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챌린저스>와 난기류

by 홍정수

프랑크프루트로 가는 KE945편 비행기.

무료함에 못 이겨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챌린저스>를 틀었다.

사실은 감독의 전작들 속의 아름다운 녹음과 혼란한 관계들을 기대했다 실망할까 봐 망설였던 영화.

그러나 재생하는 순간 느껴지는 청량한 에너지와 함께 등장한 세 명의 젊은 테니스 선수들. 타시, 아트, 패트릭.아트와 패트릭은 10대 초반 누구에게도 말하기 부끄러운 서로의 치부를 나누던 형제 같은, 어쩌면 형제와는 거리가 멀다고도 말할 수 있는 관계였다.

어느 날 그 둘은 코트 위에서 가장 뜨거운 사람, 타시를 만나게 된다.

루카 감독답게, 기존 영화들에서 흔히 전개되는 세 남녀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건 꽤나 초반부에 알 수 있다.

타시의 전화번호를 걸고 시작된 한 판의 승부. 결국 볼은 패트릭의 손을 들어주었고 평화롭게 결과에 승복하는 장면이 그려진다.

하지만 타시와 패트릭 사이의 틈을 보고 있던 아트는 패트릭에게 타시와 잤다면 사인ㅡ패트릭이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던 습관인 서브 전 라켓에 공을 붙이는 행위ㅡ을 보내라고 말한다.

결국 사인을 받은 아트는 패트릭의 등 뒤로 심란한 웃음을 내보인다.

불어난 오해와 함께 타시는 코트 위에서 부상을 입어 선수 생활이 끝나게 되고, 그 옆엔 패트릭이 아닌 아트가 있었다.

영화 속 시간은 흐르고. 타시는 코치와 아내로서, 테니스에 열정을 잃은 아트에게 회의감을 느낀다.

계속해서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던 아트는 결국 지역 대회로까지 전락하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대회를 전전하던 패트릭과 마주친다.

패트릭은 몰래 타시를 찾아와 도발하고, 결국 둘은 내일 있을 시합에서 아트의 승리를 건 잠자리를 가지게 된다.

흥미롭게 시작된 경기와 함께 들어선 난기류. 참으로 절묘한 타이밍이 아닐 수 없었다.

난기류에 들어서기 직전 옆자리 여성분이 드시는 화이트 와인이 먹고 싶어 서비스를 요청했는데,

받자마자 당장이라도 흐를 것 같은 잔을 쥔 채 경기를 관람했다.

아트와 패트릭의 느리고도 빠른 코트 위에서의 신경전과 함께 난기류에 놓인 내 상황에 웃음이 났다.

그러나 한 모금 맛본 화이트 와인은 의외로 맛이 너무나 좋아서, 얼른 마셔 없애든 거치대에 고정하든 해결을 하고 싶었으나 뜻대로 손이 움직이지 않는 탓에 울렁거렸다.

토가 나올 것 같았다.

긴박한 셋의 움직임을 보고 있었던 게 한몫했나 보다. 결국 바닥으로 흐른 와인과 함께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 <챌린저스>에서는 타시를, 아트와 패트릭을 쥐고 흔드는 라켓으로 그린다.

그러나 내가 느낀 영화 속 타시는 명백한 볼이었고, 두 라켓 사이 이어지는 랠리와 신음은 볼을 코트 바깥으로 밀어낸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전작들에서도 속도와 관계없이 신선한 전개를 이끌어감으로써 시청자들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주었다.

내가 <챌린저스>를 재생하기 망설였던 이유 또한 여타 상업영화들과 달리 정형화된 결말을 기대하지 않게 만드는 루카 감독의 스타일과 다르게, 예고편으로 짧게 본 <챌린저스>는 내게 너무나도 내용이 예상되는 영화라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영화는 타는 듯 뜨거운 코트 속 지속되는 랠리처럼, 앞으로 찾아오는 여름에 생각나는 영화들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