냠냠 끄적-04. 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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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공릉동에 있는 대학교에 들어갔을 때 솔직히 학교 앞에 술집이 많지는 않았다. 메뉴당 3천 원인데 그런 게 30개 정도 되는 밥집이라던가 1인분에 2천5백 원짜리 고추장 불고기 집이라던가 하는 학생들을 상대로 한 식당들은 많았지만 술집이라곤 호프집 하나 민속주점 하나 전집 하나 대포집 두세 집뿐이었다. 그 몇 안 되는 술집에서 서울에서 크기로만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는 학교의 수많은 학우들이 밤마다 술을 퍼마셨다. 안주가 비싸 봐야 만원이었는데 만원짜리 안주가 세 개를 넘어가게 시키면 다른 테이블에서 부르주아라고 수군대던 그런 시절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뭐라 하지 않고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있었던 안주가 있었으니 유일한 민속 주점의 대표 안주였던 닭볶음탕이었다. 무려 만 오천 원짜리 이 안주는 누구도 섣불리 시켜먹지 못했다. 친구가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던가 누군가의 생일이거나 하는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었던 안주였다. 물론 매콤 달달하고 오동통한 닭다리는 그날 계산하시는 주인공님의 몫이었다.
그 민속주점에서 술을 먹고 소주 뚜껑 50개를 천장에 걸면 닭볶음탕 하나를 공짜로 줬는데 그게 가난한 우리 패거리의 목표였다. 마케팅의 일환이었겠지만 5천 원짜리나 7천 원짜리 안주 하나 시켜놓고 소주를 퍼마셔서 2주도 안 걸려 뚜껑 50개를 걸어버리는 우리에게 닭볶음탕을 내주면서 내가 사장이라도 욕 많이 했을 것 같다.
그렇게 우물 안 개구리처럼 학교 앞에서만 술을 먹던 시기에 종로로 토익학원을 간다던 친구가 어느 여름날 갑자기 우리를 데리고 광장시장을 갔다. 거기서 처음 먹었던 음식이 바로 닭 한 마리이다. 세상에나, 이렇게나 담백한 닭이라니... 세상에 음주와 해장이 동시에 되는 천상의 음식이 존재하다니...
광장시장 안쪽 손님들이 바글바글한 오래된 식당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소주를 얼마나 먹었는지 모른다. 기본 탕에 마시고 칼국수에 마시고 마지막 죽까지... 계속 술이 들어갔다. 그렇게나 마셔도 취하지 않는 안주가 세상에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중에야 고주망태가 되었지만 그 다음날 숙취도 심하지 않아 감탄이 절로 나오는 안주였다 그 이후로 몇 달 동안은 광장시장 닭 한 마리 골목에 있는 거의 모든 식당을 다 가본 듯하다. 아이러니하게도 학교 앞의 민속주점 닭볶음탕은 아예 쳐다도 안 보게 되어버렸다.
그리고 찜닭이 나왔다. 여기저기 찜닭집이 생겼지만 먹어보지를 못했다. 참 어이없는 이유이지만 찜닭집은 여자 친구랑 가야 한다고.. 남자들끼리 가는 거 아니라는 왠지 모르는 분위기가 있었다. 한지로 인테리어 된 깔끔한 분위기에 담배도 피우면 안 될 것 같고(그땐 식당에서 담배도 폈으니까..) 시장에서처럼 왁자지껄하게 막 술을 부어라 마셔라 하면 안 되는 느낌이었다. TV에도 찜닭 열풍이 나오고 안동찜닭이니 봉추찜닭이니 어디를 가던지 보였지만 차마 들어갈 수 없었던 솔로금지구역 이었다. 나중에.. 아주 나중에야 먹어본 찜닭은 내가 못하는 집에서 먹었는지는 몰라도..(체인점이었는데..) 닭고기는 얼마 없고 짜고 시커먼 당면 가득에 감자만 득실댔다. 이걸 왜 여자 친구랑 먹어야 하는 음식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첫인상이 너무 좋지 않게 시작돼서 그런지 나는 아직도 찜닭은 썩 즐겨먹지는 않는다..
마지막으로 불닭이 나왔다. 불닭은 길게 쓸 수가 없다. 친구와 나 맵찔이 둘이서 '우리도 유행에 맞는 음식을 먹는 사람이 되어보자!'라며 호기롭게 불닭집에서 불닭 한판과 소주 한 병을 주문했다. 불닭 다섯 점 정도에 단무지만 50개 정도를 먹다가 식당 사장님이 그냥 나가라고 해서 나왔다. 그 후로 불닭뿐만 아니라 음식 이름 앞에 불자 들어간 음식은 먹지 않는다.
나보다 더한 맵찔이인 쏭과 결혼하고 닭요리를 하면 주로 닭 한 마리를 하고 자극적인 게 당길 때는 반마리는 찜닭 나머지 반마리는 닭볶음탕을 한다. 따로 놓고 함께 먹지만 부딪치는 소주는 언제나 맛있게 술술 잘도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