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은 1인분이 아닌 1.5인분의 삶을 살아간다. 자신의 삶과 더불어 사랑하는 또는 미워하는 이의 삶을 무의식적으로 안고 사는 것이다. 한 생을 그리 살기도 하고, 인생의 어느 시기동안 그와 포개진 상태로 살아가기도 한다. 그녀는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1.5명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소중한 사람을 잃어본 적이 없는 나는 그녀와 함께 했던 1박 2일동안 기분이 묘했다. 이 세상을 떠난 이와 동행한 여행이랄까.
"우리 엄마, 호박잎 좋아하잖아" "우리 엄마, 노래 정말 잘하는데.." 그녀는 엄마를 호칭할 때, 꼭 '우리'라는 수식어를 붙힌다. 나는 '우리'라는 단어에 궁금증이 돋아났다. '우리'는 여러 사람을 지칭할 때 쓰는 표현이 아닌가? 이것도 어느 지방에서만 쓰이는 사투리 같은 것일까? 어린 시절, 부산에서 이사왔던 꼭대기집 여자아이도 늘 그렇게 말했다. '우리 동생, 우리 엄마' 그때도 우리 동생이라는 말이 어색했다. 내 동생이 맞는 말 아닌가? 아마도 그녀에게 '우리'는 그녀만의 의미를 지니는 듯 하다. 엄마가 어디로 가버릴까봐 엄마 손을 꼭 잡고 있는 어린아이처럼, 그녀의 '우리'는 소중한 존재와의 연결감을 뜻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한 존재에게 '엄마'는 어느 정도까지 스며들어 있는가. 요즘 '박준'이란 개그맨이 자신의 이름 '준'과 '스며들다'의 합성어, '준며들다'라는 말을 크게 유행시켰다. '스며들다'에 가장 적합한 관계가 엄마와 자식 간의 관계가 아닌가 싶다. '박준'의 유행어에 비추어 보자면 '엄며들다'가 된다. 엄마는 자식의 뼈와 살에 오롯이 스며들어, 그녀가 떠난 후에도 자식과 함께 살아숨쉬는 것일까?
어머니의 49재가 지나고 마음을 잡지 못하던 그녀에게 여행을 제안했던 건 나였다. 젖은 솜뭉치처럼 느릿하게 일상을 버텨나가고 있는 그녀에게 기분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었다. 다행히 여행을 하는 동안 그녀는 자주 웃었다. 우리는 홍대에서 연남, 상수, 망원동을 쏘다니며 오후 2시부터 밤 10시까지 걸었다. 구경이라기보단 이야기 걷기에 가까웠다. 먹고 마시면서도 대화한 것으로 치자면, 그녀는 4시간, 나는 4시간을 떠들어댔다. 말하다보면 슬픔이 지워지기라도 하듯이 '우리'는 멈추지 않고 대화를 이어나갔다. 길을 걷는 중, 그녀는 울컥하고 멈춰버리기도 했다. '내가 이렇게 편하게 웃고 있어도 되나 싶어' '이렇게 순식간에 우리 엄마 생각이 안 나는구나' '살아있는 사람은 그냥 이렇게 사는구나...' 분홍빛 구슬이 슬픈 소리를 내며 그녀의 가슴에서 또르르 굴러다니는 듯 했다.
그녀는 엄마의 인생이 안쓰럽고 슬펐는데, 엄마 친구들과 이모는 다르게 생각했다.
“엄마가 떠난 후에, 놀란 게 하나 있어. 엄마 친구들과 이모가 엄마에 대해서 하는 말이었어. 내게는 안쓰러운 엄마였는데 그분들은 다르게 말했어.” “야야.. 니 엄마는 그래도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았다야. 원없이 살았다 아이가..” 처음에는 그 말이 기가 막혔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알아지더라고. '아.. 나는 우리 '엄마'라는 부분만 보았구나.. 엄마의 전체 삶을 '안쓰러운 엄마'라는 안경을 쓰고 바라봐서 이렇게 가슴이 쓰라렸구나' 엄마의 사진첩을 정리하는데, 여행 사진이 많았던 것도 놀라웠다고 했다. 이렇게 환하게 웃는 순간이 많으셨구나. '아... 엄마는 이 생이 재미있었구나' 말꼬리에 눈물이 방울방울 매달려 있었다.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떠난 이를 기억한다. 그러다보니 그녀가 기억하는 엄마와 실제 엄마의 인생은 달랐을 수 있다.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는 온전히 내가 어떤 안경을 쓰고 떠난 이를 바라볼 것인가에 달려있는 것이다. 몸 떠난 김문숙여사와 함께 했던 여행. 나의 동행이 무거운 봇짐을 메고 걷던 그녀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었다면 그것으로 되었다. 어느만큼 시간이 흐른 뒤 그녀가 '안쓰럽고 애틋한 김문숙여사'를 온전히 내려놓을수 있기를 바래본다. 이왕이면 '이 생을 즐겁게 살았던 김문숙여사'로 오래 기억하기를 빌어본다.
슬픔을 지워나갔던 우리의 여행은 저물어가고 있다. 그녀와 나, '우리'의 사랑이 짙어진만큼 슬픔은 희미해졌으리라. 시든 화분같던 그녀가 물을 준 화분처럼 활짝 웃어보인다. 내 가슴에도 따스한 사랑이 피어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