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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포드 Oct 16. 2024

초대받지 않은 절친들

"저어 내가 곧 자대복귀를 해야 하거든?"


"그래서 말인데 네가 내 대학원서 좀 대신 써줬으면 해서..."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당시 군복무 중이었던 친구의 목소리였다.

당시는 2000년대 초반 즈음으로 지금과는 달리 대학원서를 접수하려면 발품을 팔아 해당 대학원서가 있는 서점을 찾아다녀야 했고 그렇게 사온 원서가 요구하는 여러 가지 골치 아픈 항목들을 수기로 작성한 후 직접 지원 대학까지 방문해 접수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다시 말해 누군가의 원서를 대신 써준다는 일은 기본적으로 굉장히 번거롭고 거기에 책임까지 짊어져야 하는 피곤한  일인 것이다. 결국 나는 부탁을 거절했고 그 친구는 의리를 운운하며 서운해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여기까지 보자면 나는 냉혈한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된 이유는 그 친구와 내가 느끼는 관계의 깊이가 서로 일치하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그와 나는 같은 동네에 살았고 같은 학교를 다녔으며 같은 학원을 다니기도 했다.

표면적으로 보면 두 사람은 꽤 밀접해 보이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표면적인 요소일 뿐이었다.

분명 두 사람 사이에는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 시간 속에 딱히 각별한 역사는 새겨진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그를 나의 행동반경에서 자주 마주치게 되는 낯익은 친구쯤으로 생각했으며 그 이상의 호감은 느낀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나와 성향도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고 종종 주변을 당황스럽게 만드는 기행을 하기도 하는 괴짜 같은 면이 불편하게 느껴졌던 탓이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별다른 내용 없이 백지처럼 흘러간 시간들을 고스란히 관계의 깊이로 환산해 내고 불쑥불쑥 연락해 가당치 않은 묵직한 부탁을 서슴없이 던지곤 했다. 


원서를 써달라는 부탁 또한 그중 하나였지만 거듭되는 나의 거절과 살갑지 않은 태도에 실망을 느꼈는지 연락의 끈이 점점 가늘어지다 언젠가부터는 연락하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나는 관계가 시작된다는 것은 마치 2인3각 달리기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서로의 다리를 한쪽씩 묶는 순간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기 시작한다는 뜻이고 그 이후에 두 사람이 서로 마음을 맞춰야 비로소 한걸음 나아갈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재미있게도 세상에는 서로 다리를 묶은 적도 없는데 혼자서 신나게 달려가서는 골인을 말하는 사람들

이 있다. 혼자만의 기준으로 섣불리 누군가를 절친의 카테고리에 넣고 상대방도 그렇게 똑같이 여겨주기를 기대하는 이들 말이다.


이들은 보통 관계의 깊이를 질 보다는 양으로 계산하곤 한다.


사람이 서로를 알아가고 친해지기 위해서는 물론 시간(양)이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서로 안면을 트고 시간만 흐른다고 해서 친밀도가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그 시간 안에 두 사람이 함께 나눈 정서와 역사(질)가 얼마나 밀도 있게 기록되었는지에 따라 우정의 정도가 결정된다고 본다.


두 손바닥이 똑바로 마주치지 않으면 소리는 발생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 이후로도 자신만의 기준으로 혼자서 친해지는 재주가 있는 사람을 몇인가 더 만나게 되고 세상에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그들이 멋대로 설정한 친밀함에 부합하는 어떤 보상을 상대로부터 받고자 한다는 점이다. 이점이 바로 커다란 관계의 오해가 드러나는 가장 큰 포인트이며 곧 관계를 끊고 싶게 만드는 피로감의 발생지이기도 하다.


그것은 아마도 내 앞에 놓인 딸기 케이크 위에 올라간 탐스러운 딸기를 주고 싶었던 생각이 추호도 없던 누군가가 다가와 먹어도 되겠느냐며 포크를 들이대는 상황의 당혹스러움에 비유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만약 정말 다른 사심 없이 누군가와 깊이 있는 관계를 맺고 싶다면 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는 얼마만큼의 행동을 허락받고 있는 상태인지에 대해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


그리고 의리를 주고받으려고 하지 말고 바람에 날아갈 듯 소소하고 쓸데없는 대화를 주고받았으면 한다.


그러면 어느새 흐르는 시간 속에 두 사람의 역사가 쓰이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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