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무너졌다.

by 한냥이

이제 나의 남편에 대해서 말할 때 것 같다.


같은 과 동기인 남편과 나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사귀기 시작해 9년을 연애했고 그렇게 결혼까지 했다.


우리는 남들과 다른 사랑을 한다고 생각했다.

남편과 있으면 나는 사랑받는 여주인공이 되었고,

불안했던 유년시절을 치유받았다.

나에게 무조건적인 사랑과 안정감을 주는 남자였다.

남편을 만나 나는 더 특별한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그러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면서

남편은 그저 그런 한국 남자였다는 걸 깨달았다.

연애 때는 드러나지 않았던 가부장적인 사고가 결혼 후 다툴 때마다 나타났다.


'제왕절개보단 자연분만이 좋다.'

'아이들은 엄마가 키우는 게 맞다.'

'모유수유를 오래 하는 것이 좋다.'

사회가 그렇듯이, 남편도 이렇게 생각했다.

내게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은연중에 느껴졌다.

저 단언적인 문장들이 사실이든 아니든,

난 저 말들이 불편했다.

저 문장들이 나를 향해 참으라고, 희생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엄마를 위한 배려과 걱정은 어디에도 없었다.


남편이 밖으로 나돈 것도 아닌데, 난 나 혼자만 고군분투한다고 느꼈다.

육아와 집안일이 모두 다 내 책임이 되는 상황에서 아무리 힘들다고 소리쳐도 남자들이 쉽게 할 수 있는 말이 하나 있다.

"그럼 당신이 돈 벌어와. 내가 애 볼게."


'아! 돈을 못 벌면, 가정을 돌보는 책임은 모두 다 내가 져야 하는구나.'

아이들 좀만 크면 이혼해서 양육비 받아서 사는 삶도 괜찮아 보였다.

나는 내 삶을, 남편은 자신의 삶을 불쌍하게 여겼.


우리는 너무 힘들었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여유가 없을 정도로.

이성적인 사고가 마비될 정도로.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낄 정도로.


특히 나는 남편은 힘듦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가장 불쌍한 사람은 나였으니까.


데면데면하던 사이가 된 우리.

그저 육아 파트너가 된 우리.

육아 초반에 싸우던 건 서로에 대한 애정과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우리는 싸우지도 않았다.

그저 각자의 역할만 다할 뿐.


그런데 그런 남편이 무너졌다.

암 진단을 받고 돌아가는 길에 때마침 출장 간 남편이 전화가 왔다.

난 "암 맞대~"라고 말했고 남편은 대답이 없었다.

사실 그다음 통화 내용이 기억나질 않는다.

나도 멍했으니까.


나중에 들어보니

남편은 당장 짐을 싸들고 출국 비행 편을 앞당기려고 공항에 갔다고 한다. 비행 편을 바꾸지 못했고, 남편은 호텔로 다시 돌아가 남은 기간 내내 울기만 한 모양이었다.


귀국해서 집에 돌아온 남편은 암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고 나의 치료와 회복에만 전념했다.


그렇게 남편은 나의 '보호자'가 되었다.

한 달 만에 남편은 머리가 하얗게 세고 5킬로가 빠졌다.

동네 사람들 말에 따르면, 옆에서 인사를 해도 듣질 못 했다고 한다.


어느 날은 빨래를 개는 남편을 보며 짜증을 냈다.

"진작 좀 집안일하지. 이렇게 내가 아프고 나니까 이제야 집안일하냐? 너 때문에 병 걸린 거."


쏟아내는 나를 보며 남편은 울었고

"다고. 미안하다고. 평생 원망해도 되니까 아이들 결혼하고 손주 낳는 것까지만 보고 같이 죽자"라고 했다.


힘들 때마다 나의 욕받이가 되는 건 남편이었다.


암환자만큼, 아니 어쩌면 암환자보다 보호자가 더 힘들다.


항암이 결정된 바로 그날 주사를 맞기로 했다.

병원에서 1시간 정도 사전 교육을 해주는데, 이미 나는 멘털이 나가있었다.

간호사가 가 맞게 될 항암제의 종류를 설명해 주고, 예상되는 부작용과 대처방법을 말해준다.

열이 38도 이상이면 당장 병원에 와야 하고,

토를 하면 어떤 약을 먹어야 하고,

설사를 하면 어떤 약을 먹어야 하는지

쏟아지는 정보 속에 남편은 나 대신 모든 내용을 기억하려고 애썼다.


사실 항암치료를 하고 암병원이 아닌 집에서 쉬고 싶었다. 나도 내 집이 편하고, 아이들도 보고 싶고.

근데 남편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아프더라도 남편이 없는 곳에서 아프고 싶었다.

내가 아픈 모습을 보이면 남편이 미칠걸 아니까.


항암의 부작용으로 떨어진 면역력에 난 쉽게 바이러스에 감염됐고 고열로 두 번이나 응급실에 갔다.

남편은 치료 기간 내내 나의 보호자 역할을 했고 아이들 육아와 집안일을 전담했다.

회사도 가면서 말이다.


누군가 남편에게 지나가는 말로 '힘들지?' 물으면

남편은 버튼이 눌린 것마냥 눈물을 쏟아냈다. 30분 동안이나 멈추질 못 했.

그렇지만 내 앞에서 힘든 티를 낼 수 없었던 남편은 과거의 나처럼 속으로 병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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