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병풍의 나라 2>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의 병풍을 주제로 한 전시는 2018년에 이어 2번째이다. <조선, 병풍의 나라> 전시는 처음 선보이는 고미술이자 병풍이었기에 조선 사대부의 위엄과 더불어 다양한 소재를 활용하여 선보였다. 이번 <조선, 병풍의 나라 2>는 민간과 왕실 그리고 근대라는 키워드로 세분화시켜 관람객의 눈길을 끌었다. 그중에서도 근대화단의 산수화를 이끈 3인방의 대형 병풍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전시였다. 그래서 근대 산수화 3인의 병풍을 소개해 보려 한다.
1. 근대산수화단의 3인방_이상범, 변관식 그리고 노수현.
청전 이상범, 소정 변관식, 심산 노수형 이들은 모두 심전 안중식(安中植, 2861~1919), 소림 조석진(趙錫晋, 1853 ~ 1920)의 서화미술회를 통해 수묵화를 배운 근대 산수화 1세대 화가들이다. 1920년대 초기에는 오원양식(사왕오운의 심산유곡)에 토대를 두고 방고풍 정형산수를 그려왔지만, 서양문물과 일본의 신(新) 미술을 도입하여 기존화풍의 고답함을 벗어나려했다. 더불어 이들은 동연사(東硏社)를 조직하여, '신구화도(新舊畵道)'라는 서양식 구도로 수묵을 활용하여 산수를 그리게 된다. 동서양의 절충된 양식을 활용하여 이상(理想)이 아닌 눈에 보이는 현실을 화면에 담아내었다. 이를 사경산수화(寫景山水畵)라 하여 근대기 산수화의 대표적인 양식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2. 청전 이상범의 <귀로10폭병풍>.
청전 이상범(李象範, 1897~1972)은 심전 안중식이 자신의 호 ‘심전(心田)’ 가운데 ‘전(田)’자를 떼서 ‘청전(靑田)’이라고 호를 지어줄 정도로 아낀 제자다. 그만큼 산수의 탁월한 재능을 보였으며, 답습한 방고풍의 고전산수화를 열심히 그렸다. 그러나 개화를 통하여 들어온 서양문물과 조선미전에서 보았던 일본화가들의 신미술에 자극을 받음으로서 기존의 양식을 탈피하게 된다.
<귀로(歸路)10폭병풍>은 청전 이상범이 41세에 그린 것으로 원숙하게 기량을 뽑낸 그림이다. 그림을 보게되면 탈속적인 경치에서 안개 쌓인 시정이 주제인 것을 알 수 있다. 운필(用筆)을 활용한 뚜렷한 윤곽선 대신 필선의 사선(絲線)을 활용하여 토산의 지형을 나타내었다. 기존의 기승전결이 느껴지는 산세(山勢)는 이상적인 측면이 아닌, 현실의 사실경이라는 목적성이 느껴진다. 가운데 화면을 중심으로 잡고, 논밭은 근경(近景)으로 배치하였다. 그리고 안개로 덮어진 산은 원경(遠景)으로 묘사한 것으로 봐서 서양식 구도를 의식한 것을 알 수 있다. 더불어 일본의 신미술 경향인 신남화풍(新南畵風)을 적극 도입한 것으로 보인다. 적로하지만 사생을 활용한 형태적 질감은 뛰어난 그림이다.
3. 소정 변관식의 <수촌6폭병풍>.
소정 변관식(卞寬植, 1899~1976)은 청전과 심산 등과 함께 서화미술원(書畵美術院)에서 그림을 배운 근대기 수묵화단의 1세대 화가다. 그리고 변관식은 소림 조석진의 외손자로, 호를 '소림(小琳)'의 '소(小)'를 따와 '소정(小亭)'으로 짓게된다. 1925년 김은호(金殷鎬, 1892~1979)와 함께 일본 동경을 가서 동경미술학교(청강생)을 수료하게 한다. 유학당시 일본 근대 남화(南畫)의 거장 고무로 스이운(小室翠雲, 1874~1945)에게 신남화풍(新南畵風)을 배우게 된다. 그리나 귀국 후 조선미술전람회 활동 중단과 더불어 신남화풍(新南畵風)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변관식은 유학을 마친 귀국 후, 1930년대부터 사생을 위해 전국 유람을 시작하게 되었으며, 조선의 풍토 마를 화폭에 담으려 했다. 이후부터 변관식의 회화는 전통적인 남종문인화풍(南宗文人畵)으로 회귀한다. <수촌6폭병풍>도 이 시기에 그려진 병풍이자 전라도 광산객사라는 실제 명관을 그린 것이다. 평원(平遠)으로 그려진 실경산수화이지만, 삼원법의 고원(高遠)을 평원의 구도를 활용하여 고전적인 남종화풍을 구현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로테스크한 사실적인 질감은 신남화풍(新南畵風)의 영향을 받은 것을 보여준다. 전통적인 고전 법과 신식 기법이 절충된 변곽식의 초기 양식이 잘 나타난 산수병풍이자 그의 과도기를 잘 나타낸 작품이다. 청전의 작품은 적막한 농가의 정취를 나타내었다면, 소정은 산수의 생동감을 담아내었다.
4. 심산 노수현의 <심추12폭병풍>
심산 노수현(盧壽鉉, 1899 ~ 1978)은 청전과 소정과 같이 서화미술원(書畵美術院)에서 동문수학한 근대기 수묵화단의 1세대 화가다. 심전 안중식이 자신의 호 ‘심전(心田)’ 가운데 ‘전(田)’자를 떼서 이상범에게 ‘청전(靑田)’이라고 호를 지어줬듯이, 노수현에게는 ‘심전(心田)’의 '심(心)'을 떼서 '심산(心汕)'이란 호를 붙여줬다. 노수현의 작품은 크게 3시기로 나뉘어진다. 초기는 서화미술회에서 안중식과 조석진에게 사사하던 1922년부터 전람회의 호응을 얻은 1940년대 말에 이르는 시기이다. 이 시기는 사회미술원에서 배운 고전양식과 전람회의 주체가되는 신남화풍(新南畵風)을 절충한 양식으로 산수를 그려내었다.
<심추12폭병풍>은 심산 노수현의 초기에 해당되는 작품이다. 평원(平遠)으로 사실감 있게 산세와 수목을 표현하였으며, 세로형식의 심산유곡이 아닌 가로로 심산유곡을 나타내었다. 앞서말한 전통산수와 신남화풍을 절충한 산수병풍이라 할 수 있다. 깊은 가을이라는 의미의 심추(深秋)처럼 수묵의 나뭇잎은 곧 떨어질 것 같다. 바위산은 가을을 보내고 다가오는 겨울을 준비하는 것 처럼 앙상하고 험준하게 나타내었다. 절정의 가을이 아닌 끝나가는 가을이라는 계절을 자타낸 산수병풍이다. 선묘로 전경을 잡아내고 후경의 산은 중첩되어 있어 산수의 무게감과 사실감도 같이 담아내었다. 중경에 산사가 있어 실제의 경치를 보는 것 같다.
4. 청전과 소정 그리고 심산.
똑같은 1930년대이지만, 청전 이상범의 경우 자신의 화풍을 완성단계까지 이끌었다. 일본 유학을 가지 않았음에도 신남 화풍(新南畵風)을 적극 도입하였다. 반면 소정은 유학을 갔다 왔음에도 완벽한 신남화풍(新南畵風)을 화면에 나타내는 것보단, 전통적인 기존 산수화풍을 어떻게 구현할지 고민하는 정체기의 산수를 그렸다. 심산 노수현 역시 신남화풍이라는 신식(新式)과 고전양식을 절적히 묘사하는 등 과도기이자 도전적인 산수를 그렸다. 이렇게 산수화단의 대가인 3인방의 초기작인 30년대 작품을 비교하면서 볼 수 있어 유익한 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