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내 방은 기숙사에서

그 많던 남자친구는 다 어디로 갔을까?(3)

by 싱아

"문 열어!"


암마가 미친 듯이 문고리를 돌리던 소리를 떠올리면-일부러 회상하는 것은 아니고, 그냥 문득문득 떠오른다-, 십 년은 훌쩍 지난 아직도 내 심장은 그때의 그 공포에 쪼그라든다.


고등학생쯤 되었을 때, 경제 사정이 나아져 내방이 생겼다. 하지만 온전한 내방은 아니었다.


딸깍-


동그랗고 작은 문잠금쇠가 풀리는 소리는 내 몸의 모든 솜털을 쭈뼛 서게 만들었다. 동그란 구멍에 작고 날카로운 것을 찔러 넣어 간단히 잠금을 해제하는 방식으로, 엄마는 내 방에 침입했다.


"내 집에서 문을 잠그다니."


문을 열고 들어온 엄마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죄를 저지른 것 같은 눈으로 나를 노려본다.


씩씩거리는 호흡과 날카롭고 높은 목소리는 내가 방문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네모난 방의 모서리로 뒷걸음질 치게 한다. 책상 밑도 힐끔거려 본다. 엄마의 발걸음 속도보다 더 빠르게 저 밑으로 뛰어들어갈 수 있을까?


퍽-


내가 어릴 때도 있었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말. 나는 그 말이 너무 미웠다. 엄마는 수없이 손바닥으로 내 머리통을 갈기거나 빗자루로 팔뚝이나 허벅지를 때렸다. 나는 엄마가 손만 들어도 무서웠고, 이 공포는 자라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 앞에서 움츠러드는 것으로 이어졌다.


"어딜! 어딜!"


방을 굳게 닫았던 이유는 단순했다. 위협의 대상으로부터 내가 안전하게 있을 장소를 확보하고 싶었다. 집을 나가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가출할 용기는 없었다. 주어진 환경에서 식물처럼 살아가던 내게 분리된 방이 생긴 것이다. 당연히 엄마로부터 멀어지고 싶었다.


퍽- 퍽-


"잘못했어요..."


그때는 마구 때리는 손길을 피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저 고통에 울면서 뭘 잘못했는 지도 모르면서 사죄했다. 왜 그랬을까?


빗자루를 한 번이라도 밀치거나, 반항했다면 지금의 나는 달라졌을까? 타인의 부정적인 시선에 움츠러들지 않는 내가 되었을까?


타인의 잘못이 명확함에도, 일단 사과해서 상대를 화를 누그러뜨리려고 하는 습관도 여기서 비롯되었을까? 성격은 타고난 것과 환경이 섞여서 형성된다고들 하니까 반쯤은 맞을지도 모른다.


대학교 새내기.


전액 장학금을 받고 입학한 학교에서, 나는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을 때, 나는 기쁨의 비명을 질렀다. 기숙사 룸메이트들은 울었고, 엄마가 보고 싶다고 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그들로부터 유리되는 느낌을 받았다. 부모로부터 늘 분리되고 싶어 했기에 부모를 그리워하는 이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새로 태어난 기분이 들었다.


다섯 살 때까지 말을 하지 않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조용하고 도서관에 홀로 있기를 즐겨 있던 내가 들어가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내가 튀어나왔다.


경제적으로 분리되고 싶어 아르바이트를 모색했다. 학생회와 동아리에 들어가 활발한 대외활동을 했다. 당시 유행하기 시작하던 공모전 사이트를 적극적으로 탐색했다. 덕분에 공짜로 해외여행을 갔고, 그곳에서도 새로운 사람들과 어려움 없이-깊은 관계는 아니었다-교류했다. 마치 파워 외향인처럼 말이다.


오랫동안 목말랐던 사람처럼, 그 모든 것들을 쉬지 않고 흡수했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성격 변화가 경이롭다. 한 사람의 성격이 이렇게 손바닥 뒤집듯이 달라질 수 있을까?


그리고 해방감을 만끽하던 그때, 음악 동아리에서 첫 남자친구가 생겼다.


***


최초의 방을 기억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