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온 킹>이 가르쳐준 인생의 Circle of Life
인생의 순환 (Circle of Life)
파리의 호텔 로비에서
우연히 조그만 팸플릿 하나를 집어 들었다.
〈라이온 킹〉 뮤지컬 공연이었다.
30여 년 전,
한국에서 이 영화를 보고
아들을 ‘심바’라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의 나는 열혈 엄마였고,
이 영화의 영어 대본으로
아이들에게 영어공부를 시켰다.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밀려왔다.
향수라고 하기엔 조금 더 무거운 감정.
나는 남편에게
“뮤지컬 보러 가자고 팸플릿을 들이밀었다.
남편은 심드렁한 얼굴로 티켓을 예매했다.
제일 싼 자리, 구석자리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괜찮았다.
그 기억을 어루만질 수만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그런데 그 싼 자리가 뜻밖의 선물이었다.
제일 앞, 제일 옆.
무대 깊숙한 곳까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내 시야에 들어오는 배우들의 표정은
숨길 수 없이 선명했다.
공연은 관객석을 가로지르는 행렬과 함께 시작됐다.
Circle of Life.
그 노래가 흐르는 순간,
남편의 표정이 바뀌었다. 나보다 더 매료된 얼굴이다.
그는 공연이 끝난 뒤
“나의 성장판은 아직 열려 있다”라고 말한
그날 이후
그는 오페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무대는 앞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거대한 코끼리와 초원의 동물들이
내 어깨를 스치듯 지나가는 순간,
파리의 고풍스러운 극장은
사바나의 초원으로 변했다.
준비할 틈도 없이
쏟아져 들어온 생명력 앞에서
나는 속수무책으로 감동했다.
배우의 머리 위에 떠 있던 가면은
고개를 숙이는 순간 동물이 되었고,
고개를 들면 다시 인간이 되었다.
그 경계의 흔들림이
이 공연의 숨결처럼 느껴졌다.
심바 아버지, 무파사 가 죽은 뒤
그 슬픔이 표현될 때
무대 위에는
하얀 비단천이 흘렀다.
배우의 비통한 몸짓과 결합되는
눈밑에 붙인 하얀 비단천은
그날 밤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슬픔의 눈물로 보였고
마음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렸다.
이 공연은 영화를 그대로 옮기지 않았다.
무대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생명력을 불러냈다.
인형이 울고 있는지,
배우가 울고 있는지
관객에게 판단을 맡긴다.
그 빈틈에서
상상력은 살아 움직였다.
중앙 좌석이 명당이라지만,
이 공연에서 구석자리는 달랐다.
무대 전체 대신
한 인간이 한 마리의 동물이 되기 위해
쏟아내는 노력을 보았다.
목에 선 핏대,
가면 뒤에서 빛나는 눈동자,
격렬한 안무 끝에 튀는 땀방울까지.
다 보이지 않았기에 더 깊이 보였다.
공연장을 나서며 남편은 말했다.
예술가들의 노고의 가치에 비해
너무 싼 티켓값이었다고 도네이션이라도 해야 하나?
가장 싼 구석 자리에서 배우의 핏대와 땀방울을
정면으로 목격한 자만이 내뱉을 수 있는 고백이었다.
억지로 끌려온 줄 알았던 남편이
오히려 나를 예술의 한가운데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30년 전,
나는 이 이야기로
아이들의 미래를 준비했고,
지금 아이들은 각자의 삶으로 단단히 서 있다.
우연히 집어 든 작은 팸플릿 한 장에서 시작된 파리의 밤은
시작과 끝이 구분되지 않는
하나의 원처럼 이어져 있었다.
이 얼마나 값진
Circle of Life 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