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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아 Dec 10. 2023

퇴사보다 딸기 생크림 케이크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솟구칠 때마다 집 근처 빵집을 검색한다. 찜을 해놓고 일요일을 기다린다. 돈을 아끼기 위해 직접 나가서 사 올 수도 있겠지만, 게으름을 선택하는 게 행복지수를 올려준다는 걸 잘 알기에 배달을 시킨다. 미리 알아봐 둔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주문했다. 30분 후 케이크가 도착했다. 사진에서 본 그대로 뽀얀 생크림 위에 딸기가 사뿐히 놓여 있다. 자르기가 아까워 한참을 보다가 사진을 찍었다. 4분의 1 토막을 그릇에 옮겨 담았다. 딸기, 빵, 크림을 포크 위에 올려 한 입 먹었다. 설렘이 담긴 딸기는 제빵사의 고집이 느껴지는 빵과 설국이 선사한 크림을 만났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셨다. 극락이 따로 없다. 



일요일 아침의 축복을 누리려면 5일의 노동이 필요하다. 아침에는 시간에 맞춰 침대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사무실 분위기에 맞는 복장과 화장으로 나를 다듬어야 한다. 수시로 바뀌는 상사의 기분을 살펴야 한다. 실수하지 않기 위해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맛대가리 없는 점심밥도 참고 먹어야 한다. 눈치껏 움직이기 위해 신경을 세워야 한다. 사적 영역을 침범하는 말을 듣고도 타격받지 않은 척해야 한다. 옹졸한 월급에 만족하는 척 연기도 해야 한다. 어쩌다 한번 오는 회식자리에서 방긋방긋 웃을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럼에도 나는 자진해서 그만둘 수 없다. 돈!이 필요하니까. 자아실현, 경력관리 그런 건 모르겠고, 차를 사고 집을 사고 싶다.  



 주거지 반경 3km 이내에서 찾은 소소한 기쁨은 치사한 일상을 버티게 해 준다. 퇴사할 용기가 없는 사람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생크림을 택한다. 분명 달콤한데 어딘가 씁쓸한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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