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정한 차림으로 치른 하나의 의식
2026년 첫날,
나는 한 해의 시작을 의식처럼 맞이하고 싶었다.
그래서 옷을 단정히 차려입고 밴쿠버 신년 음악회에 갔다.
오래도록 마음속에만 두고 있던 나만의 새해 시작 방식이었다.
밴쿠버의 신년 음악회는
전 세계 신년 음악회의 원조이자 표준으로 불리는 비엔나 신년 음악회와
새해를 희망으로 시작한다는 같은 정서를 공유한다.
전통을 지키되,
그 위에 시대의 해석을 덧입히며 30여 년의 시간을 이어온 공연이다.
주요 레퍼토리는 요한 슈트라우스 가문의 경쾌한 왈츠와 폴카다.
오스트리아 현지의 분위기를
Salute to Vienna — 비엔나에 보내는 경의라는 이름으로
매년 이 도시에 옮겨온다.
오늘의 2026년 음악회는
밴쿠버 오르페움 극장에서 열린 30주년 기념 공연이었다.
비엔나에서 시작된 음악의 울림이 대서양을 건너 밴쿠버의 겨울에 닿는 순간,
음악은 장소를 잃지 않고 오히려 시간을 건너왔다.
오늘의 주인공인 왈츠는 클래식이 반드시 무거운 해석을 동반하지 않아도
몸의 감각과 마음의 리듬을 따라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는
음악임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새해를 맞이하는 음악으로서 밝고 경쾌한 축제의 얼굴 위에
아름다운 몸짓을 지닌 무용수들의 우아함을 더했다.
더 나아가 오페레타 속 왈츠에서는 소프라노와 테너가
노래와 춤을 함께 엮어 내며 그 자체로 하나의 로맨틱한 장면을 완성했다.
하지만 오늘,
내가 가장 깊이 받은 감동은 무대 위가 아니라 객석에서였다.
관객들의 연령대는 대체로 높았고,
그들 사이에서 내 나이는 오히려 젊은 축에 속해 보였다.
휠체어에 몸을 의탁한 이들,
거동이 다소 불편해 보이는 어르신들까지도 모두 정갈하게 옷을 갖춰 입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모습은 단순히 ‘즐기기 위해 나온 자리’라기보다
‘스스로를 존중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처럼 느껴졌다.
삶의 어떤 단계에서도 자신의 존엄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
나는 그 장엄한 뒷모습들 앞에서 겸허한 배움을 얻었다.
공연이 끝난 뒤,
수많은 사람들 사이를 지나 천천히 로비를 걸어 나오며 나는 생각했다.
오늘의 선택은 나의 새해를 시작하기에 참으로 올바른 방식이었다고.
여건이 허락한다면, 앞으로 내가 어디에 있든 새해 첫날의 의식은
신년 음악회를 향해 옷을 단정히 차려입는 일에서 시작하고 싶다.
그 행위 하나만으로도 한 해는 이미 서두르지 않고,
충분히 품격 있게 출발한 셈이니까.
의식은,
서두르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건네는 약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