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방에 살다 보니 명절이나 기념일에 부모님을 뵙는 게 전부였다. 부모님은 한해 한해 나이 들어가셨고, 부모님의 나이 듦을 느끼기엔 함께하는 시간이 짧았다. 얼마 전, 엄마의 칠순 기념 여행을 함께하게 되었다. 부모님을 모시고 효도관광 비슷하게 가게 된 것이다. 여행이란 일상에서 해야 하는 자질구레한 일들을 내려놓고, 24시간 무방비상태로 함께 생활하는 것이다.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하고, 걷고, 쉬고, 잠들고... 이번 여행은 올곧이 두 존재에 대한 관찰로 채워졌다. 평소 보지 못했던 것들이 가슴으로 보이고 들려졌던 시간이었다.
아빠는 귀가 어두워지셨다. 엄마에게 여러 번 전해 듣기는 했지만 나이 들면 그러실 수 있지, 하고 한 귀로 듣고 흘리곤 했다. 누군가 불러도 듣지 못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나 자신이 그러하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쉬울까. 네가 더 큰소리로 불렀어야 했다고 탓하고 싶은 마음이 짐작되어서 속상했다. 엄마는 최근 지병으로 인해 눈이 급격히 어두워지셨다. 작은 글씨를 못 읽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빛 번짐이 불편해서 실내에서 형광등을 켤 수 없다. 어딘지 침침한 실내의 불빛은 그녀의 눈은 편안하게 하지만 마음은 칙칙하게 만드는 듯했다. "엄마, 어떻게 보이는데? 까만 점으로 보여? "나는 엄마의 증상을 어떻게든 이해해보고 싶다는 듯 물었다. "그게 지렁이가 기어가는 것처럼 보여. 흔들흔들거려. 그래서 아예 보려고 시도도 하지 않는 거야" 딱히 어떻게 대꾸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머뭇거렸다. 안경을 끼지 않은 채 바라보는 뿌연 세상과 비슷한 느낌일까. 매일이 그렇다면 얼마나 멀미 나고 답답할까.
함께 했던 여행은 부모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여행이었다. 어느 부분이 어떻게 무너져가는지 바라보는 여행이라는 점에서 아팠다. 한편으로, 더 늦기 전에 그들의 마음을 헤아려볼 수 있어서 따뜻하고 뭉클했다. 여행의 마지막 날, 오후 산책을 하면서 가만히 두 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뒷모습이란 게 참 묘하다. 직접 눈앞에서 보는 것도 아니고, 옆으로 힐끗 보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의 뒷모습을 본다는 건, 아무도 보지 않는 한 존재의 보이지 않는 영역을 바라본다는 뜻이다. 뒷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면 사랑이 시작된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뒷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니 이제껏 만난 적 없는 그들의 세월이 전해진다. 풀잎 시인, 나태주 시인의 말을 빌자면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자세히 보니 더 깊이 사랑하게 된다. 자세히 보니 보인다. 아빠의 어깨는 이전보다 굽었고, 한쪽으로 기울어져있다. 나보다 키가 컸던 엄마는 어쩐지 자그맣고 가냘픈 소녀 같다.
몸이 스러져간다. 살아있음을 대표하는 눈과 귀가 어두워진다. 그렇다고 마음까지 스러져가는 것은 아니리라. 서로 안쓰러워하는 마음으로 상대에게 불 밝혀주는 그들의 모습에서 오래되고 은은한 사랑을 본다.
70대 노부부는 서로의 눈과 귀가 되어주며, 서로의 등을 쓰다듬으며 함께 걷고 있다. 사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