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와 법정스님과 사과이모 이야기

by 사과이모


나의 유년시절부터 이십 대까지 내 인생에 가장 영향을 끼친 두 사람이 있었으니, 부모님도 아니고 선생님도 아닌 '어린왕자'와 '법정스님'이었다. 다시 말해, 나는 어린 '어린왕자'와 나이 든 '법정스님' 의 양손을 잡고 서성이며 성장한 셈이다. 어린왕자의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 해'라는 문장은 내 인생의 북극성처럼 유년기부터 지금까지 손잡고 걸어가는 문장이다. '법정스님'은 유년기를 막 지나가는 길목에, 문득 내 삶에 들어왔다. '삶은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라는 그의 문장은 내게 풀어야 할 숙제처럼, 잊을 만하면 묵직하게 내 안을 지나가는 문장이다. 이미 몸 떠난 그분의 삶의 흔적을 좇아 책을 읽고, 길상사를 찾아가며 숙제를 마치는 날을 기다리며 20대가 지나갔다.


스무 살 무렵의 옛 친구와 십여 년이 지난 어느 날, 문득 연락이 닿았다. 내 메일 주소가 남겨져 있었다고 했다. 반가운 마음에 답장을 했다. '너는 어떻게 지내니. 나는 어린왕자의 비밀을 어렴풋이 찾은 것 같아'라고 보냈더니 반짝이는 답장이 도착했다. 그 시절, 내가 써준 손편지 속 어린왕자 이야기가 사는 동안 나침판이 되었다는 말, 그런데 아직도 그러고? 있는 게 신기하고 한편으로 고맙기도 하다고 했다. 아직 그러고 있다는 것은 칭찬도 뭣도 아니지만.. 나는 여전히 어린왕자와 손을 잡고 커가는 어른 아이인 내가 좋다.


지난 가을, 법정스님의 흔적을 찾아 길상사에 다녀왔다. 고즈넉하게 거닐 수 있는 풍경. '맑고 향기롭게 살기'라고 힘차게 써 있는 친필을 보니 성성한 그의 음성이 들리는 듯했다. 스스로를 비워내며 우주의 바닥 같은 것을 들여다보던 그를 다시 마주한 듯한 묘한 시간이었다. 나는 아마도 법정스님과 노년까지도 손잡고 걸어갈 듯하다.


인생의 재미는 이런 데 있는데, 법정스님이 어린왕자를 정말 정말 좋아하셨다는 것이다. 나는 한참 후에야 그걸 알았다. 1971년 그가 쓴 '어린왕자에게 보내는 편지'에 어린왕자에 대한 사랑이 가득 담겨있는 걸 보고 얼마나 놀랐던지! 그는 만일 인생에서 두 권의 책을 골라야 한다면 '화엄경'과 '어린왕자'를 고를 것이라며, 아름답고 착하고 어딘지 조금은 슬퍼 보이는 어린왕자에게 자신의 사랑을 남김없이 써 내려가고 있었다. 법정스님은 내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부터 어린왕자와 마음을 주고받으며 절에서 고독한 시간을 절절하게 보내신 것이다! 반갑고 놀랍고 재미있는 우연. 괜히 나 혼자 신나서 박수까지 치게 되는 작은 우연.


그리하여 나는 어린왕자와 법정스님과 어린왕자를 사랑하는 법정스님까지 모두 애정하게 된 것이다. 문득, 어린왕자, 법정스님, 어린왕자를 사랑하는 법정스님과 이 모든 것을 사랑하는 사과이모를 애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삶의 진리에 대해 각자의 질문을 품고 사유해나가는 그들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좋겠다는 것이다. 만일 그런 사람이 있다면, 사는 게 넉넉하고 든든할 것 같다. 그렇게 몇 명쯤은 더 손잡고 이 생을 걸어가 보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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