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의 지붕과 토론토의 빛이 만든 시선의 차이
보통 좋은 뷰는 높은 곳에 있다고 말한다.
나 역시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도시를 좋아한다.
격자무늬로 잘 정돈된 도로, 질서 정연하게 늘어선 빌딩들.
높은 곳에서 보면 복잡한 삶도 한결 깔끔하고 명료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맨체스터에서의 그날은 달랐다.
43층 높이에서 아래를 굽어보았을 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화려한 도심의 스카이라인이 아니었다.
땅에 바짝 붙어 어깨를 맞댄 채 늘어선 단층과 2층 집들의 지붕들이었다.
마치 오래된 담요처럼 도시의 바닥을 조용히 덮고 있는 그 투박한 지붕들 위로,
수많은 삶의 이야기들이 구름처럼 떠다니는 듯했다.
그토록 많은 ‘개인의 삶’이 낮은 높이로 밀집되어 한눈에 들어온 적은 없었다.
저 낡은 지붕 아래서 누군가는 태어났고, 사랑했으며,
때로는 끝내 화해하지 못한 채 떠나갔을 것이다.
부부의 신뢰와 균열, 세대 간의 갈등, 그리고 차마 전하지 못한 사과들까지.
사람은 머물다 가고 지붕은 남는다.
그 지붕 아래로 또 다른 사람들이 들어와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다시 써 내려갔을 것이다.
그 순간, 나는 도시의 풍경이 아니라 시간의 층위를
내려다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 지붕들은,
한 시대가 아니라 여러 세대의 시간이 겹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높은 곳에서의 시선이 처음으로 ‘우월함’이 아닌 “겸손함”이 되었던 날.
맨체스터의 낮은 지붕들은 내게 속삭였다.
“우리는 화려하지 않았지만, 각자 충분히 치열하게 살아냈다.”라고.
그것은 높은 곳에 올랐기에 비로소 보인, 아주 낮고 깊은 삶의 기록이었다.
그리고 그 기록들 사이 어딘가에,
나 역시 비슷한 높이로 쌓아 올린 나만의 시간들이
섞여 있을 것임을 부정할 수 없었다.
반대로, 땅 위에서 높은 빌딩을 올려다볼 때의 감각은
전혀 다른 층위의 경이로움이었다.
토론토에서 걷는 여행을 하던 어느 밤,
나는 도시 한복판을 아무 생각 없이 지나고 있었다.
그때 무심코 고개를 들었고,
나는 그대로 그 자리에 멈춰 서고 말았다.
뉴욕의 화려함이나 서울의 역동성과는 또 다른,
기이할 정도로 강렬한 빛의 향연이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이다.
유리로 된 빌딩들은 빛을 가두지 않고 투과시키거나 반사하며
도시 전체를 거대한 환영(Illusion)처럼 만들고 있었다.
따뜻한 오렌지빛 조명이 아니었다. 전면 유리 벽을 통과하며 굴절되는
차가운 푸른색과 날카로운 흰색의 빛기둥들.
그 빛의 조합은 마치 미래 지향적인 차가운 지성이
공간 전체를 지배하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 압도적인 야경 앞에서 나는 한참을 서 있었다.
입을 쩍 벌리고 고개가 뒤로 꺾일 듯 빌딩을 올려다보는 모습이었다.
그러자 머릿속에 아주 오래된 개그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1985년, 서울에 63 빌딩이 처음 세워졌을 무렵의 이야기다.
시골 영감이 빌딩 층수를 세고 있으면
서울깍쟁이가 다가와 "본 만큼 돈을 내라"라고
엄포를 놓던 그 시절의 유머.
나는 토론토 한복판에서 그 '시골 영감'이 되어 있었다.
도시의 빠른 변화가 두려우면서도 동경스러웠던 80년대의 그 순박한 정서가,
최첨단 도시 토론토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 위로 묘하게 겹쳐졌다.
토론토의 빌딩 숲에서는 맨체스터에서 느꼈던 인간적인 스토리를 읽어낼 틈이 없었다.
그곳엔 오직 빛으로 지어진 현대 건축의 역동적인 아름다움만이 존재했다.
실재하는 건물인지, 아니면 정교하게 설계된 빛의 조각인지
헷갈릴 정도의 입체감에 내 시각은 완전히 흡수되어 버렸다.
그날 나는 비로소 ‘높이’란 물리적 위치가 아니라,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의 차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경험한 두 개의 높이.
낮에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낮은 삶'의 기록과,
밤에 낮은 곳에서 올려다본 '높은 문명'의 환영.
그 극명한 대비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세상은 내가 서 있는 높이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을.
그리고 그 모든 풍경 속에는 각기 다른 방식의 아름다움과 존중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높이는 언제나 위에 있지 않았다.
때로는 내려다볼 때 가장 낮은 삶이 보였고,
올려다볼 때 가장 높은 문명이 보였다.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아니라,
내가 선택한 시선이 세상을 결정하고 있었다.
이 시선 사이에서
내 감정은 말이 되지 못한 채 머물렀다.
그대로 두어도
충분히 완성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