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공학 기술이 신의 영역에 도달했다고?!
SF 장르에서 생명과학 기술은 오랜 시간 동안 단골 소재였습니다. 수많은 작품들이 유전자 조작, 인간 복제, 생명 연장 등의 주제를 다루어왔습니다. 이는 아마도 생명과학 기술의 발전이 소위 '신의 능력'이라고 생각되는 분야까지 드라마틱한 발전 가능성을 갖고 있는 동시에 사회적, 윤리적 문제들에 대한 탐구와 분리할 수 없는 주제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미래의 기술 발전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준비할 수 있게 하려는 SF의 장르적 특성에 딱 걸맞은 것이죠. 그렇다면 현재의 생명과학기술은 어떤 모습으로 어디까지 왔을까요? 이번 편에서는 전통적인 생명공학의 영역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기술 몇 가지를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01. 인공 생명체 기술을 위한 여정
인공 생명체 기술은 자연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생명 시스템을 인위적으로 설계하고 제작하는 기술을 말합니다. 이는 자연 세포의 구조적, 기능적 복잡성을 모방하여 발전해 왔으며, 생체 모방, 자가 적응 등의 개념을 통해 생명체에 더욱 가까운 기능을 구현하고 있습니다. 인공 관절 설계 및 제작 기술은 인공 생명체 기술의 응용분야 중 하나입니다. 세계적으로 55세 이상 인구의 90%가량이 관절염 등 관절 질환을 앓고 있는 배경에서, 이러한 인공 관절 기술은 크게 각광받고 있습니다. 인공 관절은 자연 관절의 움직임을 최대한 모방하도록 설계되는데, 관절의 해부학적 구조와 운동 범위를 고려한 정교한 설계가 이를 위한 바탕이 됩니다. 또한, 인공 관절에 있어 관절액의 윤활 기능을 모방한 자가 윤활 시스템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인공 관절은 내구성이 높고 생체 적합성이 뛰어난 코발트-크롬 합금이나 티타늄 합금, 세라믹 소재가 주로 이용됩니다. 이때 주변 골조직과 융합되는 생체활성 코팅 기술이 적용되고 있으며, 나노 구조 표면 처리를 통해 세포 부착과 골 형성을 촉진하고 있습니다. 또한, 다공성 고관절 임플란트와 같은 인공 관절에서는 시멘트리스 고정 기술이 널리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뼈의 성장을 촉진하여 임플란트와의 결합을 강화합니다. 나아가, 줄기세포와 성장인자를 통합하는 등 재생 의학을 접목한 생체 활성 임플란트 연구 역시 활발히 진행 중입니다. 이러한 연구들을 기반으로, 현재 골관절염 치료를 위한 효과적인 방법으로 인공 고관절 전치환술이 실제로 시행되고 있습니다.
인공 신장 기술 역시 단순한 대체물을 넘어 인공 생명체 기술의 일환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는 신장 기능이 저하된 환자들의 생명을 유지하는 주요한 역할을 합니다. 인공 신장은 자연 신장의 여과, 재흡수, 분비 기능을 모방한 다층 필터 시스템을 구현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생체 막을 모방한 나노 다공성 필터 기술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인공 신장은 반투과성 막을 통해 혈액에서 노폐물을 제거하고 전해질 균형을 유지하는 원리를 이용해 혈액 투석을 진행합니다. 이때 지능형 막 기술 개발을 통해 체내 전해질 농도에 반응해 여과율을 조절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최신 투석막은 높은 효율성과 생체 적합성을 갖는데, 일례로 고유량 투석막은 중분자량 물질 제거에 강점을 가집니다. 투석액의 조성은 인공지능 기반의 혈액 정화 알고리즘을 통해 환자의 상태에 따라 최적화되며, 중탄산염 기반 투석액이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인공 관절과 인공 신장 기술 등과 같은 기술 분야들은 생체 모방, 생체 역학, 재생 의학 등 다양한 과학 기술 분야를 융합하고 응용해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어내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까지 갈 길이 많이 남은 것도 사실입니다. 넘어야 할 가장 큰 산 중 하나는 아마 면역 거부 반응 문제일 것입니다. 신체가 삽입된 인공 장기를 침입한 외부 물질로 인식하고, 공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데, 최근 인공 신장 기술 분야에서 주목할만한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연구진은 면역반응을 일으키는 면역세포의 공격으로부터 신장세포를 보호하기 위해 10 나노미터 폭의 기공이 있으면서 두께가 1 마이크로미터가 안 되는 실리콘 나노기공 박막(SNM)을 만들었습니다. 면역 반응을 일으키는 염증성 사이토카인인 TNF-α을 세포에 노출시킨 후 6시간이 지나 확인한 결과, 실리콘 나노기공 박막의 보호를 받은 부분의 TNF-α 수치는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이는 10 나노미터 기공보다 크기가 큰 사이토카인이 기공을 통과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크기가 큰 T세포나 항체도 기공을 통과할 수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실리콘 나노기공 박막으로 밀봉된 세포는 90%에 가까운 높은 생존율을 유지했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인공 생명체 기술은 아직 '하이브리드'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공 신장의 경우 실제 세뇨관 세포를 그대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장은 체중의 0.4%에 불과하지만, 하루 180ℓ의 피를 걸러냅니다. 이때 여과한 물질을 모두 몸 밖으로 배출하면 너무 많은 물질이 손실되기 때문에 재흡수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재흡수 과정을 하는 것이 신장의 세뇨관 세포인 것입니다. 아직 사람이 만든 시스템으로는 인간의 세뇨관 세포만큼 효과적으로 물질과 수분을 재흡수하기 어렵기 때문에 세뇨관세포를 배양해 인공신장에 삽입하는 방법을 택하는 연구가 많습니다.
향후 이 기술들은 더욱 정교해져 자연 장기와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는 진정한 의미의 '인공 생명체'에 가까워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현재 세포 내부의 복잡한 구조와 기능을 모방하는 기술이 핵심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발전된 재료와 설계, 그리고 개인화된 치료 접근법을 통해 계속해서 진화한다면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질을 향상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02. 생명체 복제 기술: 다양한 생명공학 기술의 토대
대중적으로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던 생명공학 기술은 생명체 복제 기술일 것입니다. 생명체 복제 기술은 유전적으로 동일한 개체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말하는데, 이는 1996년 영국의 로슬린 연구소에서 복제양 돌리가 탄생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습니다. 복제 기술은 체세포 핵 이식법(SCNT)을 주로 사용합니다. 세포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딸세포를 만드는데, 정자와 난자 같은 생식세포는 '생식세포분열'을 하고, 그 외의 세포는 '체세포분열'을 합니다. 생식세포분열을 거친 생식세포는 염색체 수나 유전물질의 양이 절반이 된 상태가 되고, 체세포분열을 통해 만들어진 체세포는 분열 전의 모세포와 같은 유전적 구성을 갖습니다.
체세포 핵 이식법은 성체 체세포의 핵을 난자에 이식하여 배아를 만드는 것으로, 성체 세포의 유전 정보를 이용해 새로운 개체를 만드는 기술입니다. 난자에서 핵을 제거한 후 복제하고자 하는 개체의 체세포 핵을 주입하는 방법을 통해 성체 체세포의 핵이 초기 배아 상태로 다시 프로그래밍시키는 원리입니다. 이를 위해 우선, 성숙한 난자에서 핵을 제거한 다음 복제하고자 하는 개체의 체세포를 채취합니다. 이 난자에 체세포의 핵을 주입하고, 핵이 이식된 난자에 전기 자극을 가해 세포 분열을 유도하면 이식된 체세포 핵이 전능성(totipotent)이 있는 상태로 다시 프로그래밍됩니다. 이때, 전능하다는 것은 수정란과 같이 분화하여 전체 개체를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을 갖는 것을 말합니다. 이 과정에서 체세포의 유전자 발현 패턴이 초기 배아 세포의 패턴으로 변화하기 때문에 체세포 핵을 가진 세포는 배아 발생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이 배아를 대리모에 이식하거나 배양하는 등의 과정을 통해 타깃을 복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체세포 핵 이식법은 가축이나 애완동물을 복제하거나, 멸종 위기 동물 종의 보존에 활용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미 2020년 중국에서는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 고양이 종을 성공적으로 복제한 바 있으며, 이는 생물다양성 보존이라는 목표에 큰 의미를 가집니다. 그러나, 복제 기술은 아직 여러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복제 기술은 윤리적 문제와 떨어질 수 없습니다. 생명의 존엄성, 유전적 다양성 감소를 포함한 다양한 윤리적 질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멸종 위기 종 복제의 경우 자연선택의 과정을 인간이 인위적으로 조작해도 되는가에 대한 문제제기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우수한 형질의 개체를 복제함으로써 전체 유전자 풀이 줄어드는 경우 특정 전염병 등 위기에 취약해진다는 큰 위험을 갖게 됩니다. 이 외에도 복제된 개체의 권리 등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국가에서 인간 복제를 금지하고 있으며, 동물 복제에 대해서도 엄격한 규제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생명체 복제 기술은 현재 다양한 분야에서 발전을 이루어가고 있으며, 의료, 농업, 생태계 보전 등의 분야에서 큰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윤리적, 법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어 사려 깊은 접근이 필요합니다. 앞으로 이 기술분야의 발전과 함께 사회적 합의와 법적, 윤리적 가이드라인 수립이 중요할 것으로 보이는 이유입니다.
03. 생명 연장 및 노화 방지의 꿈
또한, 생명체 복제는 기술적인 측면에서 복제된 생명체의 수명과 관련된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복제 양 돌리를 기억하는 분들은 이 양이 오래 살지 못하고 몇 년 후 사망했다는 걸 기억하실 겁니다. 돌리는 양의 일반적인 수명인 12년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6년 7개월의 삶을 살고 사망하였습니다. 이러한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생명 연장 및 노화 방지 연구와도 연결됩니다. 복제된 개체가 일반적으로 수명이 짧은 이유나, 우리가 노화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은 ‘텔로미어’라는 DNA의 특정 서열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텔로미어는 염색체 말단에 위치한 반복 DNA 서열로, 염색체를 보호하고 DNA 복제 과정에서 발생하는 '말단 복제 문제'를 해결해 유전 정보 손실을 방지합니다. 무엇보다, 텔로미어 길이는 세포의 분열 횟수와 수명을 결정하는 중요 요소입니다.
텔로미어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짧아짐에 따라 노화가 일어나는데, 이러한 현상은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발생합니다. 우선, DNA의 '말단 복제 문제'란, DNA 중합효소가 지연 가닥의 끝부분을 완전히 복제하지 못해 매 세포 분열마다 DNA 끝부분 일부가 소실되는 것입니다. 이미 살펴보았던 DNA 복제 과정에서 알 수 있듯이, 3'에서 5' 방향으로 합성을 진행하는 지연 가닥에서는 DNA 단편을 복사하기 위한 프라이머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염색체 끝에는 프라이머를 만들 곳이 없습니다. 즉, 끝부분이 복제되지 않고 길이가 짧아지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죠. 시간이 지나 세포가 계속 분열함에 따라 이러한 끝이 점점 더 짧아지게 되는데, 이러한 유전 정보 소실을 막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텔로미어입니다. 특정 유전자를 코딩하지 않는 반복적인 서열을 염색체 끝에 둠으로써 중요한 유전 정보 대신 텔로미어가 소실되고 짧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생명체는 이러한 텔로미어 소실에 대응할 수 있는 기전도 가지고 있습니다. 텔로머라제(telomerase)는 텔로미어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특수 효소입니다. 텔로머라제는 염색체 말단에 텔로미어 DNA 서열을 추가하여 텔로미어 길이를 유지하거나 연장함으로써 세포 분열 과정에서 발생하는 텔로미어 단축을 보상합니다. 텔로머라제가 염색체 끝에 부착되고, RNA 주형에 대한 상보적 염기를 DNA 가닥 끝에 추가시킵니다. 이러한 선도 가닥이 충분히 길어지면 DNA 중합효소는 이를 주형으로 삼아 지연 가닥 끝에 상보적인 뉴클레오타이드를 추가할 수 있습니다.
다시, 복제된 개체의 수명 문제로 돌아와서, 줄기세포와 생식세포 그리고 암세포와 다르게 대부분의 체세포에서는 텔로머라제 활성이 억제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체세포 핵 이식법에 사용된 체세포의 텔로미어 길이가 이미 짧아져 있었고, 복제된 개체는 이를 그대로 물려받게 되어 짧은 수명을 갖게 되었을 수 있습니다. 이미 노화가 진행된 세포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이죠. 물론, 실험체로서 복제된 개체가 받는 많은 스트레스 등 환경적인 영향을 짧은 수명의 원인으로 보는 분석도 있습니다. 하지만 체세포 핵 이식과 관련하여 발생하는 텔로미어 길이 문제나 복제 과정에서 텔로미어 관련 유전자의 조절에 생긴 문제 등 텔로미어와 텔로머라제에 초점을 맞춘 분석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이렇듯 텔로머라제 활성과 텔로미어 길이는 세포의 수명과 노화 과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2010년 과학자들은 텔로머라제가 생쥐에서 일부 연령과 관련된 질환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으며, 이는 재생 의학 분야에서의 잠재력을 보여줍니다. 연구에서 사용된 텔로머라제가 결핍된 생쥐는 조직 위축, 줄기 세포 고갈, 장기 시스템 기능 부전 및 조직 손상 반응이 초기에 있습니다. 이 생쥐의 텔로머라제를 재활성화시키자 텔로미어 확장, DNA 손상 감소, 신경 퇴행 완화 및 개선, 장 기능 개선이 이루어졌습니다. 현재에는 텔로머라제 유전자 도입이나 소분자 화합물을 이용한 텔로머라제 활성화를 통한 세포 노화 지연 및 조직 재생 촉진 가능성이 탐구되고 있습니다. 한편, 텔로미어 길이를 직접적으로 조절하여 세포 수명을 연장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도 진행되고 있는데, 여기에는 유전자 편집 기술이 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텔로미어와 텔로머라제에 대한 연구는 노화와 질병 메커니즘의 이해, 새로운 치료 전략 개발에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의 발전은 새로운 윤리적, 사회적 문제의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선, 생명 연장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경제적 능력에 따른 수명 불평등 문제가 발생하고, 결과적으로 사회적 불평등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생명 연장으로 인해 인구가 증가하고, 식량, 에너지, 주거 등의 자원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에 대한 분배의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본질적으로, 생명체의 수명을 조절하고 새로운 개체를 만들어내는 생명 공학 연구에는 삶과 죽음, 생명의 가치와 의미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이 필수적일 것입니다.
04.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줄기세포 연구
(1) 줄기세포 연구의 가능성
복제 기술의 발전은 줄기세포 연구와도 결합될 수 있습니다. 체세포 핵 이식법을 통해 줄기세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식법 중 재프로그래밍된 핵을 가진 세포가 배아 발생 과정을 거치는 과정에서 배아줄기세포를 얻을 수 있는데, 이는 체세포 핵을 제공한 사람의 맞춤형 배아줄기세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환자 맞춤형 배아줄기세포를 만들어 그 환자에 대한 질병 연구나 세포 치료에 활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줄기세포는 자가 재생 능력과 다양한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미분화 세포입니다. 즉, 줄기세포는 특정한 기능을 가진 세포로 완전히 분화하지 않은, 미분화 상태를 유지합니다. 또한, 분열을 통해 자신과 동일한 특성을 가진 세포를 만들 수 있는, 자가 재생 능력을 가져야 하며, 하나 이상의 특정 세포 유형을 분화할 수 있는 분화 능력을 보여야 합니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줄기세포는 재생 의학, 질병 치료, 그리고 인체 발달 연구 분야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줄기세포는 기원과 분화 능력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우선, 언급하였듯이, 배아줄기세포는 초기 배아에서 유래하는 줄기세포로 모든 유형의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전능성을 가집니다. 성체줄기세포는 성체 조직에 존재하며, 제한된 범위의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조혈모세포는 성체 골수, 혈액, 탯줄에서 발견되는 특수세포로, 적혈구, 백혈구 그리고 혈소판 등의 혈구 세포로 분화하는 능력을 가졌습니다. 한편, 유도다능성줄기세포(iPS 세포)는 화학 물질 등을 이용해 성체 체세포를 다시 프로그래밍하여 만든 줄기세포로, 배아줄기세포와 유사한 특성을 갖습니다. 유도만능줄기세포는 성체 세포를 배아줄기세포와 유사한 상태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윤리적 문제를 줄이면서도 다양한 응용 가능성을 제공합니다.
줄기세포는 많은 분야에서 활용 가능성을 갖습니다. 특히, 손상된 조직이나 기관을 복구하는 데 사용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파킨슨병 치료를 위해 유도만능줄기세포로부터 도파민 생성 신경세포를 만드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며, 뇌 손상이나 척수 손상 환자들에 있어서의 중추신경계 재생을 위한 유망한 접근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특정 질병의 메커니즘을 연구하는 데에도 줄기세포가 활용됩니다. 예를 들어, 유도만능줄기세포 기술은 유전성 간질의 병리학적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하는 데 활용되고 있습니다. 줄기세포는 난치성 신경질환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고 평가받습니다. 나아가, 줄기세포는 새로운 치료제의 효과와 안전성을 테스트하는 데에도 사용될 수 있으며, 유전자 편집 기술과 결합하여 맞춤형 의학 발전을 가속화하고 있기도 합니다.
(2) 줄기세포 연구와 생명연구윤리: 황우석 사건을 중심으로
이렇듯 연구와 치료에 혁명적인 응용 가능성을 제공하는 소재이기에, 줄기세포 연구는 현대 생명과학 및 의학 연구의 최전선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윤리적, 법적 논의의 중심에 서있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줄기세포와 관련된 문제가 가장 복합적으로 터져 나온 것이 ‘황우석 사태’였다고 생각합니다. 황우석 사태는 황우석 박사가 배아줄기세포를 만들었다고 거짓으로 주장하며 한국 사회와 2005년 이후의 줄기세포 연구 사회 전반을 뒤흔들었던 사건입니다. 여기에는 한국 과학 문화나 과학규제시스템의 문제, 과학과 언론 사이 관계의 문제 등 다양한 층위의 문제들이 혼재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줄기세포와 관련된 연구윤리적 문제제기는 이 사건뿐 아니라, 줄기세포 연구 전반에 적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체세포 핵 이식법을 통해 줄기세포를 만드는 과정에서 난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앞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때 사용되는 난자는 어떻게 수급하는 것일까요? 국제줄기세포연구회는 난자 기증자의 권리와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많은 지침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기증자의 자발적 동의, 기증자 보호 등의 원칙이 이 지침에서 강조되고 있습니다. 난자 기증자 모집은 엄격한 법적 규제 하에 이루어지는데, 기증자들이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은 후 자발적으로 동의해야 합니다. 또한, 난자 채취 과정에는 호르몬 주사, 난소 자극 그리고 침습적인 난자 추출 절차가 포함됩니다. 이처럼 의학적으로 복잡하고 위험할 수 있는 절차이기 때문에 기증자의 건강과 안전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합니다. 황우석 사건에서 연구에 사용된 난자들을 기증받는 과정에서는 대부분 이러한 지침과 절차가 지켜지지 않았고, 당시 황우석의 연구실에 소속되어 있던 여성 연구원들, 대학원생들이 난자를 제공한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들은 자신이 제공하는 난자가 어떻게 이용되고 사용되는지 알지 못한 상태로 교수와 학생이라는 위계 관계나 황우석과의 개인적 관계, 실험실 문화 등 다양한 동기와 사회적 맥락 하에서 난자를 제공했습니다.
이렇듯 줄기세포 연구에서의 난자 기증은 여성의 도구적 재현과 난자와 여성의 몸, 노동 등 여러 사회윤리적 논점들과 결합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러한 난자 수급과 관련된 문제에서 여성은 피해자로 규정되고, 어떻게 하면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가에 논의의 초점이 맞추어져 왔습니다. 그러나, 초점을 옮겨 ‘성스러운 여성’과 ‘피해자’의 이분법, ‘실험 재료’와 ‘소중한 생명’의 이분법에서 비가시화되었던 여성들의 적극적 개입을 위한 모색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현대의 과학기술은 내부의 경과나 상황을 바깥에서는 완전하게 파악할 수 없는, ‘블랙박스화’되어 있습니다. 줄기세포 연구를 포함하여, 앞으로의 과학기술 연구에서 연구 참여자인 여성은 이러한 과학기술의 연구 방향 설정과 기획 자체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황우석 사건은 줄기세포 취득 과정에서도 문제가 많았습니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많은 제도적 개선들이 이루어졌지만, 잔존한 문제들도 있습니다. 성체줄기세포 및 태아줄기세포의 취득 과정을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선, 성체줄기세포는 제대혈(신생아 분만 시 탯줄을 절단한 후 태반과 탯줄의 혈관에 남아있는 신생아의 혈액)을 제외하고는 대개 자가이식으로 사용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경우 줄기세포 이식보다는 시술의 일환으로 취급되어 최근까지 어떠한 규제도 받지 않았습니다.
현재 시술용으로 획득한 줄기세포는 그 환자의 치료용으로 사용되므로 시술 동의와 기관심의위원회의 심의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사실 자가이식의 경우에도 시술이 실험단계에 있는 기술임을 고려한다면 환자들은 치료적 임상연구의 대상으로서 그에 준하는 윤리적 절차를 거칠 필요가 있습니다. 즉, 성인으로부터 획득한 줄기세포를 연구목적으로 사용할 경우 연구목적 인체조직의 획득과 관련된 윤리규정과 절차를 지켜야 함에도 규제가 올바르게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환자의 치료과정에서 추출한 줄기세포에 대해 해당환자의 동의를 얻는 것과 더불어, 건강한 성인 자원자로부터 얻은 경우에도 대상자의 모집과정부터 기관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한편, 태아줄기세포의 경우에도 올바른 규제가 현실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인공임신중절을 통해 유산된 태아의 조직으로부터 태아줄기세포를 획득하는 방식에 있어 이러한 문제가 가장 잘 드러납니다. 태아의 연구 목적 혹은 줄기세포 획득용 기증은 낙태와는 독립된 결정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산모 및 동의자로부터 적절한 ‘충분한 정보에 근거한 동의’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모두 해당 기관의 기관심의위원회의 결정을 거쳐 이루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해당 규제가 적절히 적용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줄기세포 연구는 엄청난 가능성을 지니는 동시에 다양한 윤리적, 사회적, 법적 논점들과 얽혀 있는 분야입니다. 이는 줄기세포 연구 분야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현대의 생명공학 기술은 실제 생명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대다수고, 실제로 구현되었을 때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생명공학 기술의 발전과 인문사회적 고려 사항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생명공학 기술의 내용과 잠재적인 영향력에 관심을 갖고, 이와 관련된 여러 문제들에 대한 지속적인 토론과 제도적, 법적 개선을 이루는 것이 필수적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