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나시에서 묻다.

끝내고 싶은 다음 생(生)과 뒤처지고 싶지 않은 이번 생(生) 사이에서

by 류이현


뜻밖의 기회로 인도에 두 달간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다른 출장자들이 숙소에 머무는 동안, 모험을 좋아하는 저는 인도의 주요 도시들을 다녔습니다.


인도는 생각보다 훨씬 넓었습니다.
중심 도시 하이데라바드에서 수도 델리까지 비행기로 세 시간.

스페인에서 독일까지의 비행, 두시간과 견주어 보면,

인도가 얼마나 넓은지 조금은 이해되지 않을까요?



바라나시의 첫인상


“바라나시를 다녀오지 않으면 인도를 본 게 아니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어디이기에 그럴까 궁금해, 저는 바라나시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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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나시의 첫인상은 한마디로 뜨거움이었습니다.
거대한 갠지스강에서 올라오는 습기, 빽빽한 인파, 하루 종일 이어지는 경적, 매연의 냄새.
네 가지 감각이 한꺼번에 밀려오자, 잠깐 이런 생각이 스쳤습니다.


‘나는 왜 여기에 왔을까?’




의식과 공간의 층


바라나시는 오랜 믿음으로 쌓인 도시입니다.
“윤회를 끊으려면, 죽어 갠지스강으로 흘러들어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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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의 가트에서는 밤낮으로 장작이 타고, 향 냄새가 바람을 타고 골목을 지납니다.

순례자 숙소에는 먼 길을 온 이들이 숨을 고르고, 수도승들은 조용히 기도를 올립니다.

좁은 골목을 오가다 보면 삶의 동선과 죽음의 동선이 한 도시 안에서 교차됨을 느낍니다.


가트(ঘাট): [강가와 맞닿아 있는 계단이나 비탈면]이란 뜻으로 이곳에서는 목욕, 빨래, 종교 의식, 참례, 시신 화장 등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지는 공간입니다.



두려움의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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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에서 만난 이들과의 대화는 오래 남았습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두려움의 방향이었습니다.

그들은 ‘다시 태어날까 봐’ 끝나지 않는 윤회가 두려워 이곳을 찾습니다.

더 나은 다음 생을 바라기보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를 바라며 마지막 의식을 준비합니다.


반면 나의 두려움은 전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성과, 재정, 연애, 부모의 건강' 같은 이번 생의 줄기줄기들.
그들의 눈앞에는 ‘끝내고 싶은 다음 생(生)’이 서 있고,

내 눈앞에는 ‘뒤처지고 싶지 않은 이번 생(生)’이 서 있습니다.

같은 하늘 아래인데 우리가 두려워하는 시간의 방향은 달랐습니다.

나는 왜 여기까지 왔을까라는 질문이 다시 고개를 듭니다.

[그들에게 실패는 ‘돌아옴’이었고, 나에게 실패는 ‘뒤처짐’이었다.]




새벽의 병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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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강은 낮과는 다른 얼굴을 합니다.
일출 아래 갠지스강은 큰 숨을 쉬듯 고요하게 흘러갑니다.

저편 가트에선 장례의 연기와 향 냄새가 옅게 번지고, 가까운 물가에선 빨래 방망이 소리가 아침을 알립니다. 어떤 이는 합장하고, 강물에는 운구가 지나가며, 옆에서 아이들은 웃으며 물장구를 칩니다.

기도와 웃음, 작별과 오늘이 한 장면 안에서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공존합니다.


이 평온함은 어딘가 막막했습니다.
이곳의 사람들은 ‘다음 생’의 사다리를 끊기 위해 오늘을 견디고,

나는 ‘이번 생’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오늘을 버팁니다.

그들에게 평온은 돌아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의 정적,

나에게 평온은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잠시 내려놓는 안도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새벽의 물결을 보며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내 불안은 정말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경계일까, 아니면 끝나지 않는 경쟁을 정당화하는 소음일까.


[이곳의 평온은 저 너머를 통과한 뒤의 고요였고,

나의 평온은 아직 저 너머를 외면한 자의 바람이었을지 모릅니다.]




새벽이 알려주는 것


고요한 일출 아래에서, 저는 전부 이해할 수는 없지만 조금은 깨닫습니다.
이곳의 평온은 문제의 부재가 아니라 두려움에 이름을 붙인 뒤 남는 침묵이라는 것을.
그리고 내 삶의 소란은 문제의 과잉이 아니라 두려움을 외면한 채 쌓아 올린 목록이었다는 것을.

그곳에서 저는, 내가 붙들고 있던 많은 걱정이 어쩌면 아주 가벼운 것일지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부처가 이 땅에서 가르침을 전하기 시작했다는 말을 떠올리며, 문득 이해가 스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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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이 이웃한 자리에서 사람들은 오늘 하루를 다시 시작합니다.
바라나시는 고민 많은 이에게 때로 깊은 질문을 건네는 곳입니다.


지금이 충분히 행복하다면, 이곳의 여행은 선택이 아닐 겁니다.

고민이 많을 때라면, 이곳의 새벽이 조용한 대답이 되어 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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