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함과 수학으로.” - 숫자가 전부가 아닌 시대의 새로운 성장 공식
10년 넘게 책을 읽고 쓰며 깨달은 한 가지가 있다면, 진짜 좋은 책은 독자에게 ‘질문’을 남긴다는 것이다. 『레드 헬리콥터』는 내가 던졌던 질문들에 대해 아주 단단하면서도 따뜻한 언어로 응답해준 책이다. 무엇이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가?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어디서 오는가? 숫자 너머, 진짜 가치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전형적인 경영 서적이 아니다. 경영이야기를 가장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자, 기업이라는 생물체가 ‘살아남고 살아가는 방식’을 탐구하는 여정이다. 저자 제임스 리는 파산 직전의 회사 애슐리스튜어트에 임시 CEO로 투입되어, 6개월간 머무르려 했던 그곳에서 7년을 보내게 된다. 그가 말하는 변화의 방식은 단순하다. “다정함과 수학으로.” 한때는 투자자였고, 숫자의 세계에서 살아온 그가 다정함을 입에 올릴 줄이야. 그 낯설고도 설득력 있는 조합은 독자로 하여금 다시 묻게 만든다.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조직,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얼마나 다정한가?"
책 속에서 ‘다정함’은 단순한 친절이 아니다. 자기 이익을 한 발 뒤로 물리며, 조직과 사회의 균형을 다시 설계하려는 전략이다. 수학과 회계, 인사관리와 재무분석이라는 차가운 언어들이 ‘호의’라는 무형의 자산과 만나는 지점에서, 이 책은 탁월해진다. 저자는 일관되게 말한다. “공짜처럼 보이는 이 호의와 다정함이야말로, 가장 강력하고 지속 가능한 수익 모델이다.”
어쩌면 이 책의 진짜 힘은, 고도성장의 열풍 속에서 ‘속도를 늦출 용기’에 대한 이야기라는 데 있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충분히 오래 머무는 데서 비롯된다.” 이 문장은 경영뿐 아니라 삶 전반에 깊은 울림을 준다. 공중에 정지해 있는 헬리콥터처럼,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고요하게 분투하는 우리의 일상에 대한 은유. 더 빠르게, 더 많이, 더 높이 올라가려는 강박 속에서 ‘멈춤’이야말로 가장 고차원적인 운동이라는 메시지는 지금 시대의 모든 리더에게 필요한 진실일지도 모른다.
『레드 헬리콥터』는 변화와 혁신을 말하면서도, 결코 우리를 몰아붙이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 안에 이미 존재하지만 잊고 지냈던 힘—공감, 기억, 연대, 정—을 다시 꺼내 보여준다. 숫자와 다정함 사이에서 길을 잃은 이들에게, 이 책은 분명 하나의 ‘착륙지점’을 제공할 것이다.
기술이 모든 것을 예측하고, 인공지능이 의사결정을 보조하는 시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회사를, 조직을, 사회를 움직이는 것은 여전히 사람이다. 그리고 사람은, 다정함에 반응한다. 이 책을 덮는 순간, 나는 믿게 된다. 진짜 혁신은 언제나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고.