냠냠 끄적-03. 곱창

오늘은 곱창에 소주 한 잔?

by 선호

어렸을 적 수유리에 살던 시절, 일 년에 한두 번 부모님이 큰맘 먹고 가던 소곱창집이 있었다. 대중목욕탕 벽에서나 볼법한 타일로 덮인 기름기 가득한 돌식탁에서 먹던 양곱창의 쫄깃함과 고소함은 아직도 생생하게 생각이 난다. 한국인의 후식 볶음밥을 먹을 때면 불판 바닥이 닳도록 숟가락을 긁어가며 마지막까지 타버린 밥풀 한 톨 남김없이 먹었다. 볶음밥을 해주실 때 넣어주던 하얀 가루가 있었는데 밥을 더 맛있게 해 준다고 해서 추가로 더 넣어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곱창집에 가지 못하더라도 그 볶음밥이 먹고 싶다고 부모님을 조르면 어머니가 식당에 가서 그 하얀 가루만 조금 얻어와 해주시곤 했는데 김치볶음밥에 넣기만 해도 식당에서 먹던 그 맛과 비슷해서 온 가족이 프라이팬 하나만 밥상에 놓고 숟가락 싸움을 하며 먹곤 했다. 나중에 알게 된 하얀 가루의 정체는 곱창 손질하면서 나오는 기름 부분을 말린 것이었다. 뭐가 됐던 맛있으면 그만이던 시절이었기에 상관은 없었다.

30여 년이 흘러 쏭과 그 식당을 다시 갔을 때는 수유리 3대 곱창집이라는 타이틀의 유명한 노포로 알려져 있었다. 타일로 된 돌식탁이며 양곱창의 맛도 하얀 기름 가루가 뿌려진 볶음밥도 그대로여서 기분이 참 좋아 소주가 몇 병이고 술술 들어갔다.


13살 무렵 일요일에 종종 아버지와 황학동 시장을 가곤 했다. 그곳은 정말 없는 게 없는 별천지 같은 시장이었다. 뭐든지 닦인다는 일제 수세미도 사고 길 한복판에 잔뜩 쌓아놓은 헌 옷 무더기를 뒤져 아버지 작업복을 사기도 했다. 명절 전에는 평화시장에 들러 아들들 옷을 사주시기도 했다. 일반 가게에선 안 판다는 외국 담배를 살 때 옆에서 아양을 떨면 아버지는 못 이기는 척 외국 과자 하나도 같이 계산해 주셨다.

황학동 시장을 가기를 기다린 가장 큰 이유는 점심이었다. 시장 중간에 돼지 막창 골목이 있는데 거기 막창이 나에겐 최고의 점심이었다. 아버지랑 좌판에 앉아 막창 2인분과 바로 옆에서 팔던 2천 원짜리 손칼국수를 먹으면 그날은 아무것도 안 사주셔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명절에 온 가족이 모이기 전 날 아버지는 혼자 황학동에 가셔서 그때 먹던 막창을 듬뿍 사 오신다.


고등학교 때는 동네 번화가에 아예 순대곱창 타운이라는 지하 식당가가 있었다. 친구들끼리 한 달에 서너 번씩은 야자시간에 도망 나와서 먹곤 했다. 빌딩 지하에 30여 개의 순대곱창 집이 좌판처럼 있었고 어른들이 술 먹는 시간대 전에는 우리같이 몰래 오는 고등학생들이 북적댔다. 3년 내내 한 집만 가다 보니 음료수나 볶음밥은 아예 서비스로 내어주셨다. 수능이 끝난 날 식당 사장님이 남들 몰래 소주를 주시며 '이제 어른이니까 한잔씩 해라' 하셨는데 진짜 어른이 된 기분에 좋다고 두 잔 정도를 받아먹고 취해서 집에 갔다가 된통 혼이 나기도 했다.


대학로에서 공연일을 할 때 극장 뒷골목에 있던 대구 막창집을 너무 애정 했고 서점 일을 할 때 퇴근 후 직장 선배들과 먹던 종로 5가의 곱창집들도 사랑했다. 쏭과 서로 불꽃이 튀었던 곳도 논현동의 곱창집이었다. 연애를 한창 할 때도 한성대 입구에 있던 야채곱창집을 참 많이도 사랑했다.


제주로 이주하고 지금 살고 있는 동네 근처에는 곱창집이 없어서 많이 아쉽다. 동네 마트에서 사거나 온라인으로 주문을 해서 가끔 먹기는 하지만 그 맛이 아니기에 더 안 먹게 되는 듯하다. 어쩌다 찾아낸 식당은 질기고 맛이 없다. 제대로 된 맛있는 곱창을 먹었던 게 언제인지 생각도 나지 않아 섭섭해 지고는 있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 곱창이 좋다..

이전 28화냠냠 끄적-02. 햄버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