는 상태'가 아닌, 진정으로 '발달 중인 상태'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아이의 뇌에서는 기억이 정리되고, 감정이 회복되고, 새로운 상상과 생각들이 조용히 자라난다.
그래서 요즘 나는 조금씩 비우는 연습을 하고 있다.
아이가 가만히 있는 시간을 건드리지 않는 연습,
아이가 지루해하는 순간을 대신 채워주지 않는 연습,
그리고 내가 만든 계획을 내려놓는 연습.
아이는 가만히 쉬는 시간을 스스로 통과하면서 스스로 뭔가를 찾아내고, 자기 방식으로 세상을 채워간다.
아이를 위해 비우는 줄 알았지만,
결국 나를 위해 비우는 것이기도 했다.
엄마가 비울수록 아이뿐 아니라 나도 훨씬 더 너르게 숨을 쉬고 있었다.
평온하고 안정된 일상 속에서 아이가 더 편안히 숨 쉬고, 자기 안의 잠재력을 자연스럽게 펼쳐보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