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똥이다.
어느 날 젊은 친구가 그녀에게 물었다.
결혼상대로
예쁜 여자가 좋아요,
착한 여자가 좋아요?
그녀는
"예쁘면서 착한 사람? 그럼 제일 좋지.”
"근데, 그런 사람 없더나?” 하고 말을 툭 던져놓는다.
그러고는 속으로 그 친구가 들고 있는 화려한 지도를 슬쩍 훔쳐본다.
예쁨 몇 점, 착함 몇 점. 그가 정밀하게 그려놓은
그 지도를 따라가면 정말 낙원이 나올까?
하지만 아무리 잘 그려진 지도라도,
실제 길 위에 발을 내딛는 순간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결혼은 매끈하게 닦인 트랙을 달리는 경주가 아니라,
지도에도 없는 웅덩이를 함께 건너야 하는 진흙탕 생활이기 때문이다.
그 길 위에서 ‘예쁨’이나 ‘착함’ 같은 점수표는 첫 번째 웅덩이를 만나자마자
흙탕물에 젖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지워지고 만다.
예쁨은 같이 살다 보면 어느새 풍경이 되고,
착함은 설거지 순서나 리모컨 앞에서 시험대에 오른다.
그래서 그녀는
결혼은 계산기 없이도 웃을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계산 안 하는 결혼은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게 아니라,
손해를 봤다고 바로 적어두지 않는 관계다.
욕심 안 내는 결혼은
꿈을 포기하는 일이 아니라,
상대에게 매번 업그레이드를 요구하지 않는 일이라고.
결국 오래가는 건 조건을 잘 고른 사람이 아니라,
계산을 덜 한 사람 쪽이 아닐까?
그 말을 하고 나니
문득 떠오른 장면이 있다.
연애결혼을 한 시누이들이 모여
사랑과 결혼 이야기를 주고받던 날이었다.
그때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뜨겁게 결혼한
큰 시누이가 말했다.
“사랑? 사랑은 똥이다.”
순간 모두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런데 그 말을 한 분은
50년 넘게 별 탈없이 살고 계신다.
두 분 중 누군가는 시간을 보내면서
양보의 기술을 익혔을 것이다.
사랑이 똥이 된 뒤에도
함께 살게 만드는 기술 말이다.
오래 함께 사는 것은 어떤 걸작보다 위대한 예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