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의심병을 갖게 된 이유
단언컨대 지금부터 설명할 피해 사례는 동네에서 카페 혹은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개업 초 아주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들은 주로 아주 인자하고 환한 미소로 일관한다. 1인보다는 2인 이상 조별활동을 선호한다. 가게가 예쁘네요, 사장님이 친절하시네요, 컵이 너무 예쁘네요, 음식이 너무 맛있네요, 어디 사세요 등등.
친밀감을 형성하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질문 세례가 끊임없이 쏟아진다. 그들은 무차별 칭찬 폭격을 날려 나와 라포를 형성하려 애를 쓴다. 물론 가게 매출을 올려주는 데 잔잔한 공을 세워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따라서 가게 사장이라면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일주일에 한 번, 많은 두 번 이상 가게에 출몰해 나와 친해지려 무던히 애를 쓴다. 그리고 이내 진짜 얼굴을 드러낸다. 자기네들이 다니는 ㅇㅇ에서 나온 신문 또는 엽서를 쥐어주며 이야기에 포문을 연다.
- 이번 주에 혹시 시간 되세요? 저희가 이번 주에 전시회를 하는데, 청년 모임을 하는데 한 번 오실래요?
- 아니요~ 제가 하루에 12시간 이상 일해요. 게다가 일주일에 한 번 겨우 쉬느라 피곤해요.
그들의 초대를 에둘러 거절하지만 그들은 숱한 실패에도 칠전팔기로 도전을 마다하지 않는다. 희생양이 덫에 걸릴 때까지 작업을 반복하는 꾼들인 셈이다 희생양을 찾는 작업을 반복하는, 소위 말하는 꾼 들이다. 개업 초 손님에게 친절해야만 하는 게 내 약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다시 말해 거절을 돌려 말해봤자 소용없다는 뜻이다.
<시간도 없고요 관심은 더 없어요>
이쯤에서 포기할 사람들이라면 애써 쌓은 라포를 쉽게 포기할 리 만무했다. 상대방에 동의 없이 이루어진 초대를 내가 거절했다 해서 그들이 어느 날 발걸음을 뚝 끊는 일은 결코 없다. 그들은 거절당한 것이 아니라 여기며 방문을 줄이되, 잊을만하면 또다시 등장한다.
아무개는 마음 힘듦에 도움이 될 좋은 말씀을 나누는 자리에 동석하기를 제안하며, 다른 아무개는 오늘 다른 사람 앞에서 5분 동안 설명하는 숙제가 있는데 들어줄 수 있겠냐는 부담스러운 부탁을 말한다.
이쯤 하면 오버스러운 그들의 초대에 대한 선택지는 두 개로 추릴 수 있다. 하나는 확실한 거절로 돌려보내기. 또 다른 하나는 그들에게 소소한 매출을 갈취(?)하되 그들에게 동조하지 않기.
과연 나는 어떤 답을 짚었을까
정말 오랜만에 돌아온 2인조 그들은 마치 이전에 일은 기억나지 않는다는 듯 5분 발표하기 숙제를 해야 하니,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달라 말한다. 나는 이제 안다. 이들의 스톱워치는 애초에 5분 설정이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