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듯 도시를 떠나 이곳 제주에 왔다.'라고 시작하면 뭔가 있어 보이고 궁금해질 것 같아 이런 문장으로 시작하고 싶지만 딱히 도망치듯 안 왔기 때문에 제주살이에 대한 대단한 스토리는 없다. 오히려 좀 평범함에 가까운 결정이었다. 시작은 지인들에게 '제주살이 한번 해보려고..'로 시작되었고, 몇몇 지인들에 부러움에 찬 시선을 받았고, 어느 순간 그들은 내가 정말 가는 줄로 알고 언제 가냐, 나는 언제 들르면 되냐, 하고 물어오곤 했다. 그러다 보니 대충 계절은 봄이 좋겠지? 하다가 5월엔 덥나? 하다 보니 4월... 이런 식으로 기정사실화 되어버리고, 어느 순간 눈떠보니 제주도의 어느 바닷가 앞 오래된 주택이다. 창을 열면 하와이에서나 볼법한 야자 나무가(나는 이 나무를 파인애플 나무라고 부른다) 약간 머리가 조용히 어떻게 되어버린 꽃단 언니처럼 미친 듯 바람에 춤추고, 그 건너편이 바로 망망대해. 파도소리가 24시간 제공된다.
아무튼 나는 오래도록 질척거리며 지내던 내가 살던 도시, 내가 살던 집을 떠나 이곳 제주에 왔다. 제주살이 4일 차..
내가 살던 공간을 떠나봐야 비로소 그 공간에 대해 말할 수 있다. 그 공간 안에 있을 때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를 먼발치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 공간과 하나로 뒤엉켜서 뒹굴고 있을 때는 전혀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비로소 그 공간과 그 도시가 나에게 어떤 의미이며, 왜 그곳이어야 했는지, 혹은 왜 이제는 그곳이 아니어도 되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게 된다. 그곳을 떠나봐야 그곳을 제대로 느끼고 음미하고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혹은 진정 떠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비단 공간만 그러한가. 사람도 그러하다. 함께 있을 때는 혹은 하나일 때는 결코 볼 수 없는 것들이 멀어지고 공간이 생기고 이별에 가까워지면서 더 선명해진다. 함께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였는지, 왜 그여야 했는지, 혹은 왜 이제는 그가 아니어도 되는지를. 슬프지만 때론 떠난 후에야 사랑이 시작되기도 한다. 비로소 진짜 사랑 이야기가 시작되기도 한다는 말이다.
파리를 충분히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파리를 떠난 후에야 알게 된 헤밍웨이처럼. 우리는 지금 내 곁에 공간, 사물, 사람들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한다. 안다고 생각할 뿐.
그래서 가끔은 이런 떠남이 필요한 것이다.
공간을 두고 지그시 바라보며
다시
더
깊이
사랑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