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엄마를 지키기 위해서.

by 한냥이

엄마를 떠올리면 마음이 복잡하다. 수많은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이 마음을 어떻게 정리할지 몰라서 엄마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을 주저했다. 그런데 오랜만에 들은 노래가 엄마에 대한 유년시절 나의 감정을 선명히 떠올리게 한다.


박효신의 노래 <1991년, 찬바람이 불던 날>엔 이런 가사가 나온다.


어서 어른이 되어 내 키가 더 자라서

항상 당신을 지켜준다고 했는데

내가 걱정이 되어

잠 못 이루는 당신에게 부탁해요

저 하늘이 허락해서

내가 다시 태어나는 그날도

자랑스런 나의 엄마가 돼줘요


내가 1991년생이라서 노래 제목이 더 친숙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가사를 보니 어린 시절 내가 느낀 감정들이 떠올랐다.


나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른이 되면 돈을 벌 수 있고 내게 힘이 생길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엄마를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오랜 기간 우울증을 겪어 온 엄마를 옆에서 지켜봤다. 그 사정을 속속들이 알진 못 하지만, 엄마와 아빠 사이의 갈등, 엄마의 힘듦이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라는 것 정도는 알았다.


무기력한 삶 속에서 자식을 위해 버티는 엄마를 보면 여러 가지 감정이 들었다. 엄마에 대한 안쓰러움과 슬픔은 분노로 번졌고, 급기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의 처지가 답답했고 화가 났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동네 치킨가게에서 서빙을 하는 엄마를 보러 간 적이 있다. 한 남자 손님이 엄마에게 막걸리를 달라고 했다. 엄마는 여기엔 막걸리는 없고 소주와 맥주만 있다고 했다. 이미 술에 취한 손님은 엄마를 위협하며 온갖 쌍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 장면을 목격하고도 나는 나서지 못했다. 나도 너무 무서웠다. 지금 생각해도 심장이 뛰고 화가 들끓는다.

엄마도 대응하지 못했고 주방에 들어가 눈물을 삼키셨다.


나 자신에 화가 났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른이 되어 힘을 갖고 싶었다. 엄마를 지키기 위해서.


아마도 이 글은 엄마에게 보여주지 못할 것 같다. 그때의 죄스러운 마음을 나는 엄마 앞에서 기억 안 나는 척으로 모면하고 있다. 내가 이 사건을 기억하는 것을 안다며 엄마도 얼마나 마음이 미어지실까.




학창 시절 엄마의 웃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정말로 엄마는 웃지 못하셨다.

예능 프로그램을 봐도 TV를 보는 건지 멍 때리는 건지 엄마는 항상 넋이 나가있었다.


엄마를 웃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중학교 3학년인 나는 용돈을 모아서 엄마를 모시고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기로 결심했다.


그때의 고민이 아직도 네*버 지식인에 남아있다.



처음엔 네 명이서 가려고 했나 보다. 아빠는 지방에서 일하시느라 한 달에 한 번 보면 많이 보는 거였다.



13,500원짜리 런치세트에서 제일 양 많은 메뉴를 찾던 나는 아마도 수중에 돈이 2만 원 정도만 있었나 보다.

돈이 부족했던 나는 결국 엄마만 모시고 갔다.

중산층만 가는 패밀리 레스토랑에 처음으로 가봤다.

그리고 그곳에서 내가 사전에 알아본 대로 최고의 가성비를 낼 수 있는 메뉴를 시켜 먹었다.


엄마가 웃었다. 내가 엄마를 웃게 했다. 그날의 감정이 아직도 떠오른다.


그날 엄마에게 약속했다.

내가 어른이 되면 더 좋은 레스토랑에 모시고 가겠다고.




최근에 엄마가 고이 간직해 뒀던 나의 편지를 보내왔다.

그 시절 나는 엄마에게 자주 편지를 써드렸다.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는 그저 엄마에게 힘내라고 편지를 쓴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어린 나는 엄마가 잘못될까 봐 불안했던 것 같다. 우리를 떠날까 봐 무서웠던 것 같다. 나는 엄마에게 살아달라고 외치고 있었다.


엄마는 내가 지키고 싶은 존재였다.

엄마가 있어야 내가 살 수 있으니까.


나에게 친구들의 사춘기는 복에 겨운 투정으로 보였다. 나는 그렇게 나의 사춘기를 묻어뒀다.


벌써 20년 전의 편지다.

지금 어른이 된 나는 엄마를 지키고 있을까?


노래 가사처럼 저 하늘이 허락해서 다시 태어난다면, 나는 엄마에게 다시 나의 엄마가 되어달라고 하고 싶지 않다.


나의 딸로 태어나달라고 하고 싶다. 태어난 순간부터 내가 지켜줄 수 있게.


작가의 이전글아닌 것을 알면서 선택하는 모순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