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기다림의 여정

파리의 밤에서 찹쌀떡 소리를 듣다

by Mansongyee
Michel Delacroix, 그의 붓끝에서 태어난 다정한 눈 내리는 파리




그림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처음 그림들을 마주했을 때,

입가에는 묘한 미소가 번졌다.

“이게 뭐지?” 싶은 낯선 이끌림 뒤로

마음이 서서히 뭉글뭉글해졌다.

미셸 들라크루아(Michel Delacroix)의 여덟 점의 그림이

유튜브 알고리즘을 타고 내 눈앞에 도착했다.


나는 그것들을 며칠 동안 숨겨두었던 보물처럼 꺼내어

마법 지팡이처럼 하나씩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볼 때마다 그림은 조금씩 다른 표정을 보여주었다.



어른을 위한 동화책 같은 파리


파리라고?

내가 직접 걸어 다녔던 차가운 대리석의 도시가 아니었다.

그의 그림 속 파리는 어른을 위한 동화책 같았다.

나는 그 평화로운 풍경을

며칠 동안 곱씹었다.



예술은 기다림 끝에 도착한다


어느새 나는 에펠탑 아래에 서 있는 여행자가 아니라,

이름 모를 작은 골목의 창가에 기대 선

어린아이가 된 듯했다.

들라크루아의 붓끝에서 살아난

파리의 밤하늘은 포근한 이불 같았고,

골목마다 켜진 불빛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다정한 눈동자처럼 보였다.


나는 예술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나의 감동은 언제나 즉각적이지 않고

조금 더디게 찾아온다.

며칠의 시간이 흐르고,

일상의 틈바구니 속에서 문득 그 장면이 떠오를 때

비로소 내 안의 반응들이 고개를 든다.

마치 따뜻한 차가 충분히 우러나기를

기다리는 시간처럼,

내게 예술은 ‘기다림의 여정’이다.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돌아간 밤


파리에서의 실제 경험이

거대한 역사와 예술의 무게를 견디는 시간이었더라면,

들라크루아의 파리는 내 기억 속에 짐짓 밀어 넣어 두었던

어린 시절의 천진한 나를 조용히 끄집어내 주었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미소가 지어지고,

잊고 있던 순수함이 살며시 깨어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며칠 동안 그의 그림 속 파리의 골목마다 켜진

노란 불빛을 가만히 응시하던 중,

아주 오래된 소리 하나가 내 안에서 되살아났다.



“찹쌀떡 싸—려어—”


어린 사 남매가 한 방에 조르르 누워

잠을 청하던 밤,

창밖 어둠을 가르며 들려오던

길고 아련한 외침.


“찹쌀떡 싸아—려어—"


그 소리가 들리면 우리는 이불속에서

서로의 발을 맞대며 킥킥 웃곤 했다.

사 남매가 가장 가까이 붙어 있던 시절,

그때 그 밤의 기억이다.


파리의 에펠탑이 뿜어내는 푸른 빛줄기가

마치 그 시절 우리 집 창문을 두드리던

달빛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파리를 그린 한 화가의 변하지 않는 동심이

1970년대 한국의 골목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예술이 내 것이 되는 순간


예술은 참 묘하다.

파리의 역사적 의미를 공부할 때보다,

며칠 동안 그림을 곱씹으며

내 안의 아이를 다시 만났을 때

비로소 이 그림은

‘나의 것’이 되었다.


이제 들라크루아의 그림을 볼 때마다

나는 다정한 파리의 밤거리에서

찹쌀떡 장수의 목소리를

찾게 될 것 같다.



정성이라는 이름의 온기


비록 시공간은 다르지만,

사랑하는 이들이 잠든 밤을

지켜주던 그 불빛과 소리들은

결국 같은 색의 ‘정성’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나는 오늘도 조금 늦었지만,

아주 깊은 행복을 조용히 맛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