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층 야외 테라스에 앉아 느슨하게 길 건너편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다섯 살가량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가 울고 있다. 무엇이 그리 서러운지 목청 높여 울고 있다. 엄마는 무릎을 꿇고 아이를 안아서 달래 보지만 그럴수록 아이는 몸을 흔들어대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고 있다.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을 때 대체로 사람들은 두 가지로 반응한다. 안쓰러운 마음에 자신도 조금 슬퍼지는 쪽이거나 시끄러워서 짜증 나거나. 당신은 어느 쪽인가? 나는 전자에 가깝다. 아이가 셋이었던 나의 어린 시절에 엄마는 분주했다. 내가 목 놓아 울었다 한들, 그때의 그 마음을 충분히 다독여주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딱히 울고 불며 서러웠던 어린 시절의 선명한 기억이 없음에도, 어렴풋이 어린 시절을 그려보면 어떤 서글픔 같은 것이 있다. 아이 엄마 역시 두 명의 꼬맹이가 더 있다. 울고 있는 아이는 둘째로 보인다. 유치원생은 되어 보이는 첫째와 세 살배기쯤 되어 보이는 쪼꼬미가 엄마 주위를 맴돌고 있다.
길 건너편 2층에 앉아있는 나는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엄마는 아이를 안아주면서 뭐라고 말하는 것 같았는데 들리지는 않는다. 아이의 울음은 잦아드는 듯 보였지만 여전히 훌쩍거리고 있다. 세 살배기 쪼꼬미를 안고 엄마가 횡단보도를 건너자고 손짓을 한다. 신호등이 없는 짧은 바닷가 앞 횡단보도다. 큰 아이가 앞으로 뛰고 엄마는 쪼꼬미를 안고 뒤를 돌아 둘째를 바라본다. 울고 있던 둘째는 울면서도 오른손을 번쩍 들고 하얀 줄무늬 횡단보도를 건넌다. 무의식 중에 손을 올리며 건너는 모습에 빙그레 웃음이 났다.
아이들이 나란히 오른손을 들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모습은 언제 봐도 미소 짓게 된다. 이런 장면은 우리나라에서만 연출되는 풍경은 아니겠지? 세상 저편 어딘가에는 '손들기'말고도 그 나라 아이들만이 지키는 사랑스러운 안전 신호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본다. 문득, 아이들은 어느 나이 즈음에 신호등에서 손 올리기를 그만두게 되나 생각해본다. 8살일까? 9살일까? 나는 언제였을까? 언젠가부터 신호등을 건너는 아이들을 유심히 살핀다. 가방을 둘러매거나 혹은 캐리어 끌 듯 (요즘은 캐리어 가방이 대세다!) 끌고 가는 초등학생들은 어른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손을 들지 않을뿐더러 오른쪽, 왼쪽도 살피지 않는다. 핸드폰과 물아일체인 경우가 제법 된다. 설마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학교에서 '이제부터는 신호등 건널 때 손 들지 않아도 돼요'라고 가르치는 것은 아니겠지?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해 본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그 짧은 시간만에, 아이는 울음을 그친 듯했다. 아이들의 경쾌한 걸음에 시선을 따라가 보니, 세 사람은 아니 쪼꼬미까지 포함한 네 사람은 편의점을 향하고 있다. 엄마는 특단의 조치를 취한 것이다. 둘째를 살펴보니 누구보다 활기차게 편의점 문을 열고 뛰어 들어간다. 조금 전에 울었다는 건 기억조차 못하는 듯, 뒷모습이 늠름하기까지 하다. 그 모습에 또 빙그레 웃었다. 사탕이었을까? 아이스크림? 혹은 초콜릿? 상상을 하는 중에 뭔가를 들고 나오는 아이들의 모습. 표정에 '나 신났어요'를 장착하고 있는 둘째. 녀석은 아이스크림을 쥐고 있다. 역시 아이스크림이지..
내가 울고 있을 때도, 누군가 아이스크림을 쥐어주면 금세 행복해지면 좋겠다. 그렇게 쉽게 울고, 쉽게 웃고, 쉽게 행복해지면 좋겠다. 순간순간 내게 오는 슬픔, 우울, 화, 기쁨, 두려움, 불안, 행복 등 다양한 색깔의 감정들을 모른척하거나 아닌 척하지 말고, 아이들처럼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서 내게 주어진 매 순간의 감정을 만끽하고 싶다. 다만, 이제 편의점 아이스크림으로는 행복이 좀 더디올 것 같다. 순식간에 나를 행복하게 하는 방법을 공유하니 참고하시라. 인터넷으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삼십일 브랜드를 검색하고, 그중에 '베리베리스트로베리'를 사서 쥐어주면 된다. 뭐 그냥 참고만 하시라고요. ㅎㅎㅎ
당신을 순식간에 행복하게 하는 작은 것을 찾아낸 후에,
공공연하게 주위에 말하고 다니기를. 그렇게 내 주위 사람들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기회를 주기를. 단, '작은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말기를. '에르메스' 같은 거 이야기하지 말자. 우리 그러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