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를 들으며
어릴 때 음악으로 기억에 남은 영화가 있습니다.
‘냉정과 열정 사이’.
당시에는 제목도 내용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History’라는 OST만은 20년이 지나도 기억에 남습니다.
주말에 영화를 다시 보았습니다.
이제야 제목이 왜 그렇게 붙었는지 알 것 같습니다.
그리고 ‘History’를 들으면 생각이 멈춥니다.
잊은 줄 알았던 시간들이 먼저 떠오릅니다.
영화는 사랑이 식어서가 아니라,
삶이 감정을 앞서기 시작할 때
사람이 어떻게 망설이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30대 중반의 제 감정을 다시 꺼내 보게 됐습니다.
30대 중반에 들어서서
연애라는 감정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30대 초의 제 감정은 분명 더 뜨거웠습니다.
마음이 움직이면 몸도 따라갔고,
퇴근 후에도 사람을 만날 힘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30대 중반의 저는 감정이 앞서기 전에
하루의 피로가 먼저 자리를 잡았습니다.
마음이 불타오르기보다는,
삶을 버티는 쪽에 가까운 날들이 많아졌습니다.
그 당시에는
사람이 좋으면 맞추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지금은 맞추는 일보다 먼저,
내 생활을 지키는 일이 앞에 서 있습니다.
마음이 선뜻 생기지 않는 날도 있고,
마음이 생긴다 해도 그 마음이
누군가에게 부담이 되지 않을지 먼저 살피게 됩니다.
좋아한다는 감정이 곧바로 용기가 되지 않고,
책임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어느 순간 사람에게 상처를 받고,
일에 치이며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렇게 30대 중반에 와 있습니다.
37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연애는 쉬운 감정이 아니라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감정이 빠르게 생기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누군가를 본다고 바로 사랑에 빠지지도,
두근거림이 즉시 찾아오지도 않았습니다.
천천히 스며드는 시간이 필요했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야
‘아, 이게 좋아하는 마음이구나’
하고 뒤늦게 알아차리는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을 만나지 않았습니다.
늘 이해가 먼저였고, 감정은 나중에 따라왔습니다.
변명일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상처받지 않으려는 습관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별의 아픔이 크게 남았던 것도,
익숙해진 감정이 아니었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어느 책에서,
사람의 미각은 단맛이나 짠맛엔 무뎌질 수 있지만
매운맛은 조금 다르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매운맛은 통각에 가까워서 사라지기보다,
익숙해지는 쪽에 가깝다고요.
익숙해진다는 건 무뎌진다는 뜻이 아니라,
아픔을 알고도 다시 손을 뻗는 법을 배우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사랑과 이별을 더 자주 접했다면,
아픔에 익숙해졌을까요?
지금처럼 허송세월을 덜 보냈을까요?
작은 후회의 생각들이 남습니다.
이제는 이름도 흐릿해진 지나간 인연들
기억은 남지 않는데, 마음이 아렸던 감각을
다시 돌이켜 보면 그 감각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2025년을 돌아보면, 퇴근하고 지친 몸으로도
모임에 나갔어야 했던 걸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별 이후의 공허함을 일이라는 핑계로
메우려 했던 건 아닐까, 뒤늦게 반성도 합니다.
잊을 수 있어서 편한 날들이 있었지만,
그만큼 시간은 더 빨리 지나갔습니다.
해외출장과 일, 취미 속에서
사람을 잊고 사는 동안,
어느새 2025년 12월이 되어 있습니다.
사람을 천천히 알아가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시간이 느린 마음조차 사치라고 재촉합니다.
선택지는 줄어들고, 주변의 시선은 방향과 결정을 재촉합니다.
무엇보다 내 안에서는 방어가 습관이 되어,
마음이 생기기 전에 먼저 거리를 계산해 버립니다.
참 야속합니다. 시간이든, 사람들의 속도든,
그리고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제 자신이 든요.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면,
서로를 사랑했던 이들은 결국 다시 만나
해피엔딩으로 기분 좋은 결말을 맞았습니다.
저는 아직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했지만,
언젠가 누군가의 이해 속에서 이 방황도 끝나길
조용히 기도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