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틈이 성글게

by 사과이모



제주 돌담은 촘촘하기보다 성글다. 바람을 막기 위해 완벽하게 틈 없이 쌓아올렸다한들 비바람 불면 와르르. 바람이 지나가는 틈을 주어야 무너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낸 옛 어르신들의 지혜에 감탄하게 된다.


문득, 예전 직장동료 S 샘이 떠오른다. 남녀노소 누구와도 잘 지내고 일을 잘하는 편인데도 주변 선생님들에게 시샘을 받기보다 응원을 받는 분이셨다. 다른 부서 직원들과도 소통이 잘 되어서 외부와 소통이 필요할 때, 모두들 S샘을 찾았다. 말 그대로, 사회생활을 잘하는 비법이 장착된 케이스. 나는 그분의 비법이 늘 궁금했다. 그러던 중, S샘은 다른 곳으로 이직을 하게 되어 떠나게 되었다. 가깝게 지냈고, 소통이 잘 되던 선생님과 헤어짐이 아쉬웠다. 마지막으로 떠나기 전 나눔을 하면서 3여 년 기간 동안 궁금했던 그의 비법을 물어보았다.


'선생님, 떠나기 전 남겨진 저에게 사회생활 비법을 좀 방출해주세요'


'아 무슨 소리, 선생님 지금 하시던 데로만 하면 됩니다. 일도 잘하시고 뭐.. 다 좋으신데요'


'그런 이야기 듣자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가기 전 제가 유념해야 할 것들을 말해주소서'


'음.. 선생님은 일을 잘하니까 일적으로 크게 욕? 할 거리가 없는데요... 사실 그게 함정이에요. 직장이란 곳이 결국 사람들이 함께 하는 공간이잖아요. 사람들이 직장에서 뭐 그렇게 모두 다 미치도록 완벽하게 일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사람들은 결국 인간적인 면에 끌리기 마련이지요. 말 그대로 자기보다 일 잘하는 사람보다 (설령 일을 잘하더라도) 뭔가 틈이 있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안전하다고 느끼는 거지요. 빈틈없이 해내는 사람, 일적으로 뭐 좋지요. 근데 그런 사람은 사람들에게 긴장감을 줘요. 뭐야 나보다 더 잘 나갈 거 같잖아. 이 의미가 결코 일을 잘하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내가 할 일은 잘해야죠. 하지만 가끔은 '틈'을 보여줘야 한다는 겁니다. 저는 가끔씩 의도적으로 대놓고 '구멍'의 모습을 보여주거든요. 완전 모두가 입을 모아 비웃거나 놀릴 수 있는 작은 사고를 치는 거죠. 뭐 회식 때일 수도 있고, 나의 메인 업무가 아닌 약간의 사이드 업무에서 일 수도 있고요. 중요한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아, 이 사람도 인간적이네.. 이 사람 일 잘하는 줄 알았는데 실수도 하잖아?라는 생각이 들면서 친근감을 느끼도록 한다는데 있어요. 선생님은 일 잘하고 성품도 좋으신데 뭐랄까, 너무 완벽하려고 하니까 좀 거리감이 느껴진달까요..


선생님의 말이 맞았다. 나는 일을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편이었다. 이 말이 내가 일을 완벽하게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완벽하게 하려고 한다' 와 '완벽하다'는 매우 다른 의미이다.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생각은 팽팽한 긴장감을 유발한다. 평소에는 그 정도는 아닌데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곳에서는 실수하기 싫어서 바짝 긴장을 하고 지냈다. 내 실수에 너그럽지 못했고, 나의 부족한 모습이 상대에게 보이는 것에 대해 지나친 저항감이 있었다. 그만큼 상대의 실수도 잘 허용하지 못했다. 말 그대로 바람이 지날 구멍이 없었다. 마음이 오갈 틈이 없었다.


선생님은 '틈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다가가기가 쉬웠다. 자신의 업무를 책임감 있게 잘 처리하면서도 새로운 업무가 주어졌을 때, 혼자 할 수 있다고 큰소리치고 전전긍긍하지 않았다. " 저는 그 업무 혼자서는 잘 못하겠는데 다른 인원 투입 시켜주세요" 라는 말을 쉽게 내뱉었고, 주변의 도움을 받아 결국 그 일을 잘 해냈다. 선생님을 보며 틈이 있는 사람은 인간적이기도 하지만 자존감도 높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틈을 인정하는 사람. 그 틈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다. 수많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흐르고 흘렀다.


그동안 외롭게 쌓아 올린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라는 마음의 벽을 내려놓아본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누구나 실수하며 살아간다. "저 도움이 필요해요. 저 힘들어요" 라고 스스로의 상태를 인정하고,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드러내는 것. 그리고 도움을 받는 것. 그때 관계가 더 깊어진다. 그때 비로소 진짜 사람과 사람이 만나 지고, 이야기가 시작된다.


틈 있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그 틈으로 사람과 사람이 오가고, 마음과 마음이 오갔으면 좋겠다. 그렇게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 틈틈이 마음을 주고받으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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