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폴 고갱입니다. 반 고흐 이야기는 그만!

메트로폴리탄, 폴 고갱의 낮잠

by SUN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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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잠 The Siesta

폴 고갱 Paul Gauguin

1892–94

Oil on canvas

88.9 x 116.2 cm


고갱이 타히티 첫 방문 시에 그린 이 작품은 1894년 고갱의 절친한 친구이자 예술가인 조르주 다니엘 드 몽프레에게 넘겨지고 몇 번의 소유주가 바뀌면서 1947년 뉴욕의 미술 딜러사인 빌덴슈타인 앤 코가 사면서 유럽에서 뉴욕으로 넘어오게 된다. 1951년 미국의 미디어 거물인 월터 안네버그와 아내 레오노어 안네버그가 소장한 후 1993년 작품의 소유권을 일부 기증하고 2002년 월터 안넨버그가 사망하면서 그의 유언에 따라 최종적으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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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고갱의 낮잠 Siesta, 1892-94, 폴 고갱 Paul Gauguin,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The Met, 뉴욕


아, 이 그림 너무 좋지 않나? 그냥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그림이다. 작품 제목이 낮잠이니 한 낮 뜨거운 여름날에 더위에 지친 여인들이 그늘에 누워 모두들 편하게 쉬는 모습이리라. 우리 동네 어디선가 봄직한 광경이다. 색감이 너무 좋은데? 그늘 밖 그린 그린한 야외 잔디들과 나무가 얼마나 뜨거운 날씨인지 충분히 보여주고 있고, 마루에 앉고 누워 있는 여인들의 옷 색상들도 과하지 않고 심심하지 않고 좋다. 색감을 참 잘 쓰네. 그림의 정 가운데 여인은 저렇게 과감히 등을 보이며 앉아 있는다고? 그래서 더 상상력이 자극되는데? 그냥 우리 아닐까? 나, 우리 누나, 내 와이프, 언니, 엄마, 이모, 서울 살다가 내려온 우리 이모다. 등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도 마루 이쪽에 그들과 같이 걸터앉아서 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잘 그렸는데? 오른쪽에 백을 들고 온 것을 보아 일하다 온 거 라기보다는 잠깐 들러 쉬는 느낌이다. 꽃무늬 블라우스와 패턴이 있는 스커트가 지금 봐도 세련되어 보인다. 무릎을 덮고 있는 스카프가 블라우스와 한 세트인데? 그것도 재미있다. 등 돌려 앉아 있는 여인 앞으로 핑크색 원피스를 입고 누워 있는 모습이 왜 이렇게 편해 보이니? 그냥 바로 잠들듯 한데? 이 짧은 시간에 옆에서 다림질을 하고 있다고? 참 열심히네. 왼쪽 귀퉁이에 있는 귀에 꽃을 꽂은 여인은 스커트가 가운데 여인과 똑 같잖아? 자매이거나 유행했던 패턴의 스커트인가 보다. 마루 뒤편에 닭과 함께 아직도 소일거리를 하며 앉아 계시는 분까지 놓치지 않았네. 너무 좋다. 이런 일상의 그림들이 이제는 왜 좋아지는 걸까? 요즘 사회가 무탈이 가장 큰 행복이라서 그런 걸까?


이 그림은 고갱이 도시화된 파리를 벗어나 때 묻지 않은 원시적인 낙원을 찾아 방문한 타히티에서 그린 그림들이다. 고갱이 타히티에 처음 도착했을 때 생각보다 문명화되고 도시화되어 있는 모습에 크게 실망하였다고 한다. 그러게, 여성들의 옷이 원시적인 느낌은 전혀 없는데? 아마존 원시 부족 동네에 갔는데 부족원들의 허리에 핸드폰이 다 차 있고, 오후 6시 되니 바로 차 타고 퇴근하더라는 이야기와 비슷한 충격 아니었을까? 그래도 고갱은 이 그림에 엄청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약 2년 동안 계속 계속 수정을 하였다고 한다. 등 돌린 여인의 오른쪽에 놓여 있는 가방은 원래 강아지를 그렸었다고 한다. 가운데 등을 보이고 있는 모델의 치마도 원래는 남색이 아니라 붉은색이었다고 한다. 왼쪽 모서리에 앉아 있는 여인도 더 바깥이었는데 안쪽으로 이동하였고, 모자 또한 한 명 더 씌워졌었는데 지웠다고 한다. 엄청 심혈을 기울이셨네. 이 그림과 결을 같이 하는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그림 하나 더 소개해 보자. 그림도 그림이지만 작품명이 다 했다. 너무 센스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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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제목이 너무나 센스 있는 ‘언제 결혼할 거니?’. 서로 눈을 흘겨보고 있는 것이 킬 포인트이다. 2015년 2월 중동 카타르 왕가에게 약 3억 달러(3,272억여 원)에 팔린 것으로 알려진 작품. Nafea Faa Ipoipo: When Will You Marry?, 1892, Paul Gauguin, Kunstmuseum in Basel, Switzer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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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고갱의 이아 오라나 마리아 Ia Orana Maria (Hail Mary), 1891, 폴 고갱 Paul Gauguin,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The Met,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만나는 고갱의 또 다른 작품이다. 이건 좀 원시적인 느낌이 나네? 누가 봐도 타이티이다. 그런데 왼쪽 아래에 써져 있는 IA ORANA MARIA는 무슨 의미일까? 이아 오라나 Ia Orana는 안녕하세요, 마리아 Maria는 성모 마리아를 뜻한다. 그래서 ‘안녕하세요, 마리아 님’ 정도이다. 우리가 보통 아베 마리아 Ave Maria라고 부르는 말과 같다. 오 나의 성모 마리아 님! 이 그림은 조금 알고 보면 너무나 재미있다. 하와이나 뉴질랜드 가면 폴리네시안이라고 많이 보이는데 이는 기존 각 부족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에 기독교 선교사들이 들어가 만나면서 기독교 스토리를 같이 녹여서 만든 종교를 보통 폴리네시안이라 부른다.


그런 관점에서 이 그림을 보면 먼저 오른쪽 여인의 어깨 위에 있는 아이가 바로 예수님이다. 놀라운데? 그러고 보니 아이의 머리 위에 금색 라인이 보이네. 보통은 금색이 가득 찬 원형 후광으로 표시하는데 고갱식 ‘나 예수님이요’이다. 2개 그려진 것으로 보아 아랫사람도 성인인가 본데? 맞다. 성모 마리아이다.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를 저렇게 표현하다니. 보통 예수님은 흰 천에 싸여서 성모 마리아가 팔에 안고 앉아 있는 모습이 보통인데 타이티에서 아이들을 저렇게 데리고 다니는 모습 그대로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를 표현한 것이다. 우리 일상 속에서 만나는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입니다,라고 메시지 주는 듯하다. 성모 마리아는 파란색 옷인데 여기서는 뜨거운 태양, 에너지의 원천, 강한 생명력인 빨강으로 표현하였다. 꽃무늬 패턴은 타히티에서 손님을 환영할 때 쓰는 티아레 꽃으로 ‘예수님, 환영합니다’이다. 이렇게 까지 신경 써서 고갱이 그림을 그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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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모습으로 서 있는 두 여인은 그럼 동방박사 또는 제자들인가요? 그 여인들 왼쪽에 나무들 사이로 노란 날개와 핑크색 원피스를 입고 있는 여인이 보이는데 등에 날개가 있네? 맞다! 바로 천사이다. ‘예수님이 곧 올 거예요, 벌써 오셨네요’라고 수태고지를 알리는 천사이다. 평범한 타히티의 일상을 그린 그림인 줄 알았는데 이 천사로 인해 이 그림은 타이티식 종교화가 된다. 그림 앞쪽에는 경배를 올리는 과일들이 올려져 있다. 이걸 다 계산하고 그림을 그렸다고? 고갱이? 반 고흐와 맨 날 싸우기만 하고 잘 난 체만 하던 그 고갱이 이렇게 디테일하게 그림을 그렸다고? 이게 바로 여러 상징성을 가지고 그림을 완성해 가는 폴 고갱식 종합주의 Synthetism이다. 대단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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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고갱의 두 타히티 여성들 Two Tahitian Women, 1899, 폴 고갱 Paul Gauguin,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The Met, 뉴욕


이건 또 무슨 상징성이 있는 걸까? 고갱 그림 보기가 두렵다. 에이, 편하게 보자. 타히티의 두 여성이다. 폴 고갱이 원시의 낙원을 찾아 타히티로 갔는데 막상 가 보니 프랑스 식민지로 너무나 많이 도시화되어 있는 모습에 많이 놀랐다고 했는데 그래서 실제로 저렇게 가슴을 드러내고 다니는 여성은 없었다고 한다. 첫 그림 시에스타 Siesta에서 보았듯이 모두들 서구 문명화된 패션으로 다 바뀌어있었다고 한다. 이 그림은? 원시 느낌으로 일부러 모델을 연출한 것이라고 한다. ‘타히티의 이브’라고 부르며 순수함을 표현하였다고 하는데 순수함 보다는 당당해 보이지 않나? 고갱이 그 당시 동양 불교 부조 사진을 참조해서 그렸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조각상 느낌이 강하다. 오른쪽 여인의 한쪽 어깨에 걸친 드레스와 기도하는 모습이 수도승 같은 느낌이고, 왼쪽 여인이 쟁반에 들고 있는 빨간색 망고 꽃은 다산, 생명력의 상징이다. 색감과 표현방법이 확실히 고갱만의 색깔이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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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고갱의 차주전자와 과일이 있는 정물 Still Life with Teapot and Fruit, 1896, 폴 고갱 Paul Gauguin,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The Met, 뉴욕


아니, 이젠 고갱이 정물화까지? 정물화는 세잔 아냐? 맞다. 폴 고갱의 세잔에 대한 오마주이다. 세잔에 대한 리스펙 그림이다. 고갱은 세잔 그림으로부터 다시점으로 바라보는 사물들을 그리는 법을 배우고, 사물을 점, 선이 아닌 면으로 표현하는 방법 등을 배운다. 색채 또한 보이는 대로가 아니라 색에 감정과 상징성을 부여하는 방법을 배운다. 이 모두를 가지고 고갱은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게 아니라 내 머릿속에 재구성하여 표현하는 종합적인 스킬에 다다른다. 고갱은 이러한 세잔을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주식 중개상일 때 세잔 그림을 6점이나 구매한다. 그런 후 경제적 어려움으로 세잔 그림들을 팔게 되는데 마지막까지 팔기 싫어했던 작품이 바로 지금은 뉴욕 모마미술관 MoMA에 있는 폴 세잔의 ‘과일 접시가 있는 정물’이다. 그렇게 좋아라 하던 타히티가 발목을 잡는다. 타히티에서 생활하면서 극심한 빈곤과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병원비 마련을 위해 눈물을 머금고 고갱의 작품을 거래하던 암브루아즈 볼라르에게 이 작품을 넘기고 이후 미국의 억만장자인 데이비드 록펠러 부부가 구매 후 뉴욕의 현대미술관에 기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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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세잔의 과일 접시가 있는 정물 Still Life with Fruit Dish, 1879-80, 폴 고갱 Paul Gauguin,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The Met, 뉴욕


두 작품은 닮은 듯 다르다. 일단 세잔의 사과가 아니라 타히티의 망고이다. 또한 유럽의 이질적인 금속 찻주전자이다. 왼쪽 아래로 기울어진 탁자와 하얀 천은 그냥 세잔 정물화네. 색감은 완전 고갱이다. 참 보색대비 색을 잘 쓴다. 네이비에 노란 꽃이 이쁘다. 그런데 고갱의 정물화 오른쪽 뒤에 사람이 있네? 저건 사람인가, 폴리네시안 정령인가? 정물화에 이렇게 사람이 있는 건 또 흔하지 않은데, 그럼 이건 정물화인가, 인물화인가? 이렇게 또 살짝 비튼다고? 폴 고갱 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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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Gauguin 폴 고갱 1848 - 1903

프랑스 후기 인상주의 Post-Impressionism의 대가, 20세기 표현주의 Expressionism와 상징주의 Symbolism 미술의 대표 화가로 평가받는 폴 고갱은 우리가 잘 아는 빈센트 반 고흐와 함께 살았던 짧은 인연으로, 그의 작품보다는 반 고흐를 힘들게 하였던 인물로 더 유명세를 치르는 화가이다. 원시적인 색감, 선명한 라인, 평면적 색채 사용, 사실과 상상을 접목하여 그리는 종합주의 Synthetism 등 독특한 색채와 실험 미술로 이후 현대미술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앙리 마티스와 파블로 피카소 등도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까지 대단한 사람이라고? 작품 보면서 한 번 가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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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고갱의 설교 후의 환상(천사와 씨름하는 야곱) Vision after the Sermon (Jacob Wrestling with the Angel), 1888, Paul Gauguin,


고갱 작품의 특징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설교 후의 환상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이다. 브르타뉴 전통 의상을 입은 여성들이 설교를 듣고 난 뒤에, 성경에 나오는 천사와 야곱이 서로 씨름하는 것을 상상하는 모습을 그렸다. 일반적인 인상주의는 자연을 직접 보고 그리는 것인데 반해, 고갱은 사실과 상상을 함께 표현하는 이러한 종합주의 Synthetism 기법을 구사한다. 빨간 원색의 칼라와 원근감을 무시한 현실은 크게, 상상은 작게 표현한 부분들이 고갱이 영향을 받은 일본의 풍속화인 우키요에 うきよえ 느낌도 물씬 풍긴다. 선명한 라인과 원색적인 색채, 평면적인 색면, 검은 윤곽선등 일본 판화와 중세 스테인드글라스처럼 구획을 나눠 표현하고 하는데, 이를 구획주의 또는 클루아조니즘 Cloisonnism이라 한다. 구도 또한 대각선을 가로지르는 소나무로 현실과 상상을 자연스럽게 나누고 있다.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을 두고, 인간과 신의 씨름, 인간과 사탄의 씨름, 천사와 사탄의 씨름 등 여러 해석이 나오는데, 이러한 여러 해석을 낳을 수 있는 상징성의 작품이다 해서 상징주의 Symbolism라고도 한다. 자아가 강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고갱은 이렇게 현실과 상상을 넘나들고 사실과 자신의 생각을 자유자재로 그림으로 표현하였다. 아래 그림은 더 재미있다. 지가 예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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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얼굴을 자신의 얼굴과 똑같이 그려, 자신이 곧 예수다라고 말하는 듯한 고갱의 자화상 Self-Portrait with the Yellow Christ, 1890 or 1891, Paul Gauguin, Musée d'Orsay, Paris


1848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외젠 앙리 폴 고갱 Eugène Henri Paul Gauguin 은 혁명의 시기인 1850년에 아버지의 저널리스트 직업을 유지하기 위해 잠시 외할머니의 고향인 페루로 떠나는데, 가는 도중에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아버지를 잃는다. 페루에 도착한 고갱은 경제적으로 부유한 외가 친척의 도움으로 편하게 지낸다. 그의 페루에서의 이국적인 경험이 이후 새로운 미술을 선보이는데 도움이 되었으리라. 1854년 페루 내전으로 다시 프랑스로 돌아와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지내다가 그의 나이 14살 때 해군 예비학교에 등록하고 이후 3년 동안 배 조종사 조수로 일한다. 이러한 경험이 이후 항해로 떠난 타히티, 마르티니크섬, 마르케사스 제도에서의 생활에 도움이 된다.


프랑스 해군 2년 복역 후, 1871년 그의 나이 23세에 파리에서 증권 거래 일을 하면서 돈도 많이 벌어 그 후 11년 동안 성공한 파리 사업가로 생활한다. 그 당시 수입을 지금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일 년 연봉이 약 1억 7천만 원 (30,000 Francs a year in 1879) 정도라고 한다. 경제적 여유도 생긴 고갱은 주말에 갤러리도 자주 들러 작품을 구매하기도 하고, 직접 간간히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초창기 인상주의의 대가인 카미유 피사로 Camille Pissarro 그림도 사고, 피사로와 함께 그림도 그리면서 친하게 된 고갱은 피사로를 통해 세잔, 드가 등 예술가 친구들과 인사도 나누게 된다. 이 시기인 1873년에 덴마크인인 메트 Mette-Sophie Gad와 결혼해 다섯 아이를 가지며 가족을 이룬다. 하지만, 1882년 파리 주식 시장 폭락으로 고갱의 수입은 급락하고 이후 증권거래 일보다는 그림을 그리는데 전념하기로 결정한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가족이 모두 덴마크로 갔다가 고갱과 6살 난 아들만 다시 쫓겨나다시피 프랑스로 돌아와 아내와 남은 가족들과도 결국 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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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히티 Tahiti와 고갱

고갱은 타히티를 두 번 방문한다. 첫 번째는 반 고흐와의 아를 생활을 마감한 후인 1890년으로 유럽 문명이 닿지 않은 이상적인 원시의 모습 타히티를 그리며 타히티에서 새로운 미술을 파리 시장에 팔아 보고자 갔는데 도착하자마자 프랑스 식민지로 유럽화 되어 있던 또 다른 프랑스 땅, 타히티 모습에 크게 실망한다. 두 번째는 3년간의 타히티 생활 후 파리로 복귀했지만 뜻대로 그림이 잘 팔리지 않자 다시 1895년 타히티로 향한다. 그림보다는 방탕한 생활과 건강 악화, 빚 독촉에 힘들어하던 차에 결정적으로 1897년 4월 너무나 사랑했던 딸 알리는 Aline 가 폐렴으로 죽었다는 소식에 고갱은 심한 우울증 증세를 보이며 자살을 시도하기도 하는데 그전에 유작처럼 그린 작품이 우리의 인생에 관한 고갱의 대작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작품이다. 고갱의 자살은 미수에 그치고, 약 5년을 더 산 후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한다.



지금까지 그렸던 그 어떤 것보다도 뛰어날 뿐 아니라,
앞으로도 이를 능가하거나 비슷한 작품은 결코 그릴 수 없다고 믿네.
나는 죽음을 앞두고 모든 열정을 쏟아 최악의 조건에서 고통받으며 정열을 불태워 이 작품을 그렸어.

-폴 고갱의 편지-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 1897, Paul Gauguin, Museum of Fine Arts, Boston


오른쪽에서부터 왼쪽으로 아이가 태어나서 성장하고 죽음에 이르는 우리 인생을 한 편의 파노라마로 표현하였다. 오른쪽 끝의 검은 개가 우리 인간의 인생 전체를 바라보듯이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이 검은 개를 고갱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어린 갓난아이 주위에는 타히티 섬 전통의 공동 육아를 따르는 세 여인이 있고, 가운데에는 서서 아담과 이브의 선악과를 따는 우리의 욕망과 원죄를 그려 놓았으며, 오른편에는 한 인생을 산 늙은 노인이 괴로워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앞 줄은 모두 원시의 옷을 벗은 모습이고, 뒷 줄은 문명화되어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이다. 뒷 줄의 왼쪽에는 타히티에서 죽음의 여신이라 부르는 ‘히나’ 조각상이 놓여 있고, 그 바로 옆에 고갱이 너무나 사랑했던 죽은 딸 알리느가 보인다. 오른쪽의 옷을 입은 문명화된 여인 둘과 바로 앞에 옷을 벗고 앉아있는 원시의 여인이 대조적으로 그려져 있다. 왼쪽 위 귀퉁이는 그림을 살짝 벗겼더니 뒷면에 황금색 바닥이 드러나 듯 프랑스어로 ‘D' où Venons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Nous Que Sommes 우리는 무엇인가 Nous Où Allons Nous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작품명이 쓰여 있다. 오른쪽 반대편 황금색 귀퉁이에도 ‘P. Gauguin 1897’ 이 들쳐져 있다.

상상력과 표현력이 어머어마한 화가였다. 그동안 나쁜 남자, 고갱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것에 미안함이 밀려온다.


나는 그리기 위해 눈을 감는다
I close my eyes in order to see

-폴 고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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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vs. 폴 고갱 In 아를 Arles

“ 안녕하세요, 반 고흐입니다. 1887년 11월 처음 갤러리에서 고갱과 그의 작품을 보자마자 나는 그의 매력에 흠뻑 빠졌죠. 누가 봐도 파리지앵의 멋쟁이였고, 자신감에 찬 그의 말과 행동이 잘난 척과 허풍끼도 좀 있어 보이기도 했지만 숫기 없는 저에게는 없는 부분이라 부러웠죠. 저보다 5살 더 많은 형이라 인간적으로도 작품으로도 배울 점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동생 테오를 통해 그림도 몇 점 사게 해서, 고갱에게는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기에 아마도 도움도 되었을 겁니다. 그렇데 때가 왔죠. 1888년 2월 파리에서의 힘들었던 생활을 접고, 남프랑스 아를로 옮겨 예술가 공동체 프로젝트를 꿈꾸고 있었는데 아무도 반응이 없었죠. 고갱만은 꼭 오게 하고 싶었어요. 테오에게 고갱만은 꼭 함께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했고, 테오를 통해 고갱 빚도 탕감해 주고 정기적으로 고갱 그림을 사게 하는 조건 등으로 고갱이 아를로 오게 만들었죠. 계산적이고 현실적인 고갱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건 돈이 가장 효과적일 거라 생각했는데 먹혀들더군요. 1888년 10월 23일 드디어 아를에 고갱이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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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와 고갱이 함께 지냈던 아를의 노란 집 The Yellow House (The Street), 1888, Vincent van Gogh, Van Gogh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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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와 고갱의 성격을 대조적으로 보여주는 반 고흐가 그린 의자. 단순하고 소박한 반 고흐의 의자와 화려하고 장식이 많은 고갱의 의자.

Left: Gauguin's Chair 고갱의 의자, 1888, Vincent van Gogh, Van Gogh Museum.

Right: Van Gogh's Chair 반 고흐의 의자, 1888, Vincent van Gogh, National Gallery, London


아를에 도착하자마자 고갱은 친구 베르나르에게 편지로 이곳을 ‘무척 작고 꾀죄죄한 곳’이라고 썼다죠.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내가 얼마나 설렘으로 그를 맞이했는데요! 처음 한 달 정도는 잘 지냈던 것 같은데, 점점 시간이 갈수록 우리는 잘 안 맞았더군요. 저도 제 성격이 내성적이고 가끔 잘 흥분하고 거칠다는 걸 잘 알고 있어서 더더욱 조심했는데, 고갱은 너무나 냉소적이며 자기주장이 강했죠. 자기애가 어마어마했어요.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친구였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건 무조건 다 못마땅했죠. 아래 그림은 고갱이 그려준 저의 모습입니다.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해바라기를 폭삭~ 시들어진 모습으로 그려놓고, 제 모습은 힘도 없는 너무나 작은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미친놈의 알코올중독자 같은 추한 얼굴로 그려놓았잖아요! 좋아요, 제 모습은 그럴 수 있다지만, 제가 좋아하는 카페 마담 지누 부인을 너무나 사악한 얼굴과 압센트 술병을 앞에 놓아 술에 취한 모습으로 그리고, 저 뒤의 수염 난 제 친구인 우체부 조셉 룰랭을 사창가 여자들에게 치근덕거리고 있는 바람둥이 모습으로 표현해 놓은 건 정말 참을 수가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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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갱이 그린 반 고흐의 모습. The Painter of Sunflowers (Portrait of Vincent van Gogh), 1888, Paul Gaugu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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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가 그린 책 읽는 지적인 모습의 지누 부인. L'Arlésienne, Portrait of Madame Ginoux 지누 부인의 초상, 1888, Vincent van Gogh, The M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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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갱이 그린 술에 취한 지누 부인. Night Café at Arles 아를의 밤 카페(Madame Ginoux 지누 부인), 1888, Paul Gauguin, Pushkin Museum, Moscow


1888년 12월 23일 저녁,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두고 결국 저는 폭발했죠! 저도 제가 발작을 하고, 이후 정신을 잃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눈을 떠 보니 아를 병원에서 귀를 감싼 붕대로 얼굴이 감겨 있는 내 모습에 귀가 잘려 나간 걸 알 수 있었죠. 아마도 떠난다, 떠난다~ 입버릇처럼 떠들던 고갱이 짐 싸 놓고 나간 모습을 보고 돌아버린 것 같기도 하고, 무엇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고갱과 심한 말다툼 끝에 폭발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래요. 아니면, 펜싱을 곧 잘하던 고갱이 말다툼 끝에 펜싱 검 ‘에페 épée’로 방어한답시고 내 귀를 친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어요. 그 사건 이후로, 고갱과 함께 했던 아를에서의 9주간의 짧은 시간은 마감되었죠. 제 인생도 완전히 바뀌었어요! 고갱이 다 망쳐놓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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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잘린 반 고흐의 초상화. Self-portrait with bandaged ear and pipe, 1889, Vincent van Gogh, Kunsthaus Zürich




“안녕하세요, 고갱입니다. 예술가중에 저처럼 억울한 사람이 또 있을까요? 제 얘기할 때면 제 얘기보다 고흐 얘기가 더 많이 나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잖아요! 제 작품 얘기는 꺼내지도 못하고 반 고흐 얘기만 하다가 끝납니다. 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요? 귀는 반 고흐가 잘랐는데, 욕은 제가 다 먹습니다. 그 짧은 9주 동안 반 고흐와의 시간이 평생 저를 따라다닙니다. 아를로 가는 게 아니었는데… 꼭 와달라고 매달려서 한 번 가 줬는데, 그게 이렇게 족쇄가 될 줄이야… 사실 반 고흐와 있는 동안 테오에게 내 그림도 좀 더 팔고, 돈 좀 모아서 타히티 갈 비용 좀 모을 생각이었거든요. 처음 도착해서 반 고흐의 작고 꾀죄죄한 모습에 실망했을 때 바로 돌아갔어야 했는데, 그놈의 돈 때문에 못 돌아간 게 후회되네요.


아를에서 본 반 고흐는 파리에서보다 더 심각해 보였어요. 감정의 기복도 더 심해졌고, 그 독한 술 압센트도 입에 달고 살았죠. 가장 참을 수 없었던 건, 위생상태가 엉망이었어요. 나까지 병에 걸릴 것 같아 참을 수가 없었어요. 제가 형인데도, 제 말도 잘 안 들어요. 경제관념도 엉망이에요. 테오가 한 달에 같이 쓰는 공동 생활비로 250프랑을 보내주는데 개념 없이 혼자 다 쓰고, 사창가에 푹 빠져서 거기 다 갖다 주고 생활을 할 수가 없었죠. 다 이해한다고 쳐요.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반 고흐가 저에 대해 자격지심이 엄청났다는 거예요. 열등감에 사로 잡혀 있었죠. 그도 그럴 것이, 제 그림은 그래도 테오에게 보내져서 조금씩 팔리고 있었는데, 반 고흐 그림은 한 점도 안 팔리고 있었거든요. 그 자격지심이 가장 컸던 것 같아요. 저도 처음 한 달은 어떻게든 잘해 보려고 했는데 이내 포기했어요. 반 고흐는 그냥 혼자 살아야 해요!


사실, 저도 반 고흐에게 고마운 점이 있긴 있죠. 반 고흐의 그림을 보고 깜짝깜짝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내색은 안 했지만, 저 보다 나은 부분도 많았죠. 제 작품에 영향을 안 미쳤다고 할 수는 없어요, 인정해요! 반 고흐를 왜 그렇게 그렸냐고요? 지누 부인을 왜 그렇게 그렸냐고요? 제가 반 고흐에게 항상 하는 말이, ‘눈에 보이는 것만 그리지 마라, 머릿속 상상을 함께 표현해라’ 였어요. 그게 반 고흐 그림과 제 그림의 가장 큰 차이점이었거든요. 이것 때문에 많이 부딪치기도 했죠. 저는 제가 생각한 것을 그렇게 표현한 겁니다. 제 눈에는, 제 생각으로는 그렇게 보였던 겁니다. 작가의 상상력, 인정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날 속이고 예쁘게만 그릴 순 없잖아요? 참, 제가 아를로 가기 전 반 고흐가 일본의 화가들이 판화를 교환하며 우정을 나누고 서로의 작업에 힘을 보내는 전통이 있듯이 우리도 서로의 자화상을 교환하자고 하더군요. 좋은 생각인 듯하여, 저도 열심히 그려서 보내줬고, 반 고흐도 저에게 보내줬죠. 저는 제 자화상에 ‘레 미제라블,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제목도 달아서 나 불쌍한 사람, 장발장 같은 사람이니 잘 보살펴 주길 바랬죠. 그런데 반 고흐가 그린 자화상은 완전 수도승 느낌의 머리도 확 밀어버린, 살도 쑥 빠져 광대뼈가 도드라져 보이는 그런 모습이었죠. 아, 그때 뭔가 이상함을 알고 아를로 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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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갱과 반 고흐가 서로 자신의 모습을 그려 교환한 자화상. 고갱 자화상의 뒤의 인물은 고갱의 친구인 베르나르.

Self-Portrait with Portrait of Émile Bernard (Les misérables), 1888, Paul Gaguine, Van Gogh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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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f-Portrait (Dedicated to Paul Gauguin), 1888, Vincent van Gogh, Fogg Museum, Harvard University


1888년 12월 23일 저녁, 반 고흐는 완전 미쳤어요! 잠깐 짐 정리 좀 하고, 빅토르 위고 광장을 산책하러 나갔는데 저 뒤에서 반 고흐가 면도칼을 들고 저를 뒤따라 오는 거예요. 왜 그랬는지 저도 영문을 모르겠어요. 아마도 제가 떠난다고 오해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며칠 전 테오에게 왔던 편지에서 테오가 결혼할 거라는 소식에 경제적으로 심적으로 더 이상 테오의 지원을 받지 못할 거라는 극심한 불안감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어요. 너무 무서워서 그날 저녁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호텔에서 잤어요. 다음 날 귀를 잘랐다고 하더군요. 그 잘린 귀를 사창가에서 허드렛일 하는 친구에게 줬다는데, 아마도 창녀에게 줬을 거예요.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죠? 테오에게 바로 연락하고 그 길로 아를를 떠났죠. 다시는 아를에 갈 일은 없을 겁니다. 반 고흐가 제 인생을 망쳐 놓았어요! 반 고흐가 저에게 사과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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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갱이 만든 주전자 모양의 자화상. 고갱에게도 반 고흐의 귀 사건은 트라우마였던였는지 귀가 없고, 유약을 피처럼 흘러내리게 표현하였다. Jug in the Form of a Head, Self-portrait 머리 모양의 주전자, 자화상, Gauguin, 1889. Kunstindustrimuseet, Copenha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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